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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미 육군 개혁과정 : United States Army Reform in the Early 20th Century
반 군사 전통의 극복과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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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설인효

Advisor
박상섭
Major
외교학과
Issue Date
2012-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Abstract
본 연구는 20세기 초 미 육군 개혁과정의 총체를 미국이 경험했던 국력의 급격한 상승과 그에 따른 정치사상적 변동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미국은 건국 이후 100여 년간 유럽의 주요 강대국들과 두 대양으로 분리된 채 상당한 수준의 안보를 향유해 왔다. 그 과정에서 미국은 근대국가의 기본적 속성의 하나인 군사국가에 부합되지 않는 전통과 문화, 제도를 형성해 나가게 되었다. 거대 정규군을 혐오하고, 지역적이고 자발적인 민병대 체제를 선호하는 미국의 반 군사 전통은 식민시기부터 형성되기 시작하여 19세기 동안 계속 심화, 고착되었고 미국의 근본적 정치, 사회 사상의 일부로 편입되어 정체성의 일부를 구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기록적인 국력의 신장을 경험하면서 이러한 상황은 근본적으로 변화하게 된다. 미국의 새로운 위상과 그에 걸맞은 새로운 역할을 인식한 사람들은 유럽 제국주의 사상의 도입을 통해, 또는 미국의 전통적 백인우월주의나 선민의식, 세기말의 불안감을 자극하여 대중에게 적극적이고 팽창적인 대외정책의 필요성을 점차 설득시켜 나가게 된다. 이들은 또 이러한 정책의 수행을 위해서는 규모가 크고 강력한 육군이 필요함을 절감하게 되었다. 미국 역사상 최초로 이러한 세력이 대중의 지지를 받는 일군의 정치집단으로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고 이들이 남북 전쟁 후 양성된 개혁적 장교단과 합세함으로써 20세기 초 육군 개혁은 비로소 가능하게 되었다.
개혁의 과정은 결코 순탄한 것이 아니었다. 개혁은 오랫동안 고착된 전통을 극복하고 수정는 것을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었다. 이를 위해 개혁 세력들은 새로운 담론의 제시와 확산뿐 아니라, 전통과의 적극적인 조화, 개혁 반대 세력과의 타협, 개혁의 점진적 수행 등 다양한 정치적 수완을 발휘할 수 있어야만 했다. 남북전쟁이 끝난 후 뛰어난 참전 장교들을 중심으로 시도되었던 초기 육군 개혁은 군사적 효율성만을 강조했을 뿐 이와 같은 요소를 갖추지 못해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1899년 전쟁성 장관이 된 루트는 군 개혁의 정치적 성격에 대한 뚜렷한 인식을 바탕으로 탁월한 정치적 수완을 발휘하여 100여년간 거부되어 온 군 제도 개혁의 성과를 산출하게 된다. 이러한 성취는 그의 개인적인 능력뿐 아니라 미서 전쟁 이후 변화된 상황과 주요 의회 의원 및 대중들의 달라진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제도의 성취와 실행은 별개의 문제였다. 루트가 전쟁성 장관직에서 물러난 1904년 이후 개혁은 한동안 정체 및 후퇴의 시기를 겪게 된다.
이러한 정체 및 후퇴의 원인은 여러 가지였다. 먼저 루트 개혁기 동안 이루어진 제도 개혁은 많은 한계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상술한 바 상충하는 두 가지 관점의 결합과 반대 세력과의 잦은 타협으로부터 초래된 것이었다. 개혁세력은 충분히 양성되어 있지 못했고 쉽게 분열되기 일쑤였다. 무엇보다 개혁 반대 세력은 여전히 건재했고, 이들의 반대는 완강하게 지속하였다.
1900년대 초부터 개혁세력에 의해 양성되었고 뛰어난 선동가이자 사상가였던 우드는 군 개혁에 대한 뚜렷한 비전과 의지를 바탕으로 참모부 내에서의 정치적 투쟁을 승리로 이끌고 총참모부 중심의 군 개혁을 정상화시키는데 성공한다. 이러한 성과를 통해 우드는 정권이 민주당으로 교체된 후에도 군 개혁의 성과가 지속적으로 산출될 수 있도록 했으며 루트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전통과 군 개혁의 조화와 결합을 추구하여 향후 군 개혁 사상이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1914년 유럽에서 전쟁이 발발하자 군사정책에 대한 논의는 더욱 활기를 띠게 되었다. 군 개혁 세력은 미국이 평시 전쟁 준비태세를 강화해야 한다는 논의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여론화하는데 성공한다. 평화주의와 중립을 내세웠던 윌슨 행정부가 정국에 대한 주도권을 잃고 어떠한 구체적인 조치도 취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자 의회 내의 민주당이 전쟁 준비태세 강화를 위한 입법을 주도하게 된다. 민주당은 전쟁성 장관 개리슨이 제시한 대륙군 계획을 폐기시키는데는 성공하지만 점증하는 여론의 압력을 무시할 수 없었고, 군 개혁세력의 요구와 주장을 폭넓게 수용한 1916년 국가방위법을 제정하기에 이른다.
본 연구는 20세기 초 미 육군 개혁과정을 장기간에 걸쳐 고착되어 정체성의 일부를 이루게 된 반 군사 전통의 극복과 수정 과정으로 분석하는 것으로 먼저 이러한 점을 보여주는 여러 상황적인 증거들을 제시하였다. 미서 전쟁이 끝난 후 19세기 동안 지속하였던 미 육군의 제도적, 구조적 취약성이 백일하에 드러나게 되나 이러한 문제들의 개선은 강하게 거부되었다. 전쟁성 장관과 총사령관 사이의 분열된 지휘권, 참모부 영구보직제로 인한 부정과 부패, 선임자 진급 원칙에 따른 능력자 진급의 배제 등 온갖 비효율과 부정 부패를 양산하는 불합리한 시스템들은 오히려 군에 대한 행정권의 통제력을 약화시키고 공화주의적 이상에 기여하는 하나의 순기능적 제도로 인식되었다. 또한 이러한 제도들을 개선하려는 일체의 시도는 미국의 전통적 가치를 훼손하고 유럽식의 군국주의를 도입하려는 시도로 비판되었다.
전통의 존재와 작용은 개혁 반대 세력들의 행태를 통해서도 입증될 수 있다. 기존의 제도와 관행으로부터 기득권을 누리고 있던 세력들은 이념적인 공통분모를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개별적인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개혁에 반대하기 위해 쉽게 협력할 수 있었다. 이들은 또 미국의 전통적 가치와 신념체계에 호소하는 것을 통해 의회와 대중으로부터 항상 광범위한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20세기 초 군 개혁 과정을 통해 반 군사 전통이 지속적으로 작용하고 있었다는 것은 개혁과정의 부침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군 개혁은 전통과의 조화, 반대 세력과의 적절한 타협을 통해서만 진전될 수 있었다. 1900년대 초 루트 개혁기를 주도했던 루트나 1910년 이후 개혁을 선도했던 우드는 모두 순수한 군사적 효율성을 추구하기 보다 미국적 전통과의 적절한 조화와 결합을 추구했다. 반면 루트 개혁기 동안 개혁의 성취에 큰 공헌을 했던 카터는 1903년 이후 다시 정규군 장교단의 시각으로 돌아갔고 이후 그의 견해는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져 갔다.
본 연구는 이상과 같이 전통의 존재와 영향을 입증하는 역사적 맥락을 제시하는데 더하여 제한적이나마 주요 행위자의 언행 분석을 통한 담론 분석을 시도하였다. 20세기 초 미 육군의 개혁과정은 제도의 개혁과 실행을 둘러싼 투쟁이었을 뿐 아니라 미국이라는 국가의 국가 정체성을 둘러싼 담론의 투쟁과정이었다. 따라서 군 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세력들은 단순히 적극적 외교정책이나 군사력 강화의 필요성을 주장하는데 그치지 않았고 미국 국가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거나 긍정적인 의미에서 전통과 현실적 요구가 조화를 이룰 수 있음을 제시히기 위해 노력했다. 머헨과 우드의 논의는 미국이 처한 새로운 필요에 대한 인식과 이를 위한 새로운 담론을 제시하려는 노력을 잘 보여준다.
본 연구는 이상과 같은 관념과 관념의 충돌, 관념의 수정과 변경의 전 과정을 한 국가가 경험하는 권력의 변동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하고자 하였다. 20세기 전까지 미국에서 국제체제의 기본적인 요구, 즉 생존을 위한 권력투쟁과 무관하거나, 혹은 배치되는 전통과 문화, 제도들이 굳건히 형성될 수 있었던 이유는 미국이 유럽의 주요 강대국들로부터 두 대양으로 분리된 채 비교적 높은 수준의 안보를 항상적으로 향유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미국 예외주의의 근본적 원인이며 미국이 유럽의 근대국가 건설과정과 구분되는 독특한 국가 발전 과정을 거쳐온 진정한 이유다.
19세기 후반 미국이 기록적인 국력의 신장을 경험면서 이러한 상황은 근본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국가가 더 강력해지면, 여러 형태로 그 국가의 추가적 확장을 가능하게 하고, 또 필요로하게 하는 새로운 계기와 요구, 위기가 발생하게 된다. 19세기 후반 미국 역시 이러한 전형적인 과정을 경험했다. 이 시기 미국이 경험한 변화의 본질은 신장된 권력으로 인해 주어진 새로운 기회와 그것이 초래한 도전에 대한 인식이었다. 미국은 자신의 부와 번영이 점차 의존하게 되었고 또 더욱 의존하게 될 것으로 보이는 해외에서의 이익이 일정 수준 이상의 군사력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서서히 인식하게 되었다. 이러한 이익이 지속적으로 보존되기 위해서는 유럽 강대국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어야함을 점차 인식하게 되었던 것이다.
권력의 변화는 관념의 변화를 초래한다. 새로운 권력 상황은 그 상황을 정당화할 새로운 담론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권력 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시기는 담론의 투쟁과 교체, 수정과 변용의 시기가 된다. 19세기 후반 미국은 기록적인 성장을 경험하면서 국제 관계에서 전혀 다른 위상의 국가가 되었고 이러한 새로운 위상에 걸맞은 새로운 담론을 필요로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전시기 100년 이상 지속하여온 전통적 담론은 쉽게 극복되고 수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러한 담론의 투쟁과 수정 및 변형의 과정은 20세기 초 육군 개혁과정과 그대로 상응된다.
미국은 이 시기의 변화를 통해 명실상부한 근대국가와 세계제국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그 과정은 일련의 제도적 개혁들과 함께 과거의 전통을 극복하고 새로운 전통을 수립하는 길고 지난한 과정이었다. 이를 통해 미국은 자신의 새로운 위상에 걸맞는 새로운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제도적, 사상적 준비를 마치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변화된 미국의 면모는 오늘날까지 미국적 전통의 한 축으로 여전히 존재하며 작용하고 있다.
The purpose of the thesis is to analyze the whole course of United States army reform in the early 20th century from the view point of the rapid growth which United States had experienced since the latter part of 19th century and the socio-political changes caused by it. United States had enjoyed relatively much security for more than 100 years after its independence because the country is blocked by the two great oceans from major European powers. Under these circumstances, United Stated had developed a series of traditions to abhor the building of the sizable regular army, and nation-wide military mobilization system, which doesnt correspond to one of the basic rules of modern international system, struggle for power. The tradition originated in the colonial period and had developed through 19th century and finally had been incorporated into the major part of the national identiy of the country.
However, the situation changed after the countrys experiencing the rapid growth of national power in the late 19th century. Those who recognized the increased capability and the new international status the country gained tried to convince the general public of the necessity of more active and aggressive foreign policy by introducing European imperialistic philosophies, or stimulating the traditional concept of white supremacy or elitism. They also concluded that the country needed bigger and more efficient army to carry out the tasks. For the first time in the American history, they came out to the scene and got ample public support. With them, the competent officer corps having been raised after the end of Civil War could launch the reform movement after all.
The reform didnt go smoothly. It could be only preceded after overcoming and modifying the long fixed traditions. For this, reformers had to try not only to provide and disseminate the new discourses, but harmonize with the tradion, compromise with counterforces, and do reform on more gradual base. The early reform trial made right after Civil War in the 1870s failed not having these qualities. After Spanish American War, with the wide spread recognitions of United States changed status, Elihu Root and Leonard Wood who performed these political acumen properly could make decisive successes in reforms of several army institutions and practices which had been long delayed.
The thesis provides many historical and situational contexts as evidence for its main argument that the United States army reform in the early 20th century was the process of overcoming the long fixed anti military tradition. At the same time it also tries to analyze the process of development of discourses of a few main characters supporting the main argument. But the latter approach is limited because the range of research is relatively long for such an analysis.
Language
kor
URI
https://hdl.handle.net/10371/156470

http://dcollection.snu.ac.kr:80/jsp/common/DcLoOrgPer.jsp?sItemId=000000001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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