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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실 사친묘(私親廟)의 운영과 사도묘(思悼廟)의 건립 : A Study on the Operation of Royal Tablet Halls and Building Sadomyo Shrine during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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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김지희

Advisor
전봉희
Major
공과대학 건축학과
Issue Date
2017-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왕실 사친묘(廟)사도묘조선시대별묘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건축학과, 2017. 2. 전봉희.
Abstract
이 연구는 조선시대 임금의 사친(私親)을 향사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묘(廟)와, 그 중 하나의 사례로서 장조(莊祖)의 사도묘(思悼廟)를 구체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왕실 사친묘(私親廟)가 운영되었던 방식과 사도묘의 특징을 고찰하고자 함에 목적이 있다. 묘(廟)는 특정한 인물의 신주를 봉안하고 제향을 지내기 위한 건축 유형이다. 따라서 여타의 건축물과는 달리 건축의 주체뿐 아니라 건축의 대상이 되는 인물이 존재한다는 특징이 있다. 이 연구에서는 왕실의 사친을 향사하기 위한 사당을 통합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각종의 문헌 자료 분석을 토대로 개념어와 분석의 틀을 제안하고, 제향 대상의 관계 및 지위에 따라 건축의 형태를 분류하여 살펴보았다. 또한 그 존속 기간이 짧아 상대적으로 연구의 성과가 부족하였던 사도묘에 대해 위치와 건립 과정을 구체적으로 분석하여 밝히고 다른 사례와의 비교를 통해 특징을 고찰하였다.
먼저, 조선시대 역대 임금의 생부, 생모, 그리고 세자였으나 즉위하기 전에 사망한 아들의 신주를 모시는 사당을 통틀어 왕실 사친묘(私親廟)라 규정하였다. 또한 왕실 사친묘를 제향 대상 인물의 측면에서 이해하기 위해 제향의 주체가 되는 현 왕을 기준으로, 혈연관계에 따라 생부·생모·아들로 구분한 뒤 다시 대상의 지위에 따라 건축 형태를 살펴보는 방식을 분석의 틀로 설정하였다.
조선시대 왕위 계승의 변칙적인 전개와 왕실 명부 및 세자 책봉의 제도는 다양한 유형의 사친이 발생하는 원인이 되었으며 이들의 묘는 종묘·가묘·별묘의 형태로 구분지을 수 있다. 먼저, 임금의 사친이 사망 시에 선대의 왕이나 왕비일 경우에는 종묘에 배향되었다. 종묘는 친진의 예법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신실의 증축이 이루어졌으며 이는 현재 종묘의 형태를 만들어냈다. 사망 시에 종친이거나 외명부에 속하였던 경우에는 가묘에 모셔졌다. 이 경우 왕이 직접 형제 중에서 사자를 지정하였으며 대개 대신을 보내 제사를 주관하도록 하였다. 왕의 생모가 후궁 또는 폐비이거나 아들이 세자, 세손, 혹은 폐세자인 경우는 별묘의 형태로 건립되었다. 생모의 경우에는 후궁일 때는 가묘에 모셔졌다가 아들이 즉위한 이후가 되어서야 별묘가 건립되었다. 반면 제향 대상인 사친의 위상이 아들에서 다시 생부로 변화하게 되면 추존왕이 되어 종묘에 부묘되었다.
또한, 왕실 사친묘 중 대표 사례로서 사도묘의 위치와 경역을 살펴보았다. 세심대(洗心臺) 일원은 사도묘가 위치하였던 곳으로, 16-17세기에 용인이씨 가문의 주택이었던 세심정(洗心亭)이 존재하였다. 하지만 광해군대인 17세기 초에 왕실 소유의 구역으로 이속되고 18세기에는 왕실의 질병가인 세심궁(洗心宮)으로 이용되었다. 이후, 사도묘가 건립되었으나 이건된 뒤 선희궁(宣禧宮)으로 변화하였다. 일제에 의해 사친묘로서의 기능이 끊겼으며 조선총독부 제생원(濟生院)이 운영되었다. 또, 이들에 관한 문헌 자료와 근대 도면 자료 등을 검토한 결과, 사도묘는 현재의 국립서울농학교 및 맹학교의 경역에 존재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사도묘의 형태를 보여주는 것으로 알려진 「경모궁구묘도」와 각종의 문헌 자료를 분석한 것에 따르면 사도묘에는 한 차례의 공사 과정이 추가로 존재하였다. 따라서 기존에 수은묘의 이건계획도라고 알려져 왔던 세 번째 층위는 사도묘의 축소개건을 위해 계획된 변경안인 것으로 해석하였다.
마지막으로, 사도묘와 동일하게 별묘의 형태로 건립되었던 기타 왕실 사친묘를 위치 및 신주 봉안 방식, 그리고 공간 구성과 규모의 측면에서 비교하였다. 소현묘, 효장묘 등과 같이 세자의 사당인 경우 대개 북부 순화방을 중심으로 분포하며 다른 세자들과 동일 경역 내 합사되었다. 반면 육상궁, 경우궁 등과 같이 생모의 사당인 경우에는 보다 넓게 퍼져 분포하고 있으며 모두 단독으로 향사되었다. 즉, 사도묘는 세자의 사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건립된 장소와 신주 봉안 방식의 측면에서는 오히려 내명부 출신인 생모의 사당과 유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편, 공간 구성과 규모의 측면에서는 왕실 사친묘로서 최소한의 기능을 갖추고 있는 수은묘, 문희묘와 유사한 것으로 확인된다. 내신문의 양쪽에 제기고와 중배설청이 이어 배치되어 있으며, 그 안쪽의 정당 영역에는 신주를 봉안하는 중심 건물인 정당과 이안청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또한, 사도묘를 포함한 수은묘, 문희묘, 그리고 의소묘 등 세자/세손의 묘에서는 정당 9칸, 이안청 1칸, 중배설청 2-3칸의 구성이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어 이 또한 왕실 사친묘로서 제례의 공간이 갖춰야 했던 최소 공간의 기준인 것으로 생각된다.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24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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