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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시대 華裔 일본 외교관의 활동과 정치적 입장 : 鄭永寧ㆍ鄭永昌ㆍ鄭永邦 삼부자를 중심으로
明治時代華裔外交官の活動と政治的立場 : 鄭永寧・鄭永昌・鄭永邦三父子を中心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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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종수정
Advisor
박훈
Issue Date
2021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정영녕(鄭永寧)정영창(鄭永昌)정영방(鄭永邦)당통사(唐通事)화예(華裔)화인외교과매국문사건경계인鄭永寧鄭永昌鄭永邦唐通事華裔華人外交官売国文事件境界人
Abstract
明治時代(1868-1912)の在日華裔に関する従来の研究では、華裔外交官の活動はそれほど注目されていなかった。しかし、明治時代初期の鄭永寧、平井希昌や、江戸時代に唐通事を務めた華裔外交官らが日本の対清外交において重要な役割を果たしていたことがわかった。彼らは中国人の血統を持つ日本人であるという「境界人」としての身分をもとに、順調に外交官になることができた。本稿では、これまで注目されなかった明治時代の華裔出身の外交官のうち、最も旺盛に活動したと評価される鄭永寧と彼の二人の息子、鄭永昌と鄭永邦の活動及び彼らの政治的立場について考察した。
まず、本稿では、鄭永寧の外交官としての活動をまとめ、彼の晩年に起きた「売国文事件」について調べた。鄭永寧は「日清修好条規」締結の予備交渉から条規締結、副島使節団の随行、同治帝謁見、琉球帰属問題への対応や情報伝達などに関与し、日清交渉の第一線に立って両国の交渉を媒介した。当時、鄭永寧は中国血統を持つ日本人という「境界人」の身分をもとに日清間の交渉において日本の立場を最大限に貫徹させることができた。しかし、1890年代になると日清間の関係に緊張感が漂い、鄭永寧の「境界人」的な身分は、彼の身辺を脅かす要素へと急変した。当時の日本社会は鄭永寧の「境界人」的な身分に問題を提起し始めたのだ。このような日本社会の警戒心は、いわゆる「売国文事件」が進む過程において鄭永寧が言論から売国奴として罵倒されたことからも明らかである。しかしながら、鄭永寧に着せられた売国文関連疑惑は事実無根だったということがわかっており、鄭永寧はあくまでも日本側の立場に立っていた人物であったと考えられる。
次は、鄭永寧の長男、鄭永昌の活動と関連して、外交官としての活動と塩運事業家としての活動という二つの側面を中心に叙述した。鄭永昌は、駐天津領事を務めていた頃、日本外務省の要求に従って天津租界地の敷地選定や天津租界地の設立のための主導的な役割を果たした。事実上の通訳に近かった父の鄭永寧に比べ、鄭永昌は日本政府の外交官として格上がりしたのだ。鄭永昌は外交官を退任後、海北塩運会社と韓国塩運会社を経営する塩運事業家へと変貌した。一方、本稿では、鄭永昌の塩運会社設立の過程や食塩輸入のための清政府との交渉過程において、鄭永昌と日本政府要人との緊密な交流があった状況を多数把握することができた。これらの状況を考慮すれば、鄭永昌が外交官を退任後、速やかに食塩貿易商へと変貌することができた理由として、鄭永昌が日本政府に忠実な外交官だったという背景があったと判断することができる。
最後に、鄭永寧の次男、鄭永邦については、駐北京公使館での30年間の在任中に担当した多数の外交事務に関する断片的な情報を得ることができたが、史料上の限界があったため、鄭永邦の外交活動を包括的に示すことは困難だった。しかしながら、1894年に東学農民運動が勃発した時点で朝鮮に派遣された鄭永邦が袁世凱と接触して、日本の立場の一つを提示した事例を具体的に考察することによって、日清両国が朝鮮出兵と関連して相互の意中を探る過程において鄭永邦が清に日本の意図を把握できる選択肢を提供する役割を担ったことがわかった。このような外交官としての面貌だけではなく、鄭永邦が日本初の北京官話教材である『官話指南』を編纂した点などを踏まえれば、鄭永邦も彼の父と同じように日本の国益に忠実な外交官であったと思われる。
 結論として本稿は、たとえ鄭氏父子が中国人の血統を持つ日本人、即ち、日清両国の間に存在する「境界人」の身分であったとしても、彼らの政治的な立場は終始一貫して日本政府の立場と一致しており、彼らは日本の国益に徹した活動をしたと判断することができる。
메이지시대(明治時代: 1868-1912) 재일(在日) 화예(華裔)와 관련된 기존 연구에서 화예 외교관의 활동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메이지시대 초반에는 정영녕(鄭永寧), 히라이 기쇼(平井希昌)를 위시한 에도 시대 당통사(唐通事)를 역임했던 화예 외교관들이 나타나 일본의 대청외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중국 혈통을 보유한 일본인이라는 ‘경계인’의 신분을 토대로 순조롭게 외교관이 될 수 있었다. 이에 본고에서는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메이지 시대 화예 출신 외교관 가운데, 가장 왕성하게 활동했다고 평가받는 정영녕과 그의 두 아들인 정영창(鄭永昌)과 정영방(鄭永邦)의 활동과 더불어 그들의 정치적 입장에 대해 고찰하고자 했다.
우선 본고에서는 정영녕의 외교관으로서의 활동을 정리하고, 그의 생애 만년에 일어났던 ‘매국문 사건(賣國文事件)’의 경과에 대해 살펴보았다. 정영녕은 「청일수호조규」 체결 예비 교섭부터 조규 체결, 소에지마 사절단 수행, 동치제 알현, 류큐 귀속 문제의 대응과 정보 전달 등에 관여하며 청일협상의 최일선에 서서 양국의 교섭을 매개했다. 당시 정영녕은 중국 혈통을 보유한 일본인이라는 ‘경계인’적인 신분을 통해 청일간의 교섭에서 일본의 입장을 최대한 관철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1890년대 청일간의 관계에 긴장감이 감돌면서 정영녕의 이러한 ‘경계인’적인 신분은 그의 신변을 위협하는 요소로 돌변했다. 당시 일본 사회에서 정영녕의 ‘경계인’적인 신분에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러한 일본사회의 경계심은 소위 ‘매국문 사건’의 진행 과정에서 정영녕이 언론에 의해 매국노로 매도된 모습을 통해 단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그렇지만 정영녕에게 제기된 매국문 관련 혐의는 사실무근이라는 점에서 정영녕은 어디까지나 일본의 입장에 선 인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는 정영녕의 장남 정영창의 활동과 관련해 외교관으로서의 활동과 염운 사업가로서의 활동이라는 두 가지 면모를 위주로 서술했다. 정영창은 주천진 영사를 역임하던 시기 일본 외무성의 요구에 따라 천진 조계지 부지 선정 및 천진 조계지 설립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기도 했다. 사실상 통역관에 가까웠던 부친 정영녕에 비해, 정영창은 일본 정부의 외교관으로 진일보한 것이었다. 정영창은 외교관 퇴임 이후 해북염운회사(海北鹽運會社) 및 한국염운회사(韓國鹽運會社)를 운영하며 염운 사업가로 변모하기도 했다. 한편 본고에서는 정영창의 염운회사 설립 과정 및 식염 수입을 위한 청 정부와의 교섭 과정에서, 정영창과 일본정부 요인들과의 긴밀한 교류가 이뤄진 정황을 다수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정황을 고려한다면 정영창이 외교관 퇴임 이후 신속하게 식염 무역상으로 변모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는 정영창이 일본정부에 충실한 외교관이었다는 배경이 존재했다고 판단해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정영녕의 차남인 정영방과 관련해서는 주북경공사관에서 30년간 재임하는 동안 맡았던 여러 외교사무에 대한 단편적인 사항들을 살펴볼 수 있었지만 사료상의 한계로 인해 정영방의 외교적 활동을 포괄적으로 제시하기는 어려웠다. 다만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발발했던 시점에 조선으로 파견된 정영방이 원세개와 접촉해 일본의 입장들 중 하나를 제시했던 사례를 구체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청일 양국이 조선출병과 관련해 상호간의 의중을 살피는 과정에서 정영방이 청 측으로 하여금 일본의 의도를 고려할 수 있는 선택지를 제공하는 역할을 맡았던 점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이러한 외교관으로서의 면모 뿐만 아니라 정영방이 일본의 첫 북경관화 교재인 󰡔관화지남(官話指南)󰡕을 편찬했던 점 등과 연관지어 살펴본다면 정영방 또한 그의 부친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국익에 충실했던 외교관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본고를 통해서는 비록 정씨 부자가 중국 혈통을 보유한 일본인 즉 청일 양국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인’의 신분이었지만 그들의 정치적인 입장은 시종일관 일본 정부의 입장과 일치하였으며 그들은 철저히 일본의 국익을 위해서 활동하였다고 판단해볼 수 있다.
Language
kor
URI
https://hdl.handle.net/10371/178488

https://dcollection.snu.ac.kr/common/orgView/000000167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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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Asian History (동양사학과)Theses (Master's Degree_동양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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