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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도어 로만의 "노사 화합 정책"의 구상과 실천(1874-1891): 독일제국 사회정책을 중심으로 : Die Konzeption und Praxis der "versöhnenden Arbeiterpolitik" von Theodor Lohmann im deutschen Kaiserreich (1874-1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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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이재규

Advisor
안병직
Major
인문대학 서양사학과
Issue Date
2012-08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테오도어 로만노사 화합 정책독일제국 사회정책노동자 보험노동자 보호노동자 권익보장내방선교사회정책협회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서양사학과, 2012. 8. 안병직.
Abstract
본 논문은 프로이센 상공부와 독일제국 내무부에서 근무한 고등 추밀고문관 테어도어 로만의 소위 "노사 화합 정책"을 통해 독일제국 사회정책을 재조명하려는 시도이다. 로만의 "노사 화합 정책"의 실현 가능성과 성격에 대한 지금까지의 연구들은 대체로 그가 1883/4년 노동자 보험법과 관련하여 비스마르크와 겪었던 갈등에만 집중하였다. 하지만 로만은 1871년 제국창건 즈음부터 1901년 '신 항로' 시대까지 지속적으로 노동자 보험뿐 아니라 노동자 보호와 권익 보장을 위해서 노력하였기 때문에, 로만의 "노사 화합 정책"을 더 포괄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로만은 사회문제를 해결하여 지상에서 신의 왕국을 실현하는 것을 자신의 목표로 삼았고, 그 방법으로 사회정책협회가 주장한 일련의 사회개혁사상에 주목하였다. 이를 위해서 우선 국가는 노동자들에게 윤리적으로 살 수 있도록 최소한의 기반을 제공해야만 한다. 이 기반 마련은 노동자가 자율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노동자들에게도 이상적 도덕 공동체의 실현에 동참할 의무가 있고, 자율성은 그 의무수행을 위한 동기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자기책임과 자기부담을 기반으로 복리후생과 같은 사항들을 스스로 결정한다면, 이상사회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가정의 경제적•도덕적 기반을 자력으로 다질 수 있다. 노동자들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과 연대의식을 배우고 사회통합을 이루어, 궁극적으로는 이상사회의 실현에 일조할 것이다.
로만은 1880년을 전후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노동자 보험을 통해 "노사 화합 정책"을 실현하고자 노력하였지만, 여러 차례 비스마르크와 갈등을 겪었다. 비록 새로 탄생한 독일제국을 사회민주주의가 전복할 수도 있다고 경계하고 이를 방지하기 위한 사회정책 도입의 필요성을 인정한 점에서 로만과 비스마르크는 생각을 같이 하였지만, 두 사람은 그 방법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비스마르크는 노동자들에게 연금 형식의 보험을 통해 노동자들의 물질적 요구를 충족시킴으로써 노동자들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반면에 로만은 비스마르크의 방식이 불완전한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파악했다. 진정한 계급 간 화합과 사회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우선 노동자들은 자신들도 사회 공동체의 정당한 일원이라는 사실을 다른 구성원들로부터 인정받아야 한다. 노동자에 대한 정당한 인정은 그들에 대한 보호와 배려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하고, 노동자들이 자신들과 관련한 사항들에 직접 참여해야만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로만은 그 방법으로 노동자 보험에 주목했다. 보험 이해 당사자인 노사가 동등한 자격과 책임으로 같이 운영하면 평화롭게 문제를 해결하여 상호 신뢰를 구축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노동자 계급은 물질적인 최저 기반을 보장받을 뿐 아니라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도 배워 나아간다. 보험제도는 이렇게 노동자들이 보편적 복지를 위한 자기 책임과 공동책임의 인식을 얻을 수 있는 사회적•교육적인 공간을 제공하여, 계급 간 완전한 화합을 달성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각종 노동자 보호 조치와 직접 참여를 통한 권익보장 방안은 반드시 필요한 정책이라는 것이 로만의 생각이었다.
결국 "노사 화합 정책"은 '미완의 제국'에 노동자 계급을 어떻게 포함시킬 것인가에 대한 로만 나름의 답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밖에 로만을 통해 제국 행정부 중심에 로만과 같이 비스마르크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개혁적인 관료들도 적지 않게 포진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흔히 관치국가로 알려진 독일제국이 철혈정책을 주장하는 비스마르크와 같은 권력 엘리트들에 의해서만 운영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렇듯 프로이센 주도의 독일제국 창건에 대한 반발은 그 중심인 제국 수도 베를린에서도 역동적으로 일어났고, 로만은 그 역동성의 산증인이었다.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3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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