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朱熹「醉下祝融峰」詩의 受容樣相 研究
朱熹《醉下祝融峰》诗的受容样相研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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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장문완
Advisor
이종묵
Major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Issue Date
2017-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朱熹,『南嶽倡酬集』,「醉下祝融峰」,衡山,祝融峰,豪氣,山水遊覽,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국어국문학과, 2017. 2. 이종묵.
Abstract
국 문 초 록

본 연구는 『南嶽倡酬集』에 실린 朱熹의「醉下祝融峰」이라는 시작품이 어떤 방식으로 한국에 전래되었는지, 전래된 이후 한국 문인들에게 어떻게 읽혔는지, 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등의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이 작품의 한국적 수용양상을 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고려 말 주자학이 한국에 들어온 이후, 많은 한국 문인들이 주희의 철학을 연구하였고 그의 문학 작품 역시 적극적으로 수용하기도 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남악창수집』은 단적인 예이다. 특히 그 중 「취하축융봉」은 실제로 한국의 문학사와 문화사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작품이다. 중국 문학사에서는 중요성이 높지 않고, 또 유명하지도 않은 「취하축융봉」이 뜻밖에도 한국에서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사실은 흥미로운 문화현상으로서 주목할 만하다. 따라서 본고는 ‘방법으로서의 한문화권’을 방법론으로 삼아 『韓國文集叢刊』에 실려 있는 「취하축융봉」과 관련된 문헌 자료들을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취하축융봉」의 수용양상을 규명하였다. 본고는 주희의 시문학의 한국적 수용에 관한 연구를 보완하는 데에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Ⅱ장은 예비적 고찰로서 『남악창수집』의 서지학적 정보와 「취하축융봉」의 기본 성격을 밝힘으로써 「취하축융봉」의 한국적 수용양상 연구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1절에서 『南嶽倡酬集』이 어떤 방식으로 한국에 전래되었고 전파되었는지를 밝혔다. 明弘治本의 『남악창수집』은 김안국을 비롯한 사절단을 통해 1518년(중종 13)에 『주자대전』, 『주자어류』, 『이락연원록』 등 성리학에 관한 서적과 함께 조선으로 수입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에 전래된 『남악창수집』은 당대 명문장가였던 이행이 이 시집에 수록된 시 전체를 대상으로 화운한 이후 조선 문인들에게 널리 알려졌고, 특히 정구를 비롯한 퇴계학파 문인들 사이에서 유행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악창수집』은 1562년 이전에 목판으로 初刊되었고, 1585년에는 경주에서 복각되었으나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대부분 일실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남악창수집』은 필사되거나 주희와 장식의 문집을 활용하여 직접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2절에서는 「취하축융봉」이 주희의 일반적인 도학시와는 달리, 철학적 사고의 韻文적 표현이 아니라 순수한 서정 문학의 성격을 가졌음을 밝혔다. 또한 이 시의 풍격이 호방하기 때문에 본래 성리학파의 시를 극도로 배격하던 청대 문학 평론가들도 이 시에 대해서는 ‘참된 사상(眞性情)’을 품고 있다면서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며, 극찬을 하였다는 중국 문인의 평가를 밝혔다.
Ⅲ장에서는 조선 문인들이 「취하축융봉」을 어떻게 인식하였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취하축용봉」이 한국 문인에게 어떤 특별한 의미를 지녔는지를 밝혔다. 조선 문인들의 이 시에 대한 인식은 다양하다. 송상기, 김유, 이상정, 신활, 김종정은 성리학의 산수유람관을 가지고 주희의 축융봉 유람을 수양의 공부로 인식하였다. 보통 조선 문인들은 주희가 발한 豪氣의 실체를 浩氣로 인식하여, 주희의 높은 유흥은 ‘仁智之樂’ 때문이라며, 그의 호방한 모습을 수양의 최고 경지를 나타내는 외재적 표상, 즉 견줄 데 없이 훌륭한 성현의 기상으로 보았다. 그러나 안정복과 이익은 주희의 호기의 실체를 타고난 성품, 즉 ‘天性으로서의 豪氣’로 인식하였다.
Ⅳ장에서는 「취하축융봉」이 조선 문인의 산수유람과 한시 창작에 끼친 영향을 고찰하였다. 한시 창작의 경우, 주희가 「취하축융봉」에서 토로한 산수지락은 조선 문인들에게 유자가 응당 추구해야 하는 산수지락의 전범으로 받아들여졌다. 그 결과 「취하축융봉」이라는 시 또한 산수지락을 토로하는 한시의 전범으로 조선 문단에 수용되었고, 조선 문인들의 한시 창작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던 것이다. 조선 문인들이 이 시를 활용하는 방식을 구체적으로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조선 문인들은 「취하축용봉」을 차운함으로써 맑은 유흥을 형상화하였다. 둘째, 「취하축용봉」을 용사하거나 제 3, 4구를 점화함으로써 ‘호흥’을 표현하였다. 셋째, 제 4구를 점화하여 산수 유람할 때 얻은 ‘선취’를 토로함으로써 자신의 逍遙 혹은 초탈의 志趣를 표현하였다.
Language
Korean
URI
http://hdl.handle.net/10371/132187
Files in This Item:
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국어국문학과)Theses (Master's Degree_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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