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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30년대 시에서의 죽음의 문제
The Problematique of Death in 1920s and 1930s Korean Poe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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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권희철
Advisor
신범순
Major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Issue Date
2014-08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죽음바깥생성무한이미지 운동
Description
학위논문 (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국어국문학과, 2014. 8. 신범순.
Abstract
‘죽음’에 대한 인식 및 죽음의 이미지는 근본적인 차원에서의 ‘시적인 것’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죽음’이 하나의 문제적 사건으로 떠오르고 그에 대한 인식을 중심으로 다양한 상념들이 모여드는 것은, 인간이 자신이 소유한 개체성에 대해 강한 애착을 갖기 때문이며 동시에 그러한 개체성을 초월하고자 하는 욕망을 갖기 때문이다. 서로 반대되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이러한 애착과 욕망은 한편으로 인간이 삶 그 자체에 충실하게끔 하는 압력이 되며 다른 한편으로는 삶이 삶 그 자체를 뛰어넘는 것이 되게끔 하는 압력이 된다. 이러한 정신적 힘의 모순된 방향은 ‘시적인 것’의 모순과 근본적으로 동일하다. 시는 삶이 겪는 세목들에 대한 애착이며 삶 그 자체를 활성화시키고자 하는 정신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결코 삶 그 자체로는 환원될 수 없는 무한의 체험에 도달하고자 하는 욕망의 표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죽음에 대한 인식이 이와 같은 모순된 방향을 지향하는 한에서 죽음의 이미지 또한 서로 반대되는 두 방향으로의 운동을 함축한다. 죽음의 이미지는 하나의 대상을 변화시키고 그 대상이 자신으로부터 빠져나오게 하며 유한한 개체성이 스스로를 보호하고 있는 경계선으로부터 풀려나와 무한을 향해 나아가는 운동을 함축한다. 그러나 죽음의 이미지는 동시에 그러한 풀림의 운동 자체를 일련의 상징들의 다발로 응결시키는 운동 또한 함축한다.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시적 이미지의 운동과 동일한 것이다. 시적 이미지는 세계와 바깥, 유한과 무한 사이에 놓여있는 다리이며 세계 속의 유한한 것들을 동요시키고 비등하게 만들어 그것을 바깥 혹은 무한의 차원으로 옮겨놓는 정신적 힘이자 그러한 힘을 상징하는 일련의 기호들의 연쇄를 유한한 것들이 세계 안에서 소유할 수 있게끔 만드는 정신적 힘이다.
1920년을 전후한 시점에서 많은 시들이 꿈과 밤, 영혼과 죽음, 무덤과 눈물 등의 시어를 빈번히 노출시킨 것은 흔히 지적되는 것처럼 이 시기의 시들이 감정과잉의 미성숙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본격적인 시문학 형성기에 접어든 우리 시가 시적인 것의 근본적인 차원을 탐구하면서 그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죽음에 대한 인식 및 죽음의 이미지를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기의 시인들은 현실적인 삶과 엄격히 분리되는 공간을 상상하면서 바로 그곳에서 시적인 것을 체험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맥락에서 삶과 분리되는 시적 체험과 죽음의 불가능한 체험은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그들은 죽음이라는 문제적 상황에 접근하면서 무한의 체험을 욕망했다. 그들은 현실적 삶 속의 체험들과 구분되는 이 불가능한 체험들을 위해서, 이성과 노동이 지배하는 낮과 구분되는 밤이라는 독특한 시간의 양태를 발견하고 그 안에서 다시 꿈이라는 비현실적인 감각의 양태를 개발했다. 현실적 공간 속에서 국지화된 채로 삽입되어 있는 죽음의 공간인 무덤은 시적 주체들을 자극하면서 그들을 밤과 꿈의 영역으로 이끌었지만, 이 두 영역이 조화롭게 양립할 수 없으며 현실 속에서 무한의 체험이 크게 위축되었다는 인식이 눈물의 형태로 표현되기도 했다. 이러한 ‘눈물’ 위로 시인들은 시 속에서 유한과 무한을 동시에 체험할 수 있게끔 하는 정신적 기관을 단련시키고자 했는데, 이 정신적 기관이 ‘영혼’이다. 그것이 김소월의 ‘시혼(詩魂)’이며 나중에 이상(李箱)의 ‘골편(骨片)-나무’로 재등장한다.
이 시기의 시적 탐구는 삶과 엄격히 구분되는 차원을 상상하면서 죽음과 무한의 영역을 발견했지만, 시인들은 무한의 체험을 삶 속에 통합시키며 삶을 다른 차원으로까지 열린 것으로 변환시키고자 했다. 이렇게 해서 ‘죽음’은 ‘삶’의 대척점에 놓이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 세계 안에 머물러 있고자 하는 삶’의 대척점에 놓이며, ‘스스로를 고양시킴으로써 자기 자신을 극복하고자 하는 생명력의 분출’과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1920년대 시인들은 삶과 죽음의 이원론 속에서 시적인 것에 대한 탐구를 시작했지만 그들의 탐구는 삶과 죽음의 이원론을 소멸시켰다. 그러한 바탕 위에서 삶과 죽음이 얽혀드는 정지용과 백석의 ‘시적 그릇’의 이미지, 그리고 서정주와 윤동주의 ‘태양-씨앗’의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이상(李箱)은 자신의 시적 탐구가 죽음에 대한 탐구와 동일한 것임을 강조하면서 죽음의 완성을 통해 삶을 완성시키고자 하는 독특한 시적 의무를 스스로에게 부여했다.
II장에서는 『장미촌』과 『백조』, 김억과 김소월의 시를 검토했다. 이 시기의 시들은 세계와 바깥, 유한과 무한을 구분하면서 후자에서 시적인 것을 발견하고자 했으며 그것을 매혹적이고 도취적인 것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은 무한의 영역을 특권화하면서 그것을 현실의 삶과 엄격히 분리하고자 했기 때문에 오히려 현실의 삶을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것으로 폄하하고 삶과 반대되는 것으로서의 죽음을 찬미하는 허무주의의 모습을 띄기도 했다. 김억의 이론적 작업들과 김소월의 시는 죽음에 대한 시적 탐구를 허무주의로부터 구해내고 그것을 개별 생명체가 아니라 모든 생명체를 아우르는 생명력 그 자체의 흐름에 접속시키는 것으로 변모시켰다. 특히 김소월의 시가 표현하는 ‘영혼’의 시학은 죽음의 이미지를 통해 개별자들이 더 높은 차원을 향해 존재론적 도약을 감행하는 힘을 보여줬다.
III장에서는 정지용과 백석, 서정주와 윤동주의 시를 검토했다. 이 시기에 이르면 시인들은 두렵고 낯설지만 매혹적인 무한의 영역을 탐험하기보다, 그러한 영역의 체험 내용을 세계 속에서 수신하고 그것을 삶 속에 담아낼만한 정신적 장치들을 고안해내고자 했다. 정지용과 백석의 시는 세계 속의 작은 그릇 안에 세계보다 더 커다란 무한을 품으며 그것을 유한한 삶과 조화시키는 ‘시적 그릇’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또 서정주와 윤동주의 ‘태양-씨앗’의 이미지는 죽음의 영역을 통과하면서 새롭게 재생하고 더 강렬해지는 생명력에 대한 욕망을 함축한다.
IV장에서는 이상의 텍스트를 검토했다. 특히 1절에서는 「지도의 암실」에 대한 상세한 주석을 시도했는데, 그것은 이 작품이 ‘죽음’에 대한 시인의 의식을 분명히 제시하고 있으며 다른 작품들과의 관련성을 두드러지게 표현하고 있어 이상 연구에서 특별한 지위를 차지하는 데도 이에 대한 선행 연구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이상은 ‘밤의 산책’과 ‘죽음에 대한 시적 탐구’를 동일시하면서, 죽음과 같이 황폐화된 현실을 보는 동시에 풍요로운 생명력을 담고 있는 죽음의 세계를 탐험하고자 했으며 무엇보다 이 두 영역을 통합하고자 했다. 그는 거울의 이미지와 숫자, 동물 기호 혹은 기하학적 기호들을 활용하면서 이러한 시적 작업을 수행했는데, 그의 작업이 최종적으로 가리키는 것은 삶과 죽음이 서로를 완성시키는 존재론적 도약에 대한 정신적 설계이면서 동시에 그러한 도약을 불가능하게 하는 황무지와 같은 현실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었다.
Language
Korean
URI
http://hdl.handle.net/10371/121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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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국어국문학과)Theses (Ph.D. / Sc.D._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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