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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당악의 변천
Transformations in Late-Choson Tangak

DC Field Value Language
dc.contributor.author오용록-
dc.date.accessioned2014-01-14T05:32:56Z-
dc.date.available2014-01-14T05:32:56Z-
dc.date.issued2010-
dc.identifier.citation동양음악, Vol.32, pp. 197-231-
dc.identifier.issn1975-0218-
dc.identifier.urihttp://hdl.handle.net/10371/87912-
dc.description.abstract고려(918~1392)는 북송(960~1127)의 궁중음악을 11세기부터 본격적으로 도입하였다. 사악과 아악인데, 사악을 고려에서는 당악이라 불렀다. 조선 건국 후에도 당악은 그대로 조선으로 승계되었다. 조선 초 당악은 향악과 계통, 악기, 양식에서 분명히 구별되었다. 하지만 조선후기 이후 당악은 많은 변천을 겪었다. 전승되는 악곡의 수가 많이 줄었고, 모든 악곡의 양식이 향악화 되었다. 이 점은 당악, 즉 중국에서 받아들였고 중국음악의 특징을 갖는 당악의 한 갈래인 고취악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이 글을 시작하며 세 가지 질문을 던졌다. (1)같은 당악인 보허자에 대해서는 향악화 되었다는 말을 하는데 왜 낙양춘에 대해서는 그런 말을 하지 않는가, (2)보허자와 같은 양식적 특징을 갖는 여민락에 대해서 왜 향악화 되었다는 말을 하지 않는가, (3)악기의 조율체계가 향악과 당악을 나누는 기준이 될 수 있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였다. 조선후기의 모든 궁중음악은 기능에 따라 ‘일음일박양식’과 ‘확대양식’으로 바뀌었고, 보허자와 낙양춘은 변천의 방식이 달랐을 뿐이지 모두 향악화 되었다고 한다. 즉 양식과 계통이 무관함을 말했다. 아울러 어민락이 본래 고취악이었지만 이 역시 넓은 의미의 당악이고 조선후기 두 가지 양식으로 향악화 되었음을 말했다. 끝으로, 조선후기에 궁중의 조율체계와 인간의 조율체계가 있었는데 이 조율체계 역시 음악의 계통과는 무관함을 말했다. 조선전기에는 궁중에 두 가지 다른 계통의 음악이 있었고 이들은 악기와 양식이 구별이 되었다. 하지만 조선후기에는 오직 조선후기의 궁중음악이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오늘날 보허자 등을 가리켜 ‘당악’이라 부르면 여전히 악기와 양식이 다른 어떤 음악으로 오해될 우려가 있다. 굳이 구별해서 말하고자할 경우 그 계통만을 따져 ‘당악계’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



During the Koryo Dynasty (高麗, 918-1392) court music from the Northern Song Dynasty (北宋, 960-1127) was introduced in earnest beginning in the 11th century. Originally the imported music was labeled both sa-ak (詞樂) and a-ak (雅樂) but in the Koryo period sa-ak was assigned the application tangak (唐樂) and a-ak maintained its original designation. These designations continued into the founding of the Choson Dynasty (1392-1910). At the beginning of the Choson period, the system of categorization clearly distinguished tangak and hyangak (indigenous music, 鄕樂) instruments and musical styles. Tangak became a term to designate any kind of music not definitively of Korean origins. But beginning in the Late Choson period, pieces labeled tangak suffered many vicissitudes. The number of transmitted pieces was greatly reduced, and most of the musical styles experienced Koreanization and, therefore, were absorbed into the category of hyangak. That is to say, while music received from China was considered to be tangak, such as the the branch of tangak-labeled music known as koch'wi-ak (wind and percussion music, 鼓吹樂), the definition for tangak became quite unclear. The kinds of music we now consider to be 'tangak' have not always been included in that category, and, likewise, the criteria for designation have also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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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language.isoko-
dc.publisher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동양음악연구소-
dc.subject당악-
dc.subject조선후기음악-
dc.subject일음일박화-
dc.subject확대양식-
dc.subject향악-
dc.subject당악계-
dc.subject향악화-
dc.subject보허자-
dc.subject낙양춘-
dc.subjectlangak-
dc.subjectlalo Choson music-
dc.subjectone nole per beel form-
dc.subjectexpanded torm-
dc.subjecthyangak-
dc.subjecttangak system-
dc.subjectKoreannlzation-
dc.subjectPohoja-
dc.subjectNakyangch'un-
dc.title조선후기 당악의 변천-
dc.title.alternativeTransformations in Late-Choson Tangak-
dc.typeSNU Journal-
dc.author.alternativeOh, Yong Nok-
dc.citation.journaltitle동양음악(Journal of the Asian Music Research Institute)-
dc.citation.endpage231-
dc.citation.pages197-231-
dc.citation.startpage197-
dc.citation.volume32-
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Music (음악대학)Asian Music Research Institute (동양음악연구소)Journal of the Asian Music Research Institute (동양음악)동양음악 Volume 32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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