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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 國體變革期 滿洲族 團體의 政治活動, 1901-1924
The Political Activities of the Manchus Associations during National Polity Transformation In China, 1901-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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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정세련
Advisor
유용태
Major
사범대학 사회교육과(역사전공)
Issue Date
2014-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滿洲族光緖新政立憲君主制五族共和共和政體辛亥革命宗社黨滿族同進會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사회교육과(역사전공), 2014. 2. 유용태.
Abstract
近代 中國의 國體는 辛亥革命을 전후하여 專制君主制에서 民主共和制로 전환되었으나 그 와중에 입헌군주제로의 재전환도 시도될 정도로 동요하였다. 본고는 이러한 國體 變革期에 만주족 단체의 정치활동을 분석하여 그들이 어떻게 위기를 타개하려고 노력하였는지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청조 정부는 러일전쟁 전후 瓜分의 위기와 혁명 사조의 확대에 대처하기 위해 立憲君主制로의 전환을 모색하였다. 이 과정에서 滿洲親貴 및 지식인과 관료들 사이에 군주 중심 입헌체제와 의회 중심 입헌체제의 도입을 주장하는 의견이 나뉘었다. 그 결과 최종적으로 군주 중심 입헌체제의 도입이 결정되어 1906년 豫備立憲이 선포되었다. 동시에 청조는 만주족이 종래에 보유하고 있던 특권을 축소하고, 漢‧蒙‧回族 등 각 민족에게 법적으로 평등한 지위를 인정하는 등 위험요소로 지목된 민족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리고 變通旗制處 등을 설립하여 만주족의 계몽 및 생계자구책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민간에서도 만주족 지식인 역시 단체 결성 및 여론 형성을 통해 만주족의 자구책 마련 및 근대화를 역설하며 입헌체제에 걸맞는 ‘公民’으로의 변화를 추진하였다. 일부는 孫文이 이끄는 혁명세력의 논리에 찬동하여 學堂과 지역 사회, 新軍 등에서 혁명세력에 자발적으로 동참하여 청조로부터의 독립과 새로운 정치체제로의 전환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노력은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였고, 혁명의 성공으로 인해 결국 무산되었다.
辛亥革命의 성공에 따라 중국의 국체가 ‘五族共和’로 상징되는 공화국 체제로 변혁되는 시점에서, 만주족은 청조 통치기간 중 유지하였던 지배민족의 위치를 내어 주고 ‘공화국 국민’, 혹은 ‘中華民族’의 일원으로 편입되었다. 만주족은 기존에 ‘旗人’으로서 누렸던 사회적 특권을 상실하였고 그들이 ‘民人’이라 칭하던 다른 민족들과 동등한 권리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그러나 신해혁명으로 인한 국체변혁이 청조와의 타협을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북양정부는 ‘황실우대조건’으로 상징되는 만주족 우대정책을 일정 부분 제시할 수밖에 없었다.
만주족은 이렇게 기존 집권 세력을 말살하는 폭력적 왕조교체가 아닌, 정치체제의 비폭력적 근대화 과정에서 그동안 지배층으로서 갖고 있던 경험‧위치‧역량을 활용하여 각종 단체를 결성하여 자신들의 활로를 주체적으로 개척하고자 하였다. 滿洲親貴들은 宗社黨을 중심으로 청조의 부활과 입헌군주제의 실시, 만몽독립을 내세우며 일본과의 협력을 통해 독자세력화를 모색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는 실질적인 근거지의 부재와 일본 외교정책의 변화로 인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한편 공화정체에 순응하고자 하는 만주족은 滿族同進會를 중심으로 北洋政府의 「關於大淸皇帝辭位後優待之條件」과 馮玉祥 政權의 「修正淸室之優待條件」 정책에 대응하여 滿族同進會를 중심으로 정치적 지위 보장과 생계문제 해소를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였다. 그러나 北洋政府의 旗地沒收 정책 등 만주족 약화 정책과 만주족의 정치권력화 실패로 인해 이들의 정치적‧사회적 영향력은 점차적으로 축소되어 갔다.
한편 宗社黨의 활동과 별개로 1915-17년 공화국체제를 입헌군주제로 재전환하려는 시도가 발생하였다. 중화민국 총통 袁世凱의 황제즉위 시도와 張勳의 復辟 시도가 그것이다. 이는 만주족에게 새로운 출로의 가능성을 제공하는 듯하였다. 그러나 두 차례의 군주제 부활시도가 실패함에 따라 공화국 체제는 되돌릴 수 없는 시대의 대세로 확정되었다. 특히 신해혁명을 주도한 동맹회 세력의 후신인 국민당이 공화혁명의 완수를 목표로 1924년 급속히 부상함에 따라 만주족의 곤경은 더욱 커졌고, 이는 만주족 우대정책 폐지로 이어졌다. 이에 만주족은 기존의 단체활동 보다는 소형집회를 중심으로 한 권익활동을 통해 자신들의 활로를 개척하려 하였고, 일부는 東三省 지역에 설립된 각종 ‘維持會’를 중심으로 일본에 협력하여 만주국 수립을 통한 독자세력화를 모색하였다.
본고는 이같은 만주족의 정치적 자구 노력이 청말 新政시기부터 주체적지속적으로 행해졌음을 지적하고, 만주족 세력의 분기와 그에 따른 활동을 세부적으로 고찰하였다는 점에 그 의의를 둔다.
Language
Korean
URI
http://hdl.handle.net/10371/127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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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Education (사범대학)Dept. of Social Studies Education (사회교육과)History (역사전공)Theses (Master's Degree_역사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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