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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象列次分野之圖〉에 나타난 역사계승의식 : The View of Historical Succession of the Joseon Dynasty Based on Cheonsang-Yeolcha-Bunya-Ji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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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남궁승원

Advisor
김건태
Major
인문대학 국사학과
Issue Date
2016-08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천상열차분야지도천문도권근계승의식고조선기자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국사학과, 2016. 8. 김건태.
Abstract
본 논문은 〈天象列次分野之圖〉의 유래에 대한 기존 인식의 흐름과 타당성을 검토하고 천문도의 유래가 기록되어 있는 〈天文圖誌〉의 내용에 대한 검토를 통해 〈천상열차분야지도〉를 조선 초기의 역사계승의식과 왕조교체의 정당화 방식을 보여주는 사료로서 새롭게 해석하고자 했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일반적으로 고구려의 천문도를 모본으로 해서 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천문도의 유래에 대해 설명한 〈천문도지〉에는 이에 대한 분명한 증거가 나타나 있지 않다. 〈천상열차분야지도〉가 고구려 천문도를 모본으로 해서 제작되었다는 이론을 처음으로 제기한 것은 미국인 천문학자였던 윌 칼 루퍼스(Will Carl Rufus)였다. 루퍼스가 고구려 기원설을 주장하면서 제기했던 주요 문헌 근거는 〈천문도지〉가 아닌 《大東野乘》에 수록된 〈陽村圖說〉이었다. 그러나 전상운을 시작으로 이후 이루어진 다수의 연구는 〈천문도지〉 자체가 고구려 기원설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주요 근거인 것처럼 인식했으며 이러한 인식은 점차 상식이 되었다. 기존 연구의 인식과 다른 방식으로 그 유래를 검토한 연구도 있었지만 고구려 기원설을 근본적으로 반박하지 못했다.
〈천상열차분야지도〉의 고구려 기원설은 문헌적으로, 천문학적으로 근거가 부족하며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직접적인 모본은 고려의 천문도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주요 근거였던 〈양촌도설〉 자체의 사료적 신빙성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루퍼스는 그 내용을 잘못 해석하여 고려 말이라는 표현을 고구려 말로 오독했다. 이는 천문도의 고구려 기원설에 대한 문헌 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천문도에 대한 기존의 천문학적 분석 역시 여러 문제가 있다. 기존 천문학적 분석 결과를 그대로 수용한다면 〈천상열차분야지도〉의 관측 추정 주체는 낙랑군이라는 결론이 도출되므로 고구려 기원설을 증명해주지 못한다. 또한 기존의 연구들은 천문도 제작시기 추정의 하한선을 설정하는 근거를 루퍼스의 잘못된 문헌 해석에 의존했다. 따라서 기존 연구들은 천문도 제작시기 추정의 상한선을 제시할 뿐 적절한 하한선을 제시한다고 볼 수 없다.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중앙 부분 관측 위도는 북위 38도이다. 기존 연구들에서는 이를 고구려 천문도가 조선 초기 전체적으로 개정된 증거로 파악했으나 이는 〈천문도지〉의 내용과 상충된다. 〈천상열차분야지도〉에 고려시대의 피휘 및 11세기 중국 천문 문헌의 내용이 나타난다는 안상현의 연구와 〈천문도지〉의 내용, 그리고 북위 38도에 고려의 수도가 위치했던 점을 고려하면 이 관측 위도는 〈천상열차분야지도〉의 모본이 고려의 천문도임을 보여주는 근거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의 모본이 고려의 천문도라고 할 때 〈천문도지〉에서 천문도의 모본이 위치했다고 언급한 평양은 새롭게 해석되어야 한다. 권근이 〈천문도지〉에서 언급한 평양은 고조선의 수도였던 평양을 가리키는 함의를 가지며 이는 〈천문도지〉가 조선 초기 건국세력들의 역사 계승의식을 보여주는 사료라는 것을 의미한다. 〈천문도지〉에서 고려-조선의 왕조교체를 요순의 선양과 연결시키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천문도지〉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보다 왕조의 정통성을 강조하려는 목적에 충실한 글이다. 이는 평양이라는 표현이 정통성 강조라는 목적에 따라 쓰인 것임을 보여준다. 〈천상열차분야지도〉가 만들어지던 시기의 조선은 고구려보다는 단군, 기자의 고조선에 대한 계승의식을 더 크게 가지고 있었으며 평양은 단군, 기자의 도읍이었다는 측면에서 중시되었다.
도설의 저자인 권근이 평양에 부가하는 의미 또한 중요 근거이다. 권근은 명나라 황제와 시를 교환하는 과정에서 평양을 기자로 대표되는 사대관계의 상징으로 제시했다. 그는 또한 〈천상열차분야지도〉가 제작된 것과 같은 시기에 저술한 글에서 왕조의 정통성을 강조하며 이성계를 요순과 연결시켰고 왕조교체를 선양으로 표현하는 동시에 국가의 정통성을 기자에 연결시켰다. 이는 권근이 왕조교체를 정당화했던 방식을 보여주며 같은 의도에서 만들어진 〈천상열차분야지도〉와 그 유래를 저술한 〈천문도지〉에서 나타난 평양이란 표현이 가지는 의미를 보여준다. 이에 따라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조선 초 지식인들의 기자 계승의식을 보여주는 사료라고 결론내릴 수 있다.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3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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