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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後期 享祀關係 文獻資料의 檢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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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contributor.author鄭玉子-
dc.date.accessioned2010-04-30T05:50:14Z-
dc.date.available2010-04-30T05:50:14Z-
dc.date.issued1994-04-
dc.identifier.citation奎章閣, Vol.16, pp. 1-19-
dc.identifier.issn1975-6283-
dc.identifier.urihttps://hdl.handle.net/10371/63606-
dc.description.abstract조선 왕조는 유교국가답게 제사가 많았고 그에 관한 기록 역시 적지 않다. 제사란 神靈에게 음식을 바쳐 정성을 표하는 예절이며 祭享, 또는 享祀로 표현되기도 한다. 특히 祭享이란 용어는 나라에서 지내는 제사를 의미하며 祭祀의 높임말로 쓰였다. 그 대상은 크게 볼때 산천, 초목 등 자연과 死者로 분류된다. 조선의 국가 儀典書인 《國朝五禮儀》의 분류에 의 하면 吉禮가 전자에 대한 祭儀라면 凶禮가 후자에 대한 제의다. 조선초기 국가체제가 정비되고 성리학을 주전공으로 하는 士林이 정치주도세력으로 부상하면서 성리학이념이 조선사회에 실현되는 과정에서 《朱子家禮》의 실천이 강화되었다. 士大夫의 예로서의 《朱子家禮》는 점차 확산되어 17세기 禮學이 발달하면서 冠·婚·喪·祭의 四禮가 기본이 되었다. 특히 金長生(1548~1631)의 《家禮輯覽》이 출간되자 《朱子家禮》에 토대를 두되 조선의 현실에 맞게 時宜性을 살린 禮書가 쏟아져 나오는 계기가 되었고 그 祭禮가 제사의 준거틀이 되었다.-
dc.language.isoko-
dc.publisher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dc.title朝鮮後期 享祀關係 文獻資料의 檢討-
dc.typeSNU Journal-
dc.citation.journaltitle奎章閣-
dc.citation.endpage19-
dc.citation.pages1-19-
dc.citation.startpage1-
dc.citation.volume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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