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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 있었던 평화통일의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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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contributor.author김호징-
dc.date.accessioned2013-01-08T05:38:37Z-
dc.date.available2013-01-08T05:38:37Z-
dc.date.issued2007-
dc.identifier.citation서울대학교 명예교수회보, Vol.3, pp. 73-84-
dc.identifier.issn2005-0526-
dc.identifier.urihttps://hdl.handle.net/10371/79974-
dc.description.abstract1. 우리의 아픔의 역사 한반도 정착민인 우리의 역사는 외침(外侵)에 의한 치욕의 역사로 점철(點綴)되어 있으며, 그 책임의 많은 부분이 우리 민족 자체에 있다. 미래에 보다 영광스러운 나라를 이어가려면 과거의 잘못을 교훈으로 삼고 이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고려조(高麗朝) 때만 하여도 원(元)나라의 침략을 이겨내지 못하고. 태조(太祖) …, 인종(仁宗) 등등으로 이어 왔던 왕조(王朝)가 그 명칭에 조(祖)나 종(宗)을 쓰지 못하고 충렬왕(忠烈王), 충선왕(忠宣王), … 충정왕(忠定王) 등으로 격하(格下)되어 원나라에 충성(忠誠)하고 공물(貢物)을 바치는 신하의 나라가 되었다. 이 씨(李氏)의 조선조에서도 태조를 위시하여 역대 왕들이 명(明)나라에서 시호(諡號)를 받았다. 예를 들면 태조와 문종의 시호는 각각 강헌(康獻)과 공순(恭順)이었다.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남한산성에서 청태종(淸太宗)의 군대와 단 50일간 싸워서 패하고, 삼전도(三田渡)에서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로 치욕적인 항복을 한 16대 왕 인조(仁祖)는 청나라의 강요로 항복 장소에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를 세워서 후손에게 전해야 했다. 이경석(李景奭)이 지은 비문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dc.language.isoko-
dc.publisher서울대학교 명예교수협의회(Association of Emeritus Professors)-
dc.title세 번 있었던 평화통일의 기회-
dc.typeSNU Journal-
dc.citation.journaltitle서울대학교 명예교수회보(Annual report of professors emeriti Seoul National University)-
dc.citation.endpage84-
dc.citation.pages73-84-
dc.citation.startpage73-
dc.citation.volum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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