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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전설의 문헌전승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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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다쓰노 사요
Advisor
권두환
Major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Issue Date
2013-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Description
학위논문 (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국어국문학과 국문학 전공, 2013. 2. 권두환.
Abstract
본 연구는 금강산 전설의 유형과 특성을 고찰함으로써 금강산의 종교적 표상성과 금강산 표상의 역사적 변모를 규명하는 데에 논의의 목적을 두었다.
금강산 전설은 금강산 내에 거주했던 승려나 금강산 주변에 거처했던 주민들, 그리고 일시적으로 금강산을 방문했던 유람객들에 의하여 전승되었다. 고려 후기 이래 금강산은 산수 유람의 명소로 자리매김하였다. 자연스레 적지 않은 사대부들이 금강산을 방문하기에 이르렀다. 금강산 전설의 주요 전승자인 동시에 유람객의 안내를 담당해야 했던 승려나 주민들은 자기들이 공유하고 있던 전설들을 적극적으로 유람객들에게 전달하였다. 이렇게 금강산 전설을 접한 유람객들은 금강산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들을 기행문이나 한시 속에 담기도 하였다. 그 결과 많은 문헌에 기록된 금강산 전설은 지역과 시대를 넘어 활발하게 전승될 수 있었다.
금강산 전설은 크게 불교 유형과 도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불교적 색채의 전설이 많은 까닭은 금강산이 담무갈보살(曇無竭菩薩)의 진신이 머무는 불국토로 추앙을 받았고 산내 곳곳에 사찰과 암자 등 불교 유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금강산에서는 『화엄경』에 나오는 금강산의 주불인 담무갈보살, 인도에서 바다를 건너 전래된 유점사(楡岾寺) 53불, 보덕암(普德庵)에 봉안된 관음보살에 관한 이야기들이 꾸준히 전승되었다. 사람들은 금강산에 부처의 진신이 있다고 믿어왔던 것이다.
금강산 전설 중에는 도가적 색채의 전설, 곧 신선의 자취를 찾거나 신선세계에 있다는 동식물에 관련된 이야기들도 적지 않다. 특히 사선(四仙)이나 경순왕(敬順王) 태자, 양사언(楊士彦) 등은 과거에 금강산에서 등선한 인물로 전승자들의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또 금강산에 있는 신기한 동물이나 식물을 학이나 불로초로 전승함으로써 금강산에 신선세계를 구현하려 했다.
불교적, 도교적 색채의 전설에 재래 종교나 유교 등 여러 종교가 얽히면서 서로 갈등하거나 습합하기도 하였다. 여기에서 비롯된 복합적 성격도 금강산 전설의 주요한 특성 중 하나이다. 특히 금강산의 주불인 담무갈보살이나 53불은 자연재해에서 승려들을 지켜주는 수신(水神)으로서의 역할도 함께 담당하였다. 또한 금강산에서 수행한 고승 진표(眞表)나 인도 승 지공(指空)과 법력 대결을 한 김동거사(金同居士)는 후대 전승에서 사대부적, 도사적 성격을 겸한 불제자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즉 금강산 전설은 특정한 종교 사상에 바탕을 두면서도 여러 종교의 성격을 함께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금강산이 특정 종교의 사상만으로 해석되지 않는 복합적인 종교적 표상성을 가졌음을 암시한다.
금강산이 지닌 종교적 표상성은 한반도가 겪어 온 역사와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변모하였다. 금강산은 고대에도 신령한 성소로 인식되어 국가적인 제사의 대상이 되었고 수행자들의 발길이 모이는 성소가 되었다. 그런데 금강산은 특히 한반도가 내우외환의 어려움을 겪었을 시기에 그 당시 유행하던 종교의 성지로 확립되어 나라와 민중들을 구제하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먼저 12세기부터 14세기까지 무신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거란이 침공하는 한편, 원나라가 내정을 간섭하기 시작하면서 고려에서는 화엄사상이 유행하였고 이에 따라 금강산은 담무갈보살이 머무는 불국토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후 불국토로서의 금강산은 원나라나 명나라에 알려지는 등 국외에서 두터운 신앙을 받기도 하였다. 그 후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전반에는 왜란을 시작으로 심각한 기근과 호란에 의한 국난을 겪으면서 신선사상이 유행하였다. 그 결과 금강산은 삼신산(三神山)의 하나인 봉래산(蓬萊山)으로서 새로운 표상성을 획득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모를 통해 금강산은 여러 종교적 요소를 습합하였으며 복합적인 성소로서 사람들 마음속에 자리를 잡기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금강산 유람을 소원하였고 금강산을 구경한 지식인들은 자신의 유람체험을 적극적으로 문학작품에 반영하였다.
근대에 들어서면서 금강산의 아름다운 경치가 대중매체를 통하여 대중들에게 소개되었다. 나아가 금강산이 관광지로 개발되면서 대중성을 획득하게 되었다. 그런데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금강산은 한반도를 분단하는 경계 지역이 되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없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그만큼 금강산에 대한 그리움도 사람들 마음속에서 커져갔다. 현재 금강산은 한반도, 그리고 한민족을 대표하는 영산으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뚜렷이 그려지고 있다.
Language
Korean
URI
http://hdl.handle.net/10371/12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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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국어국문학과)Theses (Ph.D. / Sc.D._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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