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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아메리의 작품에 나타난 죽음 담론의 변화 연구
Die Wandlung des Todesdiskurses in ausgewählten Werken Jean Amér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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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박윤혜
Advisor
최윤영
Major
인문대학 독어독문학과
Issue Date
2014-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장 아메리『죄와 속죄의 저편』『르푀 혹은 붕괴』『자유죽음』아우슈비츠언어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독어독문학과, 2014. 2. 최윤영.
Abstract
본 논문은 장 아메리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그의 삶, 죽음과 언어에 대한 인식을 포괄하는 죽음담론의 변화양상을 분석한다. 분석의 주요 대상이 되는 작품은 『죄와 속죄의 저편』, 『르푀 혹은 붕괴』와 『자유죽음』 이상 세 가지로, 각각의 작품은 아메리의 초기, 중기, 후기의 인식과 성찰 방식을 보여준다. 이 연구의 목표는 논문의 마지막 장에서 다루게 될 아메리의 후기 작품인 『자유죽음』에 나타난 아메리의 자살에 대한 주장들을 명확하게 이해하는데 있다. 이를 위해 본문에서는 먼저 그의 초기와 중기 작품들에서 나타난 생각들을 분석하고, 이어서 이를 후기의 주장들과 비교한다.
1966년에 출판된 『죄와 속죄의 저편』은 유대계 독일인이었던 아메리가 나치 시대에 겪었던 일들에 대한 내적성찰이 담긴 작품이다. 여기서 회자되는 고문이나 강제수용소에서의 피폐한 생활은 실제의 죽음으로 직결되는 경험들이다. 그러나 아메리는 이처럼 실제의 죽음 앞에 강제로 끌려온 상황에서는, 죽음이라는 것이 인간에게 오히려 무의미해진다고 주장한다. 그는 죽음이 인간에게 모종의 의미를 지니기 위해서는 죽음에 대한 사유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아메리는 자신의 경험을 반추하며, 극심한 고통을 느끼는 육체에 사로잡힌 자에게는 이러한 정신활동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이것은 인간의 삶과 사유를 강력하게 지배하는 강제수용소의 현실 앞에 놓인 수감자에게도 마찬가지다. 아메리는 수감자가 과거에 제 아무리 심원한 철학자였다 해도, 매일같이 죽음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는 도리어 죽음에 대한 일말의 고찰도 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고문과 강제수용소가 아메리에게 남긴 잔인하지만 명징한 깨달음은 바로 이러한 정신의 한계에 대한 인식이었다.
이러한 인식 아래 그는 죽음에 관한 고찰을 인간 정신의 한계 너머에 있는 것으로 분류한다. 그는 더 이상 과거의 죽음이 아닌 현재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 것이다. 아메리가 이러한 결론을 내리는데 있어서 또 하나의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은, 그가 20세기 초반에 영향을 받았던 논리실증주의와, 전후에 경도되었던 실존주의 철학이었다. 이 두 가지 철학은 죽음을 경험하거나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 혹은 주체의 의지와는 무관한 것으로 여기며, 죽음문제를 철학적 고찰에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철학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아메리는 자신에게 죽음을 강요했던 과거보다는, 이 죽음으로 점철된 과거를 극복한 삶에 대한 고찰에 전념한다. 이러한 그의 의도는 작품의 부제인 ‘정복당한 사람의 극복을 위한 시도’에서 잘 나타난다.
이처럼 죽음을 강요당했던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마지막에는 결국 현재의 삶으로 나아가고자 한 아메리의 자세는 『르푀 혹은 붕괴』의 초반부에서 계속 이어진다. 이것은 작중에 나타난 ‘퇴락’ 개념에 대한 설명에서 드러난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르푀는 자신에게 퇴락이 무기력하게 죽음을 향하는 과정이 아니라, 진정한 삶을 향한 의지로 충만한 행동이라고 주장한다. 이 진정한 삶을 위해, 그는 거짓된 방식의 삶과 발전을 강요하는 흐름에 맞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채’ 퇴락해간다는 것이다. 퇴락을 지지하는 르푀의 태도는 『죄와 속죄의 저편』에서 ‘원한’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아메리의 태도와 유사성을 지닌다. 그는 진정한 과거의 극복은 과거에 대한 망각이나 해결을 거부하는 희생자들의 원한을 인정해야지만 비로소 가능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메리의 원한과 퇴락에 대한 논의에서는 옳은 것을 지지하는 ‘긍정의 방식’이 아닌, 그릇된 것을 거부하는 아메리의 고유한 ‘부정의 방식’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아우슈비츠를 어떤 ‘옳은’ 방식으로 기억하거나, 아우슈비츠 이후에 어떤 ‘바람직한’ 방식에 따라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그릇된’ 방식들을 단호하게 거부할 뿐이다.
아메리의 부정의 방식에 따라, 르푀는 작품 중반까지도 계속 퇴락을 죽음이 아닌 삶과 연결시킨다. 그러나 작품 후반부에 들어와 이러한 퇴락에 대한 르푀의 입장은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된다. 그 최초의 계기가 되는 것은 과거 아메리가 수용되었던 프랑스 귀르 수용소 부근에 위치한 라크 지방에 세워진 라크 공업시설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다. 르푀는 이것을 목격하는 순간, 반강제적으로 아우슈비츠에서의 죽음을 상징하는 화장터의 연기를 연상한다.
다시 한 번, 이번에는 르푀라는 인물의 통해 자신의 과거와 죽음문제를 마주하게 된 아메리는 이전에는 지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전형적인 비허구적 에세이 형식을 가진 전작들에서와 달리, 『르푀 혹은 붕괴』는 에세이-소설이다. 이 새로운 장르를 통해 그는 소설의 서사적인 층위를 통해 성찰 대상에 대해 보다 비판적인 거리를 확보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 층위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가 바로 르푀라는 인물이며, 이 인물은 곧 아메리가 자신의 사유와 언어를 통해 만들어낸 복합체다. 『르푀 혹은 붕괴』 이전까지 아메리는 자신이 아우슈비츠의 경험으로 인해 어떤 대상을 전적으로 긍정할 수 있는 ‘세계에 대한 신뢰’는 잃어버렸지만, 적어도 어떤 대상을 비판하고 부정할 수 있는 ‘언어에 대한 신뢰’가 남아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메리는 바로 이 장면에서 르푀가, 즉 자신의 언어가 지난 과거 앞에서 한없이 무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어떠한 문학적 이미지나 형이상학적 철학도 자신의 과거와 지난 죽음에 대해 설명할 수 없다. 이러한 좌절은, 아메리에게 자신의 언어가 자신의 과거뿐만 아니라, 이 과거 위에 만든 현재의 삶에 대해서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작중에서 이러한 언어에 대한 신뢰의 붕괴는 결국 르푀의 죽음, 즉 언어적 복합체의 힘의 상실로 이어진다. 그리고 작품 초반에 르푀가 고수했던, ‘퇴락은 곧 삶의 정수’라는 주장은 작품 마지막에 이르러 ‘퇴락은 곧 죽음’이라는 상반된 주장으로 전환된다. 죽음에 대해서 사유하기보다는 죽음을 극복한 삶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했던 전작들과 비교했을 때, 『르푀 혹은 붕괴』에서의 이러한 결말은 죽음에 대한 아메리의 인식이 변화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런 측면에서 이 작품은 아메리의 죽음에 대한 인식 변화 과정에 있어서 급격한 전환점이 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르푀 혹은 붕괴』의 집필 이후, 아메리는 이처럼 아우슈비츠의 죽음으로부터 간발의 차이로 벗어난 자신의 삶이 삶뿐만 아니라 죽음에 관한 문제와도 가까이 연결되어 있다는 입장으로 돌아선다. 죽음을 삶과 실존에 관한 담론 밖의 것으로 여겼던 사르트르와 달리, 아메리에게는 삶과 존재에 관한 문제가 곧 죽음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죽음을 비논리적이고 경험 불가능한, 나아가 사유 불가능한 대상으로 여기는 입장에 반박하며, 죽음, 특히 자신의 죽음에 대해 주체가 어떻게 성찰할 수 있는지를 밝혀내고자 한다.
이 작업을 시작하기 위해 아메리는 먼저 성찰의 도구인 인간의 이성에 대해 자세히 고찰해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죽음과 같이 불가해하고 모호한 대상에 대해 성찰할 때의 이성은 흔히 이성의 반대항으로 간주되는 정서적 느낌 혹은 막연한 예감까지도 포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성은 항상 이성 그 이상의 것이어야 한다’는 아메리의 입장은 『자유죽음』 이후의 에세이들에서 그가 제시하는 보편적 이성의 확대라는 새로운 과제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 과제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간 이성의 힘을 통해 어떠한 모순적인 사유나 현상에 대해서도 고찰하고 설명하기를 멈추지 않는 계몽이다.
『자유죽음』에서의 죽음과 자살에 대한 논의는 이러한 계몽이라는 과업의 시발점이 되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아메리가 죽음 가운데서도 특히 자살과 자살자에 주목했던 것은, 그가 바로 여기서 주체가 온전한 자기만의 의지와 명료한 이성에 따라 자신의 죽음을 마주하고 결행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신의 해석을 뒷받침하기 위해 아메리는 먼저 자살자가 반드시 정신이상자거나 지나친 폭력성이나 결여된 사회성과 같은 성격적인 결함을 지닌 인물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오히려 자살자를 자신의 행동과 결정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는 이성적이고 평화로운 주체로 간주한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아메리는 주체의 온전한 ‘자유의지’로 결행된 자살을, 주체의 삶과 더불어 그 삶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부조리와 부자유까지도 모두 ‘무화’시키는 ‘부정의’ 해방으로서의 자살을 자유와 연결시키며 ‘자유죽음’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절대적 무(無)를 상징하는 죽음은 자유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자살이 자유로의 길은 될 수 있을지언정, 죽음도 그리고 자신의 죽음도 자유 그 자체는 아니라고 못 박는다. 『자유죽음』에서 아메리는 자유죽음 개념을 통해 죽음과 자살이 곧 무한한 자유와 영광을 가져다준다는 자살예찬론을 펼치지 않는다. 그는 사회의 일원들 대다수가 비윤리적이고 비인간적인 것으로만 간주하는 자살을 자유죽음으로 해석함으로써, 필연적으로 죽음으로 귀결되는 인간 존재가 자신의 죽음을 고찰하고 나아가 직접 선택하는 행위에 일말의 인간적인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고자 했던 것이다.
Language
Korean
URI
http://hdl.handle.net/10371/132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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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German Language and Literature (독어독문학과)Theses (Master's Degree_독어독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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