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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년대 후반 메이지 일본의 전쟁 담론 공간 : 야마모토 주스케(山本忠輔)의 『일본군비론』(日本軍備論)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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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contributor.author최정훈-
dc.date.accessioned2015-11-03T07:09:17Z-
dc.date.available2015-11-03T07:09:17Z-
dc.date.issued2015-08-15-
dc.identifier.citation일본비평, Vol.13, pp. 200-240-
dc.identifier.issn2092-6863-
dc.identifier.urihttps://hdl.handle.net/10371/94488-
dc.description.abstract『도쿄아사히신문』(東京朝日新聞)은 1894년 6월 8일 자 1면 「사고」(社告)를 통해 조선의 경보(警報)가 점점 급박해져 암담(暗澹)한 풍설이 바야흐로 경성의 온 하늘을 덮으려고 하니 사원 야마모토 주스케(山本忠輔)를 특파하여동학당의 변란은 물론이고 기타 크고 작은 정세라 하더라도 지금보다 한층 정세가 명확히 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동학농민군의 전주성 점령(5월31일)과 청의 아산만 파병(6월 6일)으로 긴박해진 상황에 대한 신속한 대응이었다.『아사히신문』의 제1특파원 야마모토 주스케는 1894년 6월 6일 오후 5시에 오사카를 출발하여 10일 오전 1시 인천항에 도착했다. 이는 청일전
쟁기 66개 신문사에서 파견한 114명의 종군기자 가운데 가장 빠른 대응이었다. 일본군 선발대가 6월 6일 오후 출발하여 12일 오후 인천에 도착한 것에 비견될 정도로 신속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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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language.isoko-
dc.publisher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dc.title1880년대 후반 메이지 일본의 전쟁 담론 공간 : 야마모토 주스케(山本忠輔)의 『일본군비론』(日本軍備論)을 중심으로-
dc.typeSNU Journal-
dc.citation.journaltitle일본비평(Korean Journal of Japanese Studies)-
dc.citation.endpage240-
dc.citation.pages200-240-
dc.citation.startpage200-
dc.citation.volume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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