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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한국문인의 북경 인식 연구 : A Study on Modern Korean Literatis Perception of Beij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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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이심역

Advisor
김종욱
Major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Issue Date
2018-08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2018. 8. 김종욱.
Abstract
본 논문은 근대 한국문인의 북경 인식을 보다 전반적으로 파악하는 것을 연구 목적으로 삼는다. 이러한 목적의식에서 출발하여 본고는 근대 중국과 북경에 대해 한국 지식인의 심상지리에 대한 파악을 기반으로, 근대 한국문인이 북경을 방문하고 이로써 획득한 북경 체험의 실상을 검토하고 밝히면서, 그들에 의해 기억되는 북경, 그리고 문학을 통해서 표상되는 북경이 지니고 있는 의미를 규명한다. 본고는 1931년 9월 18일 만주사변(滿洲事變)과 1937년 7월 29일 중일전쟁에서 일제의 북경 점령을 비롯한 두 개의 시기적 전환점에 의해 시기별로 북경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했던 대표적인 한국문인과 그들의 작품에 대해 검토하였다. 이로써 초점을 맞춘 한국문인이 북경을 인식할 때 각자의 특징을 밝히는 동시 그들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시대적 특성을 가려내며 최종적으로 북경 인식의 변천과정을 보여준다.

2장에서는 1920년대부터 1931년 만주사변까지 대표적으로 심훈과 박세영의 북경 인식을 조명하였다. 우선 중국에 대한 한국의 인식은 종래부터 긍정 및 부정의 이중적인 관점이 공존해왔다. 중국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된 것은 중국 국력의 쇠약과 중국을 근대화의 낙오자로 간주되는 데에서 비롯되었다. 반면에 중국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의 유래는 동아시아 공동 문명에 대한 지향으로 가진 중국에 향한 연대감과, 한국의 현실과 미래를 비추는 거울로서 중국이 지닌 참고적인 가치에 있었다. 심훈은 북경을 통해서 역사적 흐름 속에 중국의 정세를 파악하면서 조선인으로서의 자신과 조국 조선이 직면하고 있었던 현실에 대해 더욱 뚜렷한 비젼을 획득하였다. 또한 박세영이 근사한 처지에 놓인 중국을 조선과 동일시하는 태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또한 그가 중국을 위해 곤경을 타파하는 대책을 모색하는 것은 중국 혁명의 경험이 조선에 있어서 타산지석이 될 수 있다는 것, 즉 중국을 조선을 위해 미래의 길을 비춰주는 거울로 삼고자 하는 의도를 선보였다.

3장에서는 1931년 만주사변부터 1937년 북경의 함락까지 정래동, 이광수, 주요섭을 비롯한 한국문인의 북경 인식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 시기에 한국 지식인이 중국에 대해 초보적으로 현장감과 객관성을 지닌 인식이 형성되었으며, 중국 혁명 경험에 대해 보다 독자적인 목적의식을 갖추면서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를 선보였다. 이 시기에 북경지역에서 활발했던 한국 독립운동이 퇴조했고 일제의 중국침략이 시작되었지만 침략 공세가 아직 북경에까지 만연되지 않았다. 그 결과 북경 한인사회를 주도하는 이데올로기가 부재함으로써 이 시기에 한국문인에 의해 표상된 북경은 오히려 문인 간에 다방면의 차이성으로 인해 더욱 색다르고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었다. 정래동은 신문화운동과 중국 현대문학의 중심지인 북경에 머문 동안 당시 중국이 사회적·경제적인 발전에서 낙후되어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의식하면서도, 중국문학의 진보적이고 배울 가치가 있는 일면을 간과할 수 없었으며, 중국문단의 정황과 중국문학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소개하였다. 이광수는 북경을 직접적으로 방문하면서 긍정적인 인식을 표출하지만 그의 소설에서 북경이 지극히 부정적인 모습으로 등장하였다. 이러한 실제적 경험과 모순된 문학적 북경 표상은 근원적으로 그가 민족주의를 지향하면서 가지게 된 유교와 중국에 대한 비판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단되었다. 이와 같이 북경으로 대표되는 유교사상, 중국, 한족에 대한 부정과 비판은 조선의 입장에 기반하는 중국에 대한 비판적인 수용 태도의 구현으로 간주될 수 있다. 북경에서 가장 긴 기간 동아 머물었던 한국 문인으로서 주요섭은 북경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북경은 그에게 도피처로 작용하고 있으며 그는 내면의 평화를 되찾기 위해 북경에서 현실을 회피하면서 생활하였다. 따라서 주요섭의 북경 체험과 인식은 나름의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다른 문인에 비해 보다 보편성이 떨어지는 개인적인 인식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었다.

4장에서는 1937년 북경 함락부터 1945년 해방까지 김사량과 정비석을 비롯한 한국문인에게 북경이 지니고 있는 의미를 규명해보았다. 일제 말기로 들어서면서 한국의 탈식민과 주권 회복의 가능성을 중국에 기탁하는 것은 희망 없는 소모로 판단한 한국 지식인들은 적극적으로 일본 협력에 나섰으며, 그들이 중국을 바라보는 시선도 일제의 부정적인 중국관에 동조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끝까지 일제 협력을 거부하는 지식인들은 중국과의 연대와 협력을 통해서 일제에 대항하여 동아시아의 새로운 질서를 건설하려고 하였다. 중국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김사량은 한국에게 중국을 연대 및 협력의 대상으로 간주되고 있었다. 그는 중국 문화중심으로서의 북경을 경유해서 뿌리 깊은 한중 간의 문화적 연대에 기반하여 전통 문화의 고차원적 회복으로써 한국이 피식민지의 처지에서 벗어나 더 나아가 평등하게 공존하는 동아시아 질서를 구축하고자 하였다. 이와 대조되는 정비석은 소설에서 북경을 극히 천하고 부정적인 공간으로 그려내며 이로써 식민지적 인식 체계의 영향을 받았던 중국에 향한 그의 부정적인 시선을 엿볼 수 있었다. 또한 그가 북경을 비롯하여 중국을 비천한 존재로 강렬히 부정했던 것은, 그가 일제의 진영에 합류하면서 일본과 함께 중국을 피정복자로 표상함으로써 스스로 힘을 획득하며 피식민자에서 일약 정복자의 대오에 들어설 수 있다는 허위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였다.







주요어: 북경, 한인사회, 독립운동, 심상지리, 공간, 북경 체험, 북경 인식, 식민지, 탈식민, 근대화, 문명, 연대, 동아시아, 문화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44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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