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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삼년상을 통한 태종 왕통의 완성 : Final Legitimation of King Taejongs Succession to the Throne through his Observance of the Three-year Mourning Period for his Father King Tae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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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남지대

Issue Date
2016-12
Publisher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Citation
규장각, Vol.49 No., pp. 421-451
Keywords
태종태조삼년상皇考王統嫡統祔廟TaejongTaejoSamnyonsang[三年喪]hwanggo[皇考]Wangtong[王統]Jeoktong[嫡統]
Abstract
태종이 태조 삼년상을 통하여 王統의 완성을 마무리한 것을 검토한 글이다. 1408년 5월 태조가 74세로 졸하여, 아들 태종이 상주로서 태조 삼년상을 치렀다. 삼년상이 미리 정해져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백관이 易月로 禫除한 뒤에 대신들이 聽政을 청하였는데, 태종은 아직 49재와 장례가 끝나지 않았다고 불윤하였다. 9월 장례를 치른 뒤에 명 사신이 肉膳들기를 권한 것을 굳이 사양함으로써 상중임을 거듭 밝혔고, 중순 예조에서 祔廟 시기를 정하는 과정에서 삼년상이 공식 확정되었으며, 하순 明帝가 사신을 보내어 태조에게 賜祭 賜諡한 것을 계기로 삼년상을 내외에 천명하였다. 태종이 虞祭의 신주에 皇考라 씀으로써 태조를 바로 이은 왕통을 이미 천명하였고, 사시 받은 것을 有明賜諡康憲이라 改題하여 다시 온 천하에 밝히었다. 바로 그 날 민무구 형제의 죄를 낱낱이 밝히는 교서를 내려 그 용서할 수 없음을 확인하였다. 1409년 3월 태종은 모후의 齊陵에 한식제를 지내러 가기 전에 신덕왕후 貞陵을 도성 밖으로 옮겼다. 태종이 적통의 근거인 모후가 태조의 嫡妻임을 확인하고 (세자) 芳碩의 어미를 繼妃로 낮춤으로써 왕통의 바름을 내세우려는 것으로 읽힌다. 윤4월에 태조의 健元陵에 비를 세워 태종이 부왕 태조를 이은 자신의 공을 새김으로써 王統은 태종이 바랐던 대로 완성되었다. 小祥 후에는 6월에 하교하여 구언하는 등 정사에 의욕을 보이다가, 8월에는 세자에게 선위를 선언하였다가 추석 직전에 없는 것으로 되었다. 10월 하순에 명에 진헌마 1만 필을 보내기로 하였고, 태종은 바로 세밑에 건원릉에 친히 제사 모셨다. 1410년 3월 제릉을 배알하려 개성에 가 있으면서, 민무구 형제를 賜死하였다. 1410년 5월에 大祥, 7월 보름에 禫祭한 뒤에 하순에 종묘에 祔廟하고, 8월 초에 건원릉에 免喪을 아뢰면서 태종의 삼년상이 모두 마무리 되었다.
ISSN
1975-6283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74470
DOI
https://doi.org/10.22943/kyujg.2016..49.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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