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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 맥닐과 아일랜드 민족주의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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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장진경
Advisor
박지향
Major
인문대학 서양사학과
Issue Date
2016-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이언 맥닐아일랜드 민족주의게일연맹아일랜드 의용군부활절 봉기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서양사학과, 2016. 2. 박지향.
Abstract
본고는 19세기 말-20세기 초 아일랜드의 민족주의 운동을 활발히 이끌었던 이언 맥닐(Eoin MacNeill, 1867-1945)의 민족주의적 신념을 분석하고, 그가 1920년대 아일랜드 민족주의 운동의 변화에 미친 영향을 새로이 살펴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맥닐은 당대 문화적 민족주의의 대표적인 단체였던 게일연맹과 군사적 민족주의의 대표적인 단체였던 아일랜드 의용군 모두의 조직과 성장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던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20세기 아일랜드 민족운동사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하였으며, 오히려 ‘우유부단한 지도자’ 혹은 ‘부활절 봉기 실패의 책임자’라는 부정적인 평가를 주로 받아왔다. 1960년대부터 아일랜드 민족운동사 연구에 수정주의가 도입되면서 맥닐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졌으나 여전히 피상적인 수준의 분석에 그칠 뿐, 그가 보유하고 있던 신념과 그의 활동이 아일랜드 민족주의 운동의 지향점에 가져온 변화에 대해서는 충분한 설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맥닐은 분열된 아일랜드 인들을 ‘하나의 아일랜드’ 안으로 통합하고 의회당이 독점하고 있던 자치 운동을 다시 대중 중심으로 돌려놓으려고 했던 인물이다. 그가 게일연맹의 설립에 참여하였던 1893년의 아일랜드는 심각한 분열과 갈등을 겪고 있었다. 가톨릭과 신교도를 아우르던 민족 지도자 찰스 파넬이 1891년에 사망하면서 이전부터 아일랜드 사회에 존재해왔던 종교적인 분열은 심화되었다. 특히 신교도가 주를 이루고 있던 얼스터 지역이 자치법의 시행을 강하게 반대하면서 종교적, 지역적 갈등은 더욱 고조되었다. 또한 대중을 민족주의 운동에 직접적으로 동원하였던 파넬과 달리 의회당의 새로운 수장이 된 레드몬드는 대중 정치를 신뢰하지 않았고, 의회를 통한 자치법의 상정만을 유효한 자치 운동의 수단으로 삼았다. 가톨릭과 신교도로 분열된 아일랜드 대중은 민족주의 운동에서 주변적인 위치로 물러나 있었다.
본고는 이런 상황 하에서 맥닐이 전개하였던 민족주의 운동을 문화 영역에서의 활동과 군사 영역에서의 활동으로 나누어 살펴보면서, 각기 다른 분야에서 그가 보유하고 있던 일관적인 태도와 신념에 대하여 분석한다. 문화적 민족주의 영역에서는 언어를 중심으로 아일랜드 인들을 하나로 통합하고 대중 중심의 운동을 전개하고자 했던 게일연맹 활동을, 군사적 민족주의 영역에서는 대중이 무기를 들고 적극적으로 자치 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아일랜드 의용군 활동을 살펴본다.
맥닐의 활동에는 분명한 한계점들이 있었고, 그는 각각의 단체에서 실패를 경험하였다. 비정파적, 비종파적 단체로 시작하였던 게일연맹의 경우 1913년 비정파적 노선을 철회하면서 온건한 민족주의자들을 조직에서 배제하였으며, 아일랜드 의용군은 1916년 부활절 봉기가 발발하였을 때 잉글랜드에 대항하는 선제 공격을 감행하면서 방어적 군사주의를 포기하였다. 그 결과 맥닐의 희망과는 반대로 얼스터 지역과의 통합은 영원히 불가능한 것이 되었고, 아일랜드 내에서 가톨릭과 신교도의 결합 역시 요원해졌다. 그러나 맥닐은 아일랜드의 민족주의 운동을 대중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에 성공하였으며, 이는 이후의 자치 운동을 이끌어나가는 동력으로 작용하였다.
파넬 사후 의회당에만 의존하고 있던 아일랜드 대중은 게일연맹과 의용군 활동을 경험하며 이제 민족주의 운동의 주체로 스스로 일어서게 되었다. 20세기 아일랜드 민족주의 운동의 영웅으로 기억되는 마이클 콜린스와 에이몬 데 발레라 역시 게일연맹에서 아일랜드 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획득하고 의용군에서 군사 훈련을 경험한 대표적인 인물들이었다. 이들이 영-아일랜드 게릴라 전쟁과 아일랜드 자유국의 성립에 기여하면서 맥닐의 유산은 아일랜드의 역사 속에 남았다.
Language
Korean
URI
http://hdl.handle.net/10371/13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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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Western History (서양사학과)Theses (Master's Degree_서양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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