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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대둔사(大芚寺) 〈삼세불탱(三世佛幀)〉(1901) 연구 : Painting of the Buddhas of the Three Ages (1901) at Daedunsa, Haenam: Collaboration Work of Monk Painters from the Capital Area
수도권 화승의 원행(遠行)과 협업(協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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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서정인

Advisor
이주형
Issue Date
2023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대둔사(大芚寺) 〈삼세불탱(三世佛幀)〉순비 엄씨(淳妃嚴氏)원행(遠行)협업(協業)경선 응석(慶船應釋)석옹 철유(石翁喆侑)예운 상규(禮芸尙奎)
Description
학위논문(석사) -- 서울대학교대학원 : 인문대학 고고미술사학과(미술사학전공), 2023. 2. 이주형.
Abstract
This thesis examines the art historical background to the creation of the Buddhas of the Three Ages (1901) at Daedunsa, Haenam. The Daedunsa Buddhas of the Three Ages which includes Amitābha, Śākyamuni, and Bhaiṣajyaguru was a collaborative work by three groups of monk painters from the capital area, led by Gyeongseon Eungseok, Seogong Cheoryu, and Yeun Sanggyu.
The Daedunsa Buddhas of the Three Ages was painted in the one-panel style famous in the late nineteenth century in the capital area. Due to the walls narrowness, the Daedunsa Buddhas of the Three Ages was created as three discrete panels. It was arranged so that Buddhist paintings of Eungseok and Sanggyu, who have similar styles, are on either side with that of Cheoryu in the middle.
The Daedunsa Buddhas of the Three Ages was painted due to the commissioned by Lady Eom who wished to be elevated to Empress. Historically, Daedunsa was associated with the Joseon royal family and was located near land of Lady Eom, therefore, it could be sponsored. Lady Eom who had no experience with local artists dispatched monk painters from the capital area to Haenam. Thus, Lady Eoms dedication enabled the creation of the Daedunsa Buddhas of the Three Ages.
본 논문은 해남 대둔사(大芚寺) 〈삼세불탱(三世佛幀)〉(1901)이 발원자인 순비 엄씨(淳妃嚴氏, 1854-1911)로 인해 원행(遠行)하게 된 수도권 화승들의 협업(協業) 작품임을 규명한 글이다. 세 폭으로 구성된 대둔사 〈삼세불탱〉은 수도권 화승인 경선 응석(慶船應釋, 19세기 중반-20세기 초반에 활동), 석옹 철유(石翁喆侑, 1851-1917), 예운 상규(禮芸尙奎, 19세기 후반-20세기에 활동)가 각각 이끌던 화승 집단에 의해 그려졌다. 화면 측면에 여래가 그려진 〈아미타불탱(阿彌陀佛幀)〉과 〈약사불탱(藥師佛幀)〉은 〈석가불탱(釋迦佛幀)〉과 함께 봉안되어 한 폭을 연상시키는 특이한 화면 구도를 형성한다. 아울러 이 불화는 교유 관계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화승들이 함께 제작하였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세 폭 삼불회도(三佛會圖)와 다르다. 특히 〈삼세불탱〉의 중앙 폭을 대둔사 불화 불사의 대표 화승인 응석이 맡지 않은 점 역시 보편적인 사례가 아니다.
해남으로 원행한 화승들은 19세기 후반 수도권에서 유행하던 한 폭 삼세불도 형식으로 대둔사 〈삼세불탱〉을 그리고자 했다. 그러나 대둔사 대웅보전(大雄寶殿)의 후불벽(後佛壁)이 너무 넓었기 때문에 〈삼세불탱〉은 한 폭으로 조성되기 어려웠다. 이로 인하여 한 폭 삼세불도 형식의 〈삼세불탱〉은 세 폭의 모습으로 제작되었다.
대둔사 〈삼세불탱〉은 화승 간 도상 및 구도의 공유가 드러나는 적극적인 협업의 결과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화승 간 협업은 한 폭 삼세불도 형식을 대둔사 〈삼세불탱〉에 구현하고자 한 응석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응석과 함께 진불암(眞佛庵)에 머문 상규는 〈약사불탱 초본(草本)〉을 능동적으로 변용하여 〈아미타불탱〉을 제작하였다. 철유는 응석과의 교유를 통해 이전까지 그린 적 없던 키형[簸箕形] 광배를 〈석가불탱〉에 그렸다.
협업은 화승 집단이 전체 화면을 구성하는 데도 영향을 끼쳤다. 세 폭의 조화를 위해서는 양식이 비슷한 응석과 상규의 불화가 양쪽에 걸려야 했다. 두 화승과 다른 양식으로 불화를 그린 철유는 화면 중앙에 여래를 그리는 구도를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중앙 폭을 맡게 되었다. 철유는 응석보다 중요한 화승이 아니었으나 당시 위상이 높았기 때문에 중앙 폭을 그릴 자격이 되었다.
화승들이 대둔사 〈삼세불탱〉을 제작한 배경에는 대둔사 불화 불사의 발원자인 엄씨가 있었다. 〈삼세불탱〉의 화기에는 시주질(施主秩)이 쓰여 있지 않다. 그러나 엄씨 축원문(祝願文)의 존재, 대둔사 〈감로탱(甘露幀)〉에 그려진 순비전(淳妃殿) 전패(殿牌), 윤상궁(尹尙宮, 1836-?)의 대둔사 방문, 축원문 중 황제 다음으로 등장하는 황비(皇妃)라는 명칭을 통해 엄씨가 〈삼세불탱〉의 발원자임을 알 수 있다.
영친왕(英親王, 1897-1970)의 안녕을 축원하기 위한 엄씨의 대둔사 불사 후원의 이면에는 본인의 지위 상승 의지가 투영되어 있었다. 영친왕의 황위 계승은 엄씨의 지위 상승과 불가분의 관계였기 때문이다. 엄씨는 본인의 순비 책봉을 기념하고 더 높은 자리에 오르고자 하는 마음을 대둔사의 불화에 투영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엄씨의 궁방전(宮房田)이 분포되어 있던 해남 지역의 대둔사는 왕실과의 교류가 있던 사찰이었기 때문에 후원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엄씨는 수도권 외의 지역에서 불화를 발원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서울·경기에서 활동한 화승들을 해남으로 내려보냈다. 엄씨가 발원한 불화를 그린 경험이 있는 응석은 화연(畵緣)을 맺었던 상규 등과 해남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철유는 엄씨의 최측근이던 윤용선(尹容善, 1829-1904)과의 인연으로 인해 원행하게 되었다. 이처럼 한 폭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화면 구도를 가진 대둔사 〈삼세불탱〉은 엄씨로 인해 해남으로 내려간 수도권 화승들의 협업 결과였다.
Language
kor
URI
https://hdl.handle.net/10371/194233

https://dcollection.snu.ac.kr/common/orgView/000000175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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