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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후기 고승비문 연구 : 高丽后期 高僧碑文 研究 : 以政治、宗教特性為中心
정치적·종교적 특성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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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Lee Kwanuey

Advisor
박희병
Issue Date
2019-08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高麗後期高僧碑文정치권력法統意識撰述意識靈驗
Description
학위논문(석사)--서울대학교 대학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2019. 8. 박희병.
Abstract
본고는 정치적·종교적 특성을 중심으로 고려후기 고승비문에서 비주(碑主)가 성화(聖化)되는 방식의 변화상을 해명하고자 하였다.
먼저 고승비문의 일반적 특성을 예비적으로 고찰하였다. 비문은 어떠한 장르인지, 고승비문의 행적부와 의론부에는 어떤 내용이 담기는지 등을 중심으로 형식적 특성 전반을 살폈다. 그리고 정치적 힘과 종교적 권위가 고승비문에 나타나는 방식을 개관하였고, 정치적 힘이나 종교적 권위와 일정하게 관련되면서도 그것만으로 환원되지는 않는 찬자의 의식이 고승비문에 드러난다는 점도 논의하였다.
고려후기 고승비문을 본격적으로 분석하기에 앞서 고려전기까지의 고승비문의 특징을 개괄적으로 다루었다. 신라시대 고승비문은 비주(碑主)의 입당유학 경험을 존숭하였고, 비주가 불법의 영험한 힘에 의해 보호받았음을 칭송하였다.
고려전기 고승비문은 두 시기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고려전기 제1기의 고승비문은 중국 법통과 국내법통을 아울러 현창(顯彰)하였고, 고려 태조와의 일화를 부각하였다. 그리고 고려전기 제2기의 고승비문은 비주의 승직·승계 이력을 중시하였고, 치병(治病)이나 기우(祈雨)를 비롯한 영험담을 강조하였다.
다음으로 정치권력과의 관련성, 법통의식(法統意識), 찬술의식(撰述意識)을 중심으로 고려후기 고승비문의 변화상을 살폈는데, 고려후기를 무신정권기 · 원 간섭기 · 공민왕대 이후로 삼분하여 논의를 전개하였다.
먼저 고려후기 고승비문과 정치권력의 관련 양상을 밝혔다. 무신정권기 고승비문에서는 국왕(國王) · 권신(權臣) · 조사(祖師)가 각기 다원화된 권위로서 대등하게 인정되었다. 원 간섭기 고승비문에서는 원 제국질서에 대한 양가감정(兩價感情)을 엿볼 수 있었다. 표면에서는 원나라를 칭송하였지만, 그 이면에서는 제국질서에 대한 비판적 의식이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공민왕대 이후 고승비문에서는 왕권강화 운동과 더불어 불법을 수호하려는 의지가 전면화되었다.
그리고 고려후기 고승비문에 나타난 법통의식의 변화상을 고찰하였다. 무신정권기 고승비문에서는 수선사(修禪社) 결사 이래로 법통을 추숭하는 방식에서 일정한 변화가 생겼다. 원 간섭기 고승비문에서는 무신정권기 성립된 국내 법통이 이 시기에까지 계승되는 한편, 중국 법통이 제한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공민왕대 이후 고승비문에서는 중국 불교의 법통이 전면적으로 존숭되었다.
끝으로 고려후기 고승비문에 어떠한 찬술의식이 나타났는지 그 변화상을 해명하였다. 무신정권기 고승비문의 찬자는 비문의 문면(文面)에 영험담을 인입시켜 기층민에 접근하려던 당대 승려집단의 포교 전략에 동조하였고, 고승을 효성스런 존재로 성화하며 효(孝)라는 가치를 중시하였다. 원 간섭기 고승비문의 찬자는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여 중생 구제를 강조하였지만 고승의 영험한 힘은 약화시켜 찬술하였고, 당시 독서층의 성장을 고도로 의식하기도 하였다. 끝으로 공민왕대 이후 고승비문의 찬자가 된 신진사대부는 비문을 찬술하면서 유교적 찬술의식을 유로(流露)하였다.
本文旨在以政治、宗教特性為著眼點,勾勒出高麗後期的高僧碑文所塑造的碑主形象被神聖化的歷史發展脈絡。
在展開本論之前,首先預備考察了高僧碑文的一般特徵。一方面,通過梳理碑文的體裁特徵,以及高僧碑文的行述、議論兩大組成部分的主要內容,釐清了高僧碑文體裁的一般特徵。另一方面,概觀了政治權力與宗教權威在高僧碑文中的投射方式。同時也論證了政治權力或宗教權威之外,碑文撰者的意識也在高僧碑文中有所投射的事實。
其次,梳理了高麗後期之前的各時代高僧碑文的特徵。新羅時代的高僧碑文對碑主的入唐留學經歷極為尊崇,亦多稱頌碑主得到佛法靈力庇護的事跡。
高麗前期的高僧碑文可分為前後兩個時期。其中,前一時期的高僧碑文對中國法統和國內法統都有所彰顯,并多記錄碑主與高麗太祖之間的軼事。後一時期的高僧碑文則重視碑主的僧職、僧系等履歷事實,且多強調其治病、祈雨等靈驗事跡。
在本論部分,將高麗後期三分為武臣執政期、元干涉期及恭愍王朝至高麗末三個時期,圍繞與政治權力的關係、法統意識、撰述意識三個主題,對高麗後期高僧碑文的發展狀況進行了論述。
首先,闡明了高麗後期高僧碑文與政治權力之間關係的變化軌跡。在武臣執政期的高僧碑文中,國王、權臣、祖師三者的多元化權威同時得到了認可。元干涉期的高僧碑文,則可從中窺見對元朝帝國秩序的複雜感情,表面上對元朝歌功頌德,而實際上卻隱含著對元朝帝國秩序的批判意識。恭愍王朝至麗末的高僧碑文則隨著王權強化運動的展開,護法意識得到了全面貫徹。
其次,考察了高麗後期高僧碑文中所反映的法統意識的發展脈絡。武臣執政期的高僧碑文,以修禪社結社為節點,其尊崇法統的方式發生了轉變。元干涉期的高僧碑文一方面繼承了武臣執政期成立的國內法統,同時也出現了對中國法統一定程度認可的傾向。恭愍王朝至麗末的高僧碑文中,中國佛教的法統得到了全面尊崇。
最後,論述了高麗後期高僧碑文的撰述意識的發展脈絡。武臣執政期的高僧碑文作者一方面在碑文內引入了大量靈驗故事,這與當代僧侶集團接近普通民眾的傳教策略異曲同工。另一方面,將高僧刻畫為孝行圓滿的聖人,強調孝這一價值觀。元干涉期,高僧碑文作者考慮到當時的狀況,格外強調對眾生的救濟,弱化了對高僧神通力的描述,同時也有對當時讀書人階層的成長高度重視的傾向。恭愍王朝至麗末的高僧碑文作者多為新進士大夫,因而此期的碑文流露出傾向於儒家的撰述意識。
Language
kor
URI
https://hdl.handle.net/10371/161581

http://dcollection.snu.ac.kr/common/orgView/000000156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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