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blications

Detailed Information

조선 태종은 왜 李茂를 죽였을까 : Why did King Taejong order the assassination of Yi Mu?

Cited 0 time in Web of Science Cited 0 time in Scopus
Authors

남지대

Issue Date
2017-06
Publisher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Citation
규장각, Vol.50 No., pp. 1-32
Keywords
太宗李茂병권우정승공신외척閔無咎 형제King TaejongYi Mumilitary powervice-premiermerit subjectconsort clanMin Mu-gu and his brothers
Abstract
태종은 병권에 오래 간여한 李茂(1355~1409.10.)를 외척 민무구 형제와 함께 정치세력을 형성할 만한 핵심으로 보아오다, 이지성 인사 건을 계기로 그를 죽였다. 이무는 정사․좌명 1등공신으로 우정승(1401.7.~03.4.)과 영승추부사(1403.7~05.1.)를 지내며 중군도총제를 겸하였고, 1407년 7월 다시 우정승이 되어 9월 世子朝見에 輔行하였다. 이무의 죄목은 1409년 10월 태종이 밝힌 국문할 내용으로, 충성을 믿을 수 없음과 난신 민무구 형제와 연결되었다는 것이다. 무와 행정 능력으로 오랫동안 병권에 간여했으나 충성을 온전히 믿을 수 없는 이무가 세자의 외삼촌 민무구 형제와 연결되었다 판단하여 죽인 셈이다. 1409년 5월 우정승 이무가 보고 없이 이지성의 관작을 올려준 것이 계기였다. 태종은 7월 초 이무를 우정승에서 파면했고, 7월 말 聽政하지 않겠다며 대신들에게 크고 작은 일을 처리하라 하여 그 잘못을 드러냈고, 8월의 禪位 선언 때 삼군진무소로 병권의 제도적 장악을 확인한 뒤 8월 말 王旨를 내려 의정부가 대간으로 하여금 고발하도록 하였다. 고발이 없자, 태종은 9월 초 민무구 형제가 세자 외의 왕자를 없애자는 말을 하였다는 것을 재론하였다. 옥사가 번져서 9월 26일 대간이 이무의 죄를 6가지로 지적하였고, 27일 이무를 순금사에 내렸다. 10월 1일 태종이 이무의 잘못을 설명하여 대질하는 국문을 거쳐, 3일 창원부에 귀양보냈다가 5일 사람을 보내 쫓아가 죽주에서 죽였다. 제도를 개혁하여 大臣의 병권 간여를 통제하고 병권 장악을 바탕으로 정치세력을 형성할 가능성을 차단하여 왔기 때문에, 태종이 이무를 죽인 것은 자신에게만 충성을 오롯이 하지 않은 신하에 대한 본보이기 懲戒로 보인다. 의리를 표방하고 강제하는 조선의 왕권이 성립한 것이다.
ISSN
1975-6283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74448
DOI
https://doi.org/10.22943/kyujg.2017..50.001
Files in This Item:
Appears in Collections:

Altmetrics

Item View & Download Count

  • mendeley

Items in S-Space are protected by copyright, with all rights reserved, unless otherwise indicated.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