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승지의 정치적 변용: 북한 묘향산을 대상으로

Abstract

북한의 권력주체는 정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혁명사적지를 조성하였다. 북한의 지배 권력은 3대에 이르는 세습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서 혁명사적지를 활용하고 있다. 북한의 사회정치적 상황의 변화는 혁명사적지 정책에 반영되어 혁명사적지는 그 우상 대상의 확대와 공간적 분포의 확산을 거쳐 왔다. 그 분포 현황을 살펴보면, 학교, 공장, 경기장, 기업소 또한 혁명사적지에 포함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의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는 백두산, 금강산, 묘향산 또한 혁명사적지로 조성되어 있다. 본 연구는 이 지점에서 연구 질문을 가졌다. 첫째, 북한 정권은 왜 경승지를 혁명사적지로 조성한 것인가? 둘째, 어떤 경위로 경승지가 혁명사적지로서 변모하게 된 것인가? 셋째, 경승지의 경관은 어떻게 변모한 것인가? 본 연구에서는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북한의 대표적인 경승지 중 하나인 묘향산을 대상으로 선정하였다. 1차 자료로서 북한 원전을 중심으로 문헌조사를 하였으며, 시각 자료로서 북한의 영상 자료를 참고하였다. 분석의 틀은 다음과 같다. 북한은 정치체제의 정당성 확충과 사회통합을 위해 혁명전통과 민족전통의 창조와 복원을 통해 김일성 민족이라는 상상된 공동체를 형성하였다. 이 과정에서 공간적 상징이 새롭게 조성되거나 민족문화유산이 선별적으로 복원되었다. 근로자들과 청소년들의 전통에 대한 교양사업을 통해 만들어진 전통은 일상화되었다.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북한의 지배 권력은 역사 공간을 선별적으로 복원하였다. 북한은 한반도 내에서의 전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고조선-고구려-고려-북한으로 역사가 이어짐을 강조하였고, 이에 따라 단군과 관련된 유적인 묘향산의 단군사를 복원하였다. 또한 진보적인 뛰어난 건축술과 인쇄술을 보여주는 건축물인 만세루와 팔만대장경 보관고를 시멘트로 복원하였다. 한편, 미국과 일본에 의해 자원이 침탈당하고 파괴당했으나 김일성으로 인해 다시 복원‧보호되었음을 강조한다. 둘째, 성스럽고 위엄있는 이미지인 묘향산을 배경으로 하여 국제친선전람관과 같은 각종 상징물을 조성하였다. 이로 인해 묘향산이 그저 자연경승이나 구경하는 단순한 명승지가 아니라 세계적인 대기념비가 건축됨으로써 세계적인 경승지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이다. 셋째, 묘향산에 상징적 이미지를 부여하였다. 북한은 국토 경관을 상징하는 곳으로서 백두산, 금강산과 더불어 묘향산을 선전한다. 또한 통일 담론의 상징적인 공간으로서 묘향산을 활용하며 민족전통을 내세우고 있다. 한편, 김일성과 김정일로 인해 묘향산이 일부 착취계급의 놀이터에서 인민들의 문화휴양지로서 변모하였으며, 국제적인 관광지로서 거듭났음을 강조하고 그들의 이러한 업적은 곧 불멸의 혁명사적임을 명시하고 있다. 넷째, 경승지로의 답사와 참관을 통한 혁명전통과 민족전통의 교양을 강조한다. 답사자들은 경승지로의 경관체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혁명사적을 접하고 이를 체득하는 과정을 강요받게 된다. 또한 북한 주민들은 묘향산을 주제로 한 예술작품을 일상 속에서 접하면서 북한의 창조된 전통인 혁명전통과 민족전통은 일상화된다. 본 연구는 분단 70여 년 동안 베일에 쌓여있었던 북한 경승지의 경관적 실태를 밝히고자 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연구 방법에 있어서 북한 정권에서 발행한 문헌에 의존했기 때문에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 한계이다. 앞으로 통일 한반도의 국토계획 수립을 준비함에 있어 북한 공간에 대한 조경학적 관점의 연구가 후속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