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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관(李在寬)의 《고사인물도(故事人物圖)》와 김운초(金雲楚) : Figures by Yi Jaegwan and Kim Un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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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하성희

Advisor
장진성
Issue Date
2023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이재관(李在寬)고사인물도(故事人物圖)재녀(才女)여협(女俠)협기(俠妓)김운초(金雲楚)
Description
학위논문(석사) -- 서울대학교대학원 : 인문대학 고고미술사학과(미술사학전공), 2023. 2. 장진성.
Abstract
본 논문은 기생인 김운초(金雲楚, 1800년경-1857년 이전)가 이재관(李在寬, 1783-1838년경)이 그린 《고사인물도(故事人物圖)》의 제작에 참여하였을 가능성을 살펴본 글이다. 《고사인물도》는 재녀(才女)와 여협(女俠)이 등장하는 네 폭의 여성 인물화와 은거(隱居)하는 문인(文人)이 그려진 두 폭의 남성 인물화로 이루어져 있다. 이와 같은 남녀 인물들이 한 작품에 표현된 것은 19세기 조선에서 일부 경화세족(京華世族)이 재녀와 여협을 이상적인 동반자로 새롭게 인식한 현상과 관련이 있다. 특히 당대(當代)에 예술가로 인정받은 기생들은 재녀와 여협의 덕목을 모두 갖춘 협기(俠妓)로 자처하였다. 《고사인물도》의 여성들은 이러한 협기들이 공감하며 쉽게 자신들을 투영(投影)할 수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이를 근거로 필자는 평안남도(平安南道) 성천(成川)의 관기(官妓)였던 김운초가 《고사인물도》의 제작에 참여하였을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고사인물도》에는 재녀와 여협을 은거하는 문인의 연인으로 형상화하려는 의도가 드러나 있다. 〈미인사서도(美人寫書圖)〉와 〈미인취생도(美人吹笙圖)〉에서는 재녀 이미지가, 〈여선도(女仙圖)〉와 〈여협도(女俠圖)〉에서는 여협 이미지가 강조되었다. 한편 〈파초하선인도(芭蕉下仙人圖)〉와 〈송하처사도(松下處士圖)〉의 남성들은 은거자로 표현되었다. 그런데 《고사인물도》의 시각적 요소와 제화시(題畫詩)는 남녀의 결연(結緣)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고사인물도》의 여성 인물화에는 전통적인 사녀화(仕女畫)에서 연인을 기다리는 여성의 그리움을 상징했던 도상(圖像)이 차용(借用)되어 있다. 아울러 조희룡(趙熙龍, 1789-1866)과 강진(姜溍, 1807-1858)은 《고사인물도》의 제화시에서 여성의 남성 연인에 대하여 주목하였다.
이 점에서 19세기의 협기들이 《고사인물도》의 감상자층(鑑賞者層) 및 수요층(需要層)에 포함되었을 가능성은 크다. 당시에 재녀와 여협은 청(淸, 1644-1911)의 강남(江南) 문화로부터 영향을 받은 경화세족의 이상적인 동반자로 새롭게 인식되었다. 재녀는 문예적인 소양을 갖추어 경화세족 사이에서 예술적인 동반자가 될 수 있는 여성으로 각광받았다. 아울러 여협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 한 남성에 대한 신의(信義)를 지키는 여성으로 여겨졌다. 이에 문재(文才)가 뛰어났던 기생들은 재녀와 여협이 결합된 협기로 자신을 형상화하여 남성 문인의 이상적인 배우자로 여겨지기를 희망했다. 특히 이들은 배필(配匹)이 아닌 지음(知音)을 구한다고 말함으로써 자신을 사대부 남성과 동등한 동반자가 될 수 있는 존재로 인식시키고자 하였다. 《고사인물도》의 여성들은 이러한 협기들이 공감하거나 본받기에 적합한 방식으로 그려졌다.
특히 19세기에 협기의 면모를 보였던 기생 중에서도 김운초(운초)가 《고사인물도》의 제작에 참여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고사인물도》의 화가인 이재관과 이 작품에 제시(題詩)를 쓴 조희룡 및 강진은 모두 이재관의 화실(畫室)인 흔연관(欣涓館)에 출입하며 교유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이 흔연관 모임에 운초가 포함되어 있었다. 운초는 시인으로 이름나 당시에 한양(漢陽)까지 이름을 알린 기생이었다. 이후에 그는 안동(安東) 김씨(金氏) 집안 출신의 고관(高官)인 김이양(金履陽, 1755-1845)의 첩이 되었다. 기록으로 전하는 운초의 언행과 생애에 비추어 볼 때 《고사인물도》의 여성 인물화는 운초가 자신을 투영하여 감상하기에 적합한 그림이었다고 생각된다. 이 작품에는 19세기 조선의 문예계(文藝界)에서 운초와 동일시되었던 당(唐, 618-907)나라의 기녀 시인인 설도(薛濤, 781년경-832년경)가 등장한다. 아울러 《고사인물도》에는 운초의 시에 자주 등장하였던 모티프(motif)가 그려져 있다. 이와 같은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운초가 흔연관 모임의 일원으로 《고사인물도》 제작에 참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즉 필자는 《고사인물도》를 19세기 조선에서 기생이 회화의 감상자이자 수요자(需要者)로 활동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특별한 사례로 조명하였다.
This study suggests that Kim Uncho (ca. 1800-before 1857), one of the most renowned courtesans (gisaeng) in nineteenth century Joseon Korea, participated in the production of Figures (Gosa inmul do) painted by Yi Jaegwan (1783-ca. 1838). These figure paintings consist of six scrolls. Four of them are imaginary portraits of women in antiquity who were famous as talented women (cainü) or female knight errants (nüxia). The others focused on the ideal life of recluses. The images and the poems written on these pictures show the painters intention to represent the figures as couples. There was a tendency among some nineteenth century Joseon literati to regard talented women and female knight errants as their ideal companion. Responding to this trend, courtesans, especially the ones at the upper level of their profession, positioned themselves as chivalrous courtesans (hyeopgi) who were qualified both as talented women and female knight errants. Their purpose was to be perceived as a perfect match for scholar-gentry men. The women in the paintings were depicted in a way that would have induced empathy from these chivalrous courtesans of the late Joseon period.
Among those chivalrous courtesans, it is highly possible that Kim Uncho played an active role in the creation of Figures. She was a poet with reputation and a concubine of Kim Iyang (1755-1845), a high ranking official from the prestigious Andong Kim family who was 45 years older than her. Jo Huiryong (1789-1866) and Gang Jin (1807-1858) who wrote inscriptions on Figures seem to have frequently gathered at Yi Jaegwans studio named Heunyeongwan. Kim Uncho was also a member of this literati circle. The selection of figures and the way in which the original texts were twisted in Figures are highly suggestive of the presence of Kim Uncho behind the making of Figures. In this study, Figures is recognized as an important piece of evidence highlighting that courtesans were active as appreciators and consumers of paintings in nineteenth century Korea.
Language
kor
URI
https://hdl.handle.net/10371/194232

https://dcollection.snu.ac.kr/common/orgView/000000176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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