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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문학에 나타난 조선의 의미 : 李光洙文学における「朝鮮」の意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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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정성훈

Advisor
김종욱
Issue Date
2021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이광수조선장소심상지리금강산인류애노스탤지어李光洙朝鮮場所心象地理金剛山人類愛ノスタルジア
Description
학위논문(석사) -- 서울대학교대학원 :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2021.8. 김종욱.
Abstract
本稿は、李光洙の1930年代初期までの文学における「朝鮮」の意味の変化を分析する。今までの李光洙研究で「朝鮮」は、特定の目的を果たすために追求される観念的な価値、いわば「民族的なもの」として理解されてきた。しかし、李光洙文学における朝鮮は、李光洙がその中で追求した「場所/居場所」(place)の問題と結びついている。この質問は、そもそも李光洙にはどうして「朝鮮」が問題だったのかを問うことでもある。従って本稿は、時期ごとに異る条件から李光洙が朝鮮を繰り返し再意味化しつづけてきたということを、また、その中で李光洙が摸索した理想の場所が李光洙文学を理解するために重要であることを解き明かそうとする。このような観点から本稿は、上海臨時政府からの「帰国」(1921年)を中心に李光洙の文学を大きく分ける。
第2章では、李光洙が放浪や日本留学などの国外在留の間、自分のアイデンティティをどのように定立していったかを確認する。この時期の李光洙は、「文明」を基準にして朝鮮を評価しつつも、自分自身は朝鮮の「外」から朝鮮を眺めようとした。「上海から」や「海蔘威から」では、国際情勢を客観的に把握しているようだが、実際に自分はそのような国際社会に参加することができないという「遊者」としての自意識が見られる。この「遊者」の状態を切り抜けるなかで、朝鮮は啓蒙の対象として位置づけられるようになる。また西洋は、文明に達さなかった朝鮮の到達するべきのモデルとして想定された。「東京雑信」、「龍洞」、「農村啓発」などのテキストで李光洙は「留学生」の立場から朝鮮の現実を客観的に「眺めたり」、もしくは未来の朝鮮の持つべき価値を「描き出す」ことに集中する。朝鮮との物理的・心理的な距離の確保が朝鮮の現実を一つのイメージとして認識することを容易にしたのである。
しかし、このような認識はあくまでも李光洙が朝鮮の「外」にいる時にだけ可能なものであった。従って、朝鮮に一時帰国して朝鮮の南部地方を旅行して書いた「五道踏破旅行」や、朝鮮の現実を具体的な背景とする小説『無情』では、むしろそのような意図を超えるような、複合的な朝鮮の意味を見い出すことができる。たとえば『無情』では、近代的な時空間の秩序に編入されていない七星門の外や、直線の時間軸の上に配置されにくい黃州という空間が描かれる。一方、「五道踏破旅行」での李光洙は、慶州などの、過去の物語が込められている場所で過去を想像したり、郷土という価値を見つけたりする。朝鮮の体験は想像の中の朝鮮と実際の朝鮮の差を確認することでもあったが、このような経験は朝鮮を一つの心象地理として理解することを疑問にして、それまで持ち続けてきた留学生としての自分のアイデンティティを見直す切っ掛けとなる。
第3章では、上海臨時政府を経て朝鮮に帰国した後までを分析する。「彷徨」に示されている、「朝鮮」と自分との関係についての苦悩は帰国前後まで続く。特に、帰国当時の李光洙は「変節者」とみなされて、朝鮮の中で自分の居場所をみつけにくい状況であって、「民族」を媒介して朝鮮の民衆と関係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このような状況は、李光洙が朝鮮という共同体の構成員として歓待を受けられず、自分の「場所」が得られなかったことを意味する。李光洙がもう一度朝鮮で文筆活動に携わったり社会運動をしたりするためには、自分の帰国に理由を与える必要があった。自分の「場所/居場所」を持つために、帰国の意図という空欄にどの答案でも記入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この状況で、李光洙は二つの解決策を立てる。
一つは、それまで自分が持っていた朝鮮の「心象地理」を棄て、朝鮮の民衆の中に積極的に身を投げることであった。「感謝と謝罪」や「ある朝」で示されているように、この案は民衆と自分とを結びつく新しい論理を要求するが、ここで金剛山というヘテロトピアの経験が突破口となる。個体の「私」よりもっと大きい「宇宙」を経験することによって、李光洙は民族という特殊ではなく、「人類」という普遍をてがかりに民衆との関係がつけられるようになる。このような考え方が金谷と金剛山という『再生』の二つの空間に形象化される。
もう一つは、自分と朝鮮との間にすでに存在していた「故郷」というつながりを強化し、それによって朝鮮人としてのアイデンティティを再確認することであった。「嘉實」や「許生傳」から見い出せるこの仕方は、民族主義者としてのアイデンティティを再び固め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1930年代の状況の中で極大化する。これは『土(흙)』で朝鮮へのノスタルジアという形に現れるが、このようなノスタルジアは主人公の許崇をサルヨウル(살여울)に定着させるたやすい方法である同時に、朝鮮という空間の複合性を「故郷」という単一のイメージに還元させる余地がある。言い換えると、「過去の故郷」というホモトピア的性格の強い空間として朝鮮を描くことによって自分のアイデンティティを固めることであった。
結論として、1920年代からの李光洙文学の中に新しく描かれ始めた場所は、李光洙が朝鮮での自分の「場所/居場所」を得るための摸索の結果だったと言えよう。変っていく条件の中で、李光洙は朝鮮という空間の体験を通して、自分と朝鮮との間の距離を調整したり、自分のアイデンティティを変えたりした。また逆に、そのような経験がテキスト化することによって朝鮮には新しい意味が与えられた。李光洙の文学で見つけられる「朝鮮」の様々な意味は、「朝鮮」を単なる「民族」に置き換えて読めることが不可能であること、また、李光洙の帰国を単なる「安定」と理解することが不可能であることを証する。さらにこれは、ある作家の文学を産む土台や条件としての「朝鮮」という空間が、各々に同じく与えられてはいなかったということをも示唆する。このような観点は、植民地朝鮮の内外で様々な空間を経験した文人たちにとって「朝鮮」で文学することが何を意味するかを解き明かす研究に繋がるべきである。
본고는 1930년대 초반까지의 춘원 이광수(李光洙, 1892-1950) 문학에 나타나는 조선(朝鮮)의 의미 변화 양상을 분석하였다. 그간의 이광수 연구에서 조선은 특정한 목적을 위해 추구된 관념적 가치, 요컨대 민족적인 것으로 이해되어 오고는 했다. 그러나 이광수 문학에 나타나는 조선은 그가 그 속에서 추구하고자 한 장소/자리(place)의 문제, 즉 자신에게 주어진 장소와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의 문제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이를 규명하는 것은 애시당초 이광수에게 왜 그토록 조선이 문제되었는가를 묻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시기에 따라 서로 다르게 주어진 조건들이 이광수로 하여금 끊임없이 조선을 새롭게 의미화하게 했으며, 이 과정에서 이광수가 모색했던 이상적인 장소들이 그의 문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는 점을 밝히고자 했다. 이에 따라 1921년 상하이 임시정부로부터의 귀국을 기점으로 그의 문학을 대별하였다.
2장에서는 1919년 전까지 방랑과 일본 유학을 비롯한 국외 체류 기간에 이광수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정립해 나갔는지를 살펴보았다. 이 시기의 이광수는 문명을 준거점으로 조선을 평가하면서도, 그 자신은 조선 바깥에서 조선을 바라보고자 했다. 「상해서」나 「해삼위로서」에는 국제 정세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면서도 정작 그 자신이 그러한 세계 속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유자(遊者)로서의 자의식이 발견된다. 이 유자 상태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조선은 계몽의 대상으로 위치지어져 갔고, 이때 아직 문명에 미달된 조선이 도달해야 할 모델로 서양이 상정되었다. 「동경잡신」, 「용동」, 「농촌계발」은 모두 유학생의 입장에서 조선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거나, 혹은 미래의 조선이 지녀야 할 가치를 그려내는 데 집중한 텍스트이다. 이는 조선과의 물리적・심리적 거리 확보가 조선의 현실을 하나의 이미지로 인식하는 것을 용이하게 하였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어디까지나 그가 조선 바깥에 있을 때 가능한 것이었다. 따라서 조선에 일시 귀국하여 남부 지방을 여행하고 쓴 「오도답파여행」이나, 조선의 현실을 구체적인 배경으로 그려내야 했던 『무정』에서는 오히려 그러한 의도를 넘어서는 조선의 복합적인 의미가 나타난다. 가령 『무정』에서는 근대적인 시공간 질서에 편입되지 않은 칠성문 밖의 공간이 제시되거나, 문명을 척도로 하는 직선적 시간축에 배치되기 어려운 황주라는 공간이 제시된다. 한편 「오도답파여행」에서는 경주와 같이 과거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장소들에서 과거를 상상하거나 향토적인 가치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의 조선 체험은 상상의 조선과 실제 조선 사이의 차이를 확인하는 작업이기도 했는데, 이는 조선을 하나의 심상지리로 환원하여 이해하는 방식을 의문시하고 유학생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뇌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3장에서는 상하이 임시정부를 거쳐 조선으로 귀국한 이후까지를 살펴보았다. 「방황」에서 나타나는 조선과 자신의 관계에 대한 고뇌는 귀국 전후까지 계속된다. 특히 귀국 당시 이광수는 변절자로 이해되어 조선에서 자신의 자리를 갖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따라서 민족을 매개로 조선의 민중들과 관계맺는 것이 불가능했다. 이는 그가 조선이라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환대받지 못함으로 인해 자신의 자리를 획득할 수 없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태에서 이광수가 다시 조선에서 문필활동 혹은 사회운동을 펼치기 위해서는 자신의 조선행에 이유를 부여할 필요가 있었다. 자신의 장소/자리를 얻기 위해 귀국의 의도에 무엇이든 기입해야 했던 이러한 상황에서, 이광수는 두 가지의 서로 다른 해결책을 내세운다.
하나는, 기존에 자신이 지니고 있던 조선에 대한 심상지리를 폐기하고 조선의 민중들 속으로 적극 투신하는 것이었다. 「감사와 사죄」와 「어떤 아침」에서 주로 나타나는 이 방식은 민중과 자신을 관계짓기 위한 새로운 논리를 요구했는데, 여기서 금강산이라는 헤테로토피아적 공간의 경험이 하나의 돌파구가 된다(『금강산유기』). 금강산에서 이광수는 개체인 나보다 더 큰 우주의 존재를 경험함으로써 민족이라는 특수가 아니라 인류라는 보편을 매개하여 조선 민중과 관계맺을 수 있게 되고, 이러한 사유는 『재생』의 금곡과 금강산이라는 두 공간으로 형상화된다.
다른 하나는, 자신과 조선 사이에 이미 존재하고 있던 고향이라는 연결관계를 강화하고 그럼으로써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재확인하는 방식이었다. 「가실」과 「허생전」에서 발견되었던 이 방식은, 민족주의자로서의 정체성을 다시금 공고히 해야 했던 1930년대의 상황 속에서 다시 극대화된다. 『흙』에 나타난 조선에 대한 노스탤지어는 이를 잘 보여주는데, 이러한 방식은 주인공인 허숭이 살여울에 정착하게끔 하는 손쉬운 방법이면서도 조선이라는 공간을 고향이라는 하나의 단일한 이미지로 환원해 버릴 여지가 있다. 조선을 과거의 고향이라는 호모토피아적 성격이 강한 공간으로 그려냄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는 방법인 셈이다.
결론적으로, 1920년대 이후 이광수 문학에서 새롭게 발견된 장소들은 그가 조선에서 자신의 장소/자리를 얻기 위한 모색의 결과물이었다. 변화하는 조건 속에서 이광수는 조선이라는 공간의 체험을 통해 자신과 조선 사이의 거리를 조정하거나 자신의 정체성을 바꾸어나갔으며, 반대로 그러한 경험이 텍스트화되면서 조선은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이광수의 문학에서 찾을 수 있는 조선의 다양한 의미는 단순히 조선을 민족 혹은 민족적인 것으로 치환하여 독해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또한 이광수의 귀국을 단순히 안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보여준다. 나아가 이는 한 작가의 문학을 산출하는 기반 혹은 조건으로서 조선이라는 공간이 개개인에게 일정하게 혹은 동일하게 주어지지 않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관점은 식민지기 조선 안팎에서 다양한 공간 경험을 지녔던 문인들에게 있어 조선에서 문학을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규명하는 작업으로 확대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Language
kor
URI
https://hdl.handle.net/10371/178224

https://dcollection.snu.ac.kr/common/orgView/000000167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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