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에 의한 일본 공공문화시설의 기획 과정과 계획 특성 연구

Abstract

현대사회의 높아진 문화예술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욕구는 많은 도시들이 앞다투어 공공문화시설을 건립하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하지만 최근 한국에서 건립된 다수의 지역 공공문화시설들이 큰 예산을 들여 현대적인 설비를 갖추었음에도 지역 문화예술활동의 장으로서 활발히 이용되지 못하고 있다. 현재 많은 지방자치단체들은 이와 같은 문제의 원인을 지역의 환경이나 주민들의 요구를 충실히 기획에 반영하지 못했는데 있다고 판단하고 기획의 초기부터 시민이 참여하는 방법을 당양하게 고려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참여를 지역적 특성을 반영한 효과적인 참여 방법을 계획하기에는 아직 참여에 의한 공공문화시설 기획의 경험이나 체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따라서 한국의 공공문화시설 기획에 적절한 참여 과정과 체계를 수립하기 위해서 기존 이론과 사례를 중심으로 참여에 의한 공공문화시설의 기획 과정과 계획의 특성을 구체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사용자의 참여는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자의 요구를 반여하는 실천적 방법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지만 전문성과 다원성이 강한 공공문화시설의 기획에 활용된 사례는 많지 않았다. 다만 시민운동과 마을만들기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일본의 공공문화시설 건립 사업에서는 1990년대 이후에 참여에 의한 기획 사례가 다수 있었으며 그 결과가 시설의 활용도와 시민의식 향상에 효과가 있었다고 밝혀져 있다. 따라서 본 논문은 공공문화시설 기획 과정에 시민의 효과적인 참여 방법과 기본적인 조건을 찾기 위해 일본 공공문화시설의 사례를 중심으로 참여에 의한 기획 과정과 계획의 특성을 분석하고자 했다. 한편으로는 공공문화시설의 갖고 있는 높은 전문성과 다원성이 사용자 참여의 한계와 가능성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참여에 의한 공공문화시설 기획에 대한 분석은 참여에 의한 기획의 다른 시설의 기획에서의 활용 가능성까지 제시해 줄 것으로 기대했다.

본 연구는 먼저 참여의 대표적인 속성인 주체성, 다원성, 상징성에 의해 기획 과정에서 부각되는 기본 조건들과 계획의 이원적 특성에 대해 팻치 힐리의 협력적 계획과 앙리 르페브르의 공간의 생산 이론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그 결과 참여는 특히 주체성과 다원성에 의해 기획 과정에서 참여자의 의사결정 권한, 포괄적 참여조직의 구성, 차이를 인정하는 의사소통, 체험 중심의 담론의 검정과 지속적인 성찰적 비판 등을 필요로 했다. 또한 참여의 속성들은 일상성과 비일상성, 전문성과 다목적성, 영역성과 탈영역성, 재현의 함축성과 명시성 등의 이원적인 계획 성격이 더욱 뚜렷하게 하는 요소였다.

이와 같은 기획의 조건과 계획 요소들을 중심으로 본 연구는 관련 제도의 정착과 함께 체계화되어 가고 있는 참여에 의해 기획된 일본 공공문화시설 사례를 분석하여 다음과 같은 특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첫째, 참여 조직은 크게 전문가 중심 조직과 시민 중심 조직으로 구분할 수 있었으며 두 조직 간의 역할을 기준으로 계획 체계를 시민 중심 체계, 시민전문가 협업 체계, 전문가 중심 체계 등으로 구분할 수 있었다. 사례를 전체적으로 보면 시간과 재원의 한계 때문에 기획의 효율성이 중요했거나 공공문화시설의 기획에 많은 전문지식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전문가 중심 체계로 진행된 사례가 가장 많았다. 둘째, 시민 중심 체계와 전문가 중심 체계는 설계자 선정 시기에서도 차이가 있었는데 시민 중심 체계는 기본계획 단계 이전에 설계자를 선정하는데 반해 전문가 중심 체계는 일반적인 사업 추진 과정에서처럼 기본계획 이후에 설계자를 선정했다. 기획의 초기 단계부터 설계자가 참여한 경우 기획의 진행자로서 중립성을 지키기 어렵다는 문제는 있지만 창의적인 결과가 도출되었다고 평가 받는 사례들이 대부분 기획 초기에 설계자가 참여한 사례인 것을 봐서 이 경우에 시민과 설계자의 자율성이 높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셋째, 공공문화시설은 시민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직접 문화예술활동에 참여하고자 하는 욕구에 의해 전문시설로서의 전문성과 지역활성화의 거점으로서의 일상성이 동시에 강조되고 있었다. 시민들이 참여하는 문화예술활동을 위한 연습실이나 리허설실이 증가하고 있으며 창조지원센터 등의 이름을 가진 새로운 유형의 공공문화시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또한 자신이 사용의 주체라는 인식을 강하게 가진 시민들은 시실 내부 영역 간의 경계를 허물고 시설과 주변시설과의 관계에 큰 관심을 두고 있었다. 넷째, 사회 구성원의 다원성과 사용의 주체가 가진 가변적인 욕구는 시설의 용도를 다목적으로 만들었다. 기존 사례들에서 참여는 하나의 공간을 다기능화하거나 여러 개의 공간을 복합화하는 방법으로 시설 용도의 다목적성을 반영하고 있다. 이와 같은 참여의 다원적이고 주체적인 속성은 시설의 상징적 의미와 대상에도 영향을 주었다. 대부분의 사례에서 새로운 공공문화시설은 도시의 문화적 역량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존재였으며 상징적인 표현은 이미지보다는 전통 공간이나 시설에서 이루어지는 문화예술활동 등으로 함축적으로 표현되는 경향이 강했다.

또한 본 논문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공공문화시설 기획에서의 효과적인 참여 과정을 계획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점에 유의해야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첫째, 지역과 시설의 특성에 따라 다른 참여 체계가 활용될 수 있다. 지역의 작고 시설이 높은 전문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경우 시민 중심 체계를 활용하여 시설의 일상성을 강화할 수 있으며 기획 초기부터 전문가가 시민들이 주체적으로 계획을 수립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특히 지역 전문가들의 참여는 모든 유형의 계획 체계에서 시민들의 주체적 계획과 지역의 문화적 역량을 향상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에 주목하고 적극적으로 유도할 필요가 있다. 둘째, 주체적인 참여가 시민의 관점을 공간의 소비자에서 생산자의 관점으로 옮겨 시민들이 직접 계획을 제안하고 검정하는 방법이라는 인식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이는 시민들의 시설에 대한 이해와 주인의식을 높이고 현실적인 계획을 제안하게 하며 계획의 범위를 마을만들기로 넓혀지게 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셋째, 참여에 의해 시민들의 의견을 효과적으로 계획에 반영하기 위해서는 시민 중심의 조직과 전문가 중심의 조직의 역할을 분명하게 규정하고 두 조직 사이의 유기적인 연계가 필요하다. 시민 중심의 조직은 일반 시민들의 요구에 담겨 있는 본질적인 의미를 전문가 중심 조직에게 전달하고 전문가들에 의해 수립된 계획을 일반 시민들에게 설명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넷째, 시설의 정체성과 다양한 가능성을 이해하고 계획에 반영하기 위해서는 시설 건립 및 계획에 대한 반대의견을 가진 시민들의 적극적이 참여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 또한 계획의 실현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시의원의 참여도 검토되어야 한다. 다섯째, 시민들의 참여가 보편적인 시설의 특성을 유도하기보다는 일상생할 시설과 전문시설로의 특성을 동시에 추구한다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또한 시민들이 지향하는 시설의 상징성이 형태적이기보다는 공간적인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본 논문은 사례를 통해 시민들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환경을 만들어 가는 사회적 흐름 속에서 공공문화시설 기획의 참여가 사회와 시설의 다원성과 사용자의 주체성, 그리고 시설의 함축적 상징성을 반영하는 다양한 방법과 영향을 확인했다. 하지만 본 논문은 시설에 대한 만족도와 가동률의 향상 등 일반적인 관점에서 참여가 더 좋은 공공문화시설을 기획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증명하지는 못했다. 따라서 참여에 의한 기획의 가치를 확인하고 효과적으로 도입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사례들을 대상으로 기획 과정과 계획 그리고 시설의 대한 평가를 연계하여 분석하는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