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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조선인 연극운동의 전개과정과 공연방식 연구
在日朝鮮人演劇運動の展開過程と公演方式に対する研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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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김사량
Advisor
양승국
Major
인문대학 협동과정 공연예술학전공
Issue Date
2016-08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재일조선인연극운동공연리얼리즘프롤레타리아 연극3·1극장조선예술좌동경학생예술좌계급의식민족의식
Description
학위논문 (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협동과정 공연예술학전공, 2016. 8. 양승국.
Abstract
본 연구는 1920년대 중반에서 1930년대 후반까지 재일조선인들에 의해 전개되었던 연극운동의 실제적 양상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재일조선인 연극운동은 프롤레타리아 연극운동을 통해 시작되었는데, 1925년 10월에 결성된 조선프로극협회를 통해 첫 시도를 보인 바 있다. 이후 이들의 연극 활동은 1927년 하반기부터 프로문예조직의 변화에 발맞추어 공연실천을 통해 전위부대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즉, 프로문예 단체가 제3전선사(第三戰線社), 카프(KAPF) 동경지부, 무산자사(無産者社), 동지사(同志社), 코프(KOPF) 내 조선협의회로 변천해나가는 동안, 그 실천은 카프 동경지부 연극부, 무산자극장, 동경조선어극단, 3·1극장 등을 통해 이루어졌던 것이다. 이처럼 재일조선인들의 프로극운동은 늘 이론과 실천의 긴밀한 연관관계 속에서 전개되었으며, 특히 김두용의 ‘예술투쟁’ 논리와 같이 대중을 획득하고 조직을 확대하는 데 초점을 맞춘 예술적 실천을 추구하고자 하였다.
재일조선인의 프로극운동은 그 자체가 제국주의적인 지배 논리에 반기를 들고 시작되었기에 계급의식을 내면화하고 있었다. 또한 피지배민족이 식민 종주국인 일본에서 살아가야 했던 현실을 인식해나감에 따라 부각되었던 민족의식 역시 다른 한 축을 형성하고 있었다. 객관적 정세의 문제로 인해 조선에서의 운동은 적지 않은 제약을 받아야 했고, 이를 일본에서 대신 실행하고자 했던 재일조선인 연극운동은 조선의 노동 대중 조직을 목표로 내세우며 출발하였다. 이들의 강경한 운동이론과 방침은 카프 경성본부와의 예술과 정치에 관한 논쟁에서 우위를 점하게 되었으나, 운동자금 부족 등으로 인해 한계에 부딪히기도 하였다. 한편, 재일조선인 노동 대중을 조직화할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그들 또한 본격적인 조직 대상에 포함시키게 되었는데, 이러한 양방향적 지향점은 재일조선인 공연의 가능성과, 관중으로서의 조선인 노동 대중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었던 일본인 프로극계의 동향과 깊이 연관된다. 이 시기에 고조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에 따라 일본인 프로극운동과의 조직연대가 이루어졌던 반면, 재일조선인들의 민족의식 표출의 욕구는 잠시 잠재시키게 된다.
코프 산하 프롯트(PROT)에 소속되어 있었던 3·1극장의 공연 활동은 계급주의적 운동방침을 중시하는 코프와 민족단체로서의 의의를 중요시하는 프롯트 양쪽 시각에 부응해가며, 공연 속에 민족의식과 계급의식을 고루 담게 되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들의 공연은 처음에 국제주의적 연대를 강조한 내용이 위주였으나, 조선협의회가 와해되고 민족연극단체로서의 정체성이 내외로부터 요구됨에 따라, 조선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무대화하려는 리얼리즘의 높은 차원의 연극적 기법이 강구되었다. 이들 공연에서 포착되는 특성은 각 작품마다 나타나 있는 ‘조선성’과 ‘계급성’이라는 두 가지 요소로 나타나며, 그것들의 발현에는 당시의 현실적인 삶 속에서 그들이 바랐던 염원의 층위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3·1극장이 와해된 이후에는 기존 프로극 공연의 정치 편중적 경향에 대한 반성적 재인식이 이루어졌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 시점을 즈음하여, 줄곧 우위를 점해 왔던 계급의식과 잠재되었던 민족의식의 비중이 전도되는 가운데,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자의식을 공연 속에 명확히 드러낼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때 이루어진 공연은 고려극단으로의 개편 및 동경신연극연구회와 조선예술좌로의 분열과정과 맞물려 대중 영합주의와 같은 과도기적 양상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하지만 두 극단의 근저에 깔려 있던 민족연극 수립을 위한 진보의식은 나중에 조선예술좌로 통합되는 공통분모로서 작용하게 되었다. 두 극단이 통합되기 직전에 조선예술좌가 공연한 , 은 무대미술, 연출, 배우의 연기 등이 한데 어우러져 총체적인 리얼리즘 공연을 구현했으며, 그 무대는 일본 연극계의 진취적 리더들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이와 같은 성공은 김두용이 도출해낸 ‘혁명적 리얼리즘’의 이론적 정당성이 동경학생예술좌와의 상호교류를 통해 축적된 ‘로맨틱 리얼리즘’의 대중적 상연방식과 결합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통합된 조선예술좌는 1936년 가을, 당국의 강압적인 제재로 인해 해체된다. 이들의 해체는 고려극단의 출현 이후 공연의 방식이 변모했음에도 불구하고, 강한 체제비판과 첨예한 현실인식을 기조로 삼는 초기의 경향이 이어졌음을 추정하게 한다. 리얼리즘 공연의 높은 차원을 추구하였던 이들의 역량은 때를 같이 하여 조선에 귀국한 조선연극협회 회원들의 다양한 공연방식을 통해 국내에 파급되었으며, 정신·기술 양면에서 조선 극계에 적지 않은 족적을 남기게 된다. 한편 조선예술좌에서 연마된 이들의 개별적 역량은 특히 안영일을 통해 일본 신협극단의 공연 활동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이때 특히 ‘조선성’이 일본식으로 미화되어 수용된다. 여기에는 군국주의로 향하는 문화정책의 영향도 간과될 수 없으나, 그보다는 혁명적 전통성을 근간에 지닌 재일조선인 연극인들의 민족정신에 대한 일본 극계의 동경심이 크게 작용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이들 재일조선인 연극운동에 개재되어 있던 민족정신의 존재는 사실상 프로극운동을 포함한 이들의 전시기적 활동 속에 제국주의적 지배로부터 해방되어 독립하려는 실천적 의지가 운동의 핵심 동기로서 자리 잡고 있었음을 방증한다. 이러한 점은 예컨대 해방 직후 연극계의 좌·우 대립구조 속에서, 이념적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민족 독립에 대한 염원과 식민 통치에 대한 저항 정신을 그린 김사량의 작품 공연에 재일조선인 연극인들이 대거 참여하였다는 사실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이는 연극운동에 임했던 그들의 공통적인 의식과 지향을 나타내는 것이라 하겠다.
본 연구는 그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새로운 발굴 자료들을 통해 아직 충분히 연구가 이루어져 있지 않은 재일조선인의 연극운동에 대한 하나의 인식 틀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여기서 도출된 결과가 이 분야의 연구를 활성화시키고,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 재일조선인 연극운동이 한국 근현대 연극사에 풍요로운 자양분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Language
Korean
URI
http://hdl.handle.net/10371/121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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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Program in Performing Arts Studies (협동과정-공연예술학전공)Theses (Ph.D. / Sc.D_협동과정-공연예술학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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