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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주실의 』(天主實義)의 내용과 그 의미
Content and Meaning of 「 The Truth Meaning of Lord of Heave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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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송영배
Issue Date
1995
Publisher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Citation
철학사상, Vol.05, pp.213-241
Keywords
마테오 리치아퀴나스인간론윤리학천주실의 평가
Abstract
『천주실의』의 저자는 명말(明末)에 중국에 와서 중국문화에 적응하여 로마의 카톨릭교회[天主敎]의 도리를 본격적으로 전교하여 최초로 성공한 이탈리아의 마체레타(Macereta)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利瑪竇 1552-1610)이다. 이런 그의 중국전교의 시발점은 예수회의 동방전교의 시발자인 프란치스코 사베리오(Franciscus Xaverius 1506-1552)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사베리오는 1541년에 인도의 폴투갈 식민지인 고아(Goa)에 왔으며 인도의 토착민들에게 열심히 기독교를 전교하였다. 그러나 더 큰 야망을 가진 그는, 당시 폴투갈 상인들로 부터 얻은 중국과 일본에 대한 새로운 정보에 따라서, 우선 일본의 전교에 직접 나섰다. 1549년 일본의 가고시마(鹿兒島)에 도착한 이래 그는 많은 전교의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일본의 도착에서부터 그를 늘 당혹스럽게 만든 것은 다음과 같은 일본인들의 반박이였다. “기독교의 교리는 참일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참이라면 중국인들이 분명히 오늘날까지도 모르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학문과 도덕을 숭상하는 일부 일본인들에게 중국문화의 권위는 대단한 것이었다. 따라서 사베리오는, 이들 "서양의 구도승들과 상인들이 13세기 중엽 발견의 시대"(Age of Discovery)이래 계속 꿈꾸어 온 기독교 “전세계군주국”(Universal Monarch)이나 “천년왕국(Millennial Kingdom)의 추구"의 마지막 완성은, 결국 이들 중국의 지식인들에 대한 전교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그리고 일본과 중국같은 고급문화를 상대로 하는 전교사업에는 높은 학식과 인덕이 겸비된 선교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가 1552년 중국대륙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사망하자, 그의 후임이 된 발리냐노(Alessandro Valignano)는 그의 유지를 그대로 받들어 우선, 고아로부터 루지에리(Michele 꼏햗갸 1543-1607)를 1579년 마카오로 불렀다. 그로 하여금 삼년여에 걸쳐서 중국어와 한문을 열심히 배우게 하면서 중국인들과의 몇가지 예비적인 접촉시도를 해보게 하였다. 그리고 그는 또한 마침 당시 고아에 와있던 젊은 마테오 리치신부를 마카오로 불러서(1582.8.7), 이 둘로 하여금 중국전교사업을 맡게 하였다. 이런 교섭의 결과, 루지에리와 리치는 기독교 사상을 전교하기 위하여 중국의 광동(廣東)성 조경에 도착할 수 있었다(1583.9.10).
ISSN
1226-7007
Language
Korean
URI
http://hdl.handle.net/10371/10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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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Philosophy (철학과)철학사상철학사상 05호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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