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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혁주의 생애와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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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Date
2002
Publisher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인문학연구원
Citation
인문논총, Vol.47, pp. 59-78
Abstract
장혁주(본명:은중=恩重)는 을사보호조약이 조인된 해인 1905년 경북 대구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 장두화(張斗化, 仁同張氏)는 지주였다. 그의 생모는 기독교신자였다 한다. 혁주는 모친을 따라 경주에서 살게 되었고, 1913년에 경주에 있는 계림(鷄林)보통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역사, 고고학에 조예가 싶은 오오사카 킨타로(大坂金太郎:아호六村)교장의 특별한 사랑을 받아, 그를 따라 답사도 다녔고, 일본어도 익혔다 한다. 1919년에 보통학교를 졸업한 혁주는 대구의 부친 댁에서 살게 되었고, 다음해인 20년, 15세 나이에 결혼했다. 그 이후 2남 2녀를 두었다.
21년에는 대구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는데, 성적이 우수했고 또 그 동안 세례를 받기도 했다. 그런데 4학년 때 학생파업에 가담하여 무기정학을 당한 다음 학교생활에 싫증이 나, 문학에 심취하게 되었다 한다. 26년 봄, 대구고보를 겨우 졸업한 혁주는 취직도 하지 않고 무정부주의자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그들의 진우연맹(眞友聯盟)에서 활동했다. 그런데 이 연맹이 해산하게 되자 동년 가을부터 29년 봄까지 경북 청송군과 예천군에서 학교교원 노릇을 하면서 습작을 하곤 했다. 그 동안에 교원자격을 얻은 혁주는 29년 봄, 대구의 희도(喜道)소학교 훈도(訓導)가 되었다.
ISSN
1598-3021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29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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