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wse

<개벽> 의 종교적 사회운동론과 일본의 종교철학
The Theory of Religious Social Movement in Gaebyeok and Japanese Philosophy of Religion

Cited 0 time in Web of Science Cited 0 time in Scopus
Authors
허수
Issue Date
2015-02
Publisher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Citation
인문논총, Vol.72 No.1, pp. 325-355
Keywords
개벽종교적 사회개조목차공간主義상호동일성활동주의 도덕현상즉실재론Gaebyeokreligious social remodelingcontentsprinciple(ism)activist ethicstheory of ‘phenomenon viz reality’
Abstract
1920년대 문화정치기 천도교 청년층은 을 창간하여 자신들의 종교적 사회개조를 실현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서 그들은 천도교 교리가 사상적 포괄성을 지닌다는 사실을 알리면서 그것을 사회 일반적 언어로 표현하는 데 주력하였다. 의 체제와 내용은 이 목적에 따라 편성되었다. 의 목차공간은 계몽의 영역⋅소통의 영역⋅대중의 영역으로 구분되는데, 주도층은 소통의 영역에서 서구 근대사조와 인내천에 관한 논설을 게재하는 한편, 핵심공간인 계몽의 영역에서는 세상을 상호동일성의 관계로 보는 인식과 활동주의 도덕이라는 실천방안을 제시하였다. 이런 노력은 다음 단계에 가서 주의(主義)의 형성으로 나타났다. 이돈화 등은 계몽의 영역 중 가장 핵심적인 글인 대표논설을 통하여 당시 유행하던 주류사상을 비판적으로 흡수하여 사람성주의, 범인간적 민족주의, 적자주의 등을 순차적으로 발표하였다. 이때 이전에 보였던 상호동일성 인식과 활동주의 도덕은 주의 형성의 기준으로 작용하였다. 그런데 이런 두 기준은 이돈화가 1910년대 후반에 도입한 일본의 종교철학인 현상즉실재론을 종교적 사회운동의 실천 담론으로 전유하면서 형성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1920년대 개벽의 탄생과 지속에서 현상즉실재론의 영향은 큰 것이었으나, 이돈화와 개벽에서 그것의 존재감은 점점 희미해졌다. 현상즉실재론은 개벽의 통일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두 층위, 즉 종교의 층위와 사회의 층위를 결합하고 사라지는 매개물로 작용하였다.
In the 1920s, the young people of Cheondogyo published in the period of cultural politics the first issue of Gaebyeok (meaning the dawn of the world) to realize their purpose of religious social remodeling. Gaebyeok was divided into three areas; enlightenment, communication, and general public. Its leading members carried articles about modern Western thoughts and the doctrine of in-naecheon (the equality of human rights) in the communication part. And in enlightenment, they spread not only both an idea of the world as the relation of mutual identity and a practical plan of activist ethics, but also put out the doctrine of human nature (saramsŏng chuui; 사람性主義), pan-humanistic nationalism (汎人間的 民族主義), and the doctrine of Jeokja(赤子主義). In this process, the theory of phenomenon viz reality (現象卽實在論) played a important role, but its presence gradually faded down thereafter. The Japanese theory played a role as a vehicle which helped combine the different two strata forming the unity of Gaebyeok, religion and society, and then disappeared.
ISSN
1598-3021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94141
Files in This Item:
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Institute of Humanities (인문학연구원)Journal of humanities (인문논총)Journal of Humanities vol.72 no.1/4(2015) (인문논총)
  • mendeley

Items in S-Space are protected by copyright, with all rights reserved, unless otherwise indicated.

Brow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