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도편에서 도공들의 서사로: 경기도 광주관요 분석 프로젝트를 통해 본 도자사와 보존과학의 도자기 연구

Abstract

이 연구의 목적은 보존과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의 형성과 변화 양상을 과학데이터와 언어와의 관계를 통해 분석하는 데에 있다. 그 중 이 논문에서 다루는 도자기 보존과학자는 고고학적으로 발굴된 도자기를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그 원료 및 제조공정 등을 규명하려는 목적을 가진 연구자를 통칭한다. 1990년대를 전후하여 등장한 이들은 그전까지 재료공학이나 분석화학에서 사용되던 최신 분석기기들을 도자기 도편(陶片)에 적용함으로써 새로운 과학데이터들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보존과학의 과학데이터는 기성 과학 분과에서 사용하는 분석 기기들을 통해 만들어지지만, 재료공학이나 분석화학에서 만들어지는 데이터와는 다르게 도자사와의 관계로 인해 독특한 특성을 가지게 된다. 이는 보존과학에서 생산되는 과학데이터가 해당 분과의 형성기에서부터 도자사의 언어와 틀에 상당부분 기대어 있었기 때문이다. 도자사에서 분석적·기술적으로 사용되는 언어를 일상어적 용법을 갖고 있는 보편적 전문어와 일상어와 관련 없이 도자사 내에서 국한돼 사용되는 특수한 전문어의 두 가지 언어로 분류한다면, 보존과학의 과학데이터는 그 중에서 보편적 전문어를 바탕으로 산출된 결과물이었다. 이 때문에 보존과학의 과학데이터와 도자사의 보편적 전문어는 일상어적 용법을 암묵적으로나마 공유해왔다. 이 논문에서는 보존과학 과학데이터의 이러한 특징이 확립되는 과정을 분석하기 위해 1990년대 초반 고경신이 외국의 분석법을 바탕으로 고유한 보존과학 연구 프로그램을 발전시킨 과정을 살펴볼 것이다. 이 과정은 고경신이 뚜렷한 목적의식 하에 외국의 분석방법론을 취사하고 발전시킨 과정이자, 물리화학자였던 그녀가 실험을 위주로 하는 분석화학·재료공학 중심의 연구방법론과 도자기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습득하고 결합하는 과정이었다. 특히, 미세구조 분석은 여러 방법론 중에서도 도자기의 가시적 특징과 성분의 관계를 규명하고자 하는 고경신 실험실에서 중점적으로 발전한 기법으로, 고경신 보존과학 연구 프로그램에서 생산되는 새로운 과학데이터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처럼 부분적으로 도자사에서 유래했으나 고경신 연구 프로그램의 확립과 더불어 보존과학은 하나의 독립적인 분과로 성립했다. 이와 더불어 보존과학 과학데이터의 의미 역시 안정화되었다. 그러나 고경신의 연구 프로그램을 습득한 이영은이 경기도 광주관요 분석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가운데 보존과학 과학데이터의 성격에 유의미한 변화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는 보존과학자 이영은이 보존과학의 맥락에 한정된 과학데이터의 일상언어적 의미연관을 도자사의 맥락과 다시 연결하여 얻은 결과였다. 고경신이 보존과학 분과형성 과정에서 도자기를 기술하는 특정 보편적 전문어를 도자사적 맥락과는 독립적인 과학데이터로 변환하였다면, 이영은은 이러한 언어의 도자사적 의미연관을 복원함으로써 과학데이터를 도자사적으로 유의미하게 해석할 수 있었다. 본 연구는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나타난 새로운 종류의 과학데이터들이 문학, 역사와 같은 인문학을 비롯하여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사용되는 사례 중 하나이다. 일부에서는 차, 와인처럼 인간의 오감을 과학데이터의 수치로 변환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품질평가에 적극 활용하기도 한다. 본 연구는 이처럼 일상언어를 기반으로 할 수 밖에 없는 과학분과의 경우, 과학이 일상적 판단을 대체한다기 보다는 또 다른 언어로 일상언어를 표현할 수 있는 기법과 기술을 개발하는 것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