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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태풍 사라(Sarah)와 전후(戰後) 한국의 재난 대응 : Typhoon Sarah in 1959 and the Disaster Response of Post-war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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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이동원

Issue Date
2022
Publisher
한국근현대사학회
Citation
한국근현대사연구 No.103, pp.263-291
Abstract
태풍 사라는 한국전쟁의 전후 복구를 거쳐 정부수립 후 최초의 정부 재정흑자를 보았던 1959년, 한국 사회를 강타한 자연재해였다. 그러나 태풍 사라는태풍 예측, 수해 대책, 복구 능력이라는 측면에서 모두 취약성을 갖고 있던 이승만 정부와 한국 사회에 사회적 재난으로서 더 큰 피해를 초래했다. 한국 정부는태풍 대응 과정에서 미 원조 당국에 긴급 구호를 위한 특별원조를 요구하면서도 환율 현실화와 연동된 도매물가지수를 25% 이하로 유지하는 데 치중하는모순적 태도를 보였다. 이러한 두 마리 토끼 쫓기는 미 원조사절단(USOM )과한국 정부 모두 자금 조달에서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적극적인 태풍피해 재건과 구호의 발목을 잡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럼에도 결국 물가 상승을 제어하지 못하면서 이승만 정부의 환율 방어는 실패하고 말았다. 한미합동경제위원회 차원의 태풍 사라 대응은 1959년 7월 1일자로 경제조정관실(O EC)을 대신 해 한국의 원조 집행기구로 등장한 미 원조사절단(USOM )의 위기대응 능력에대한 시험 기회이기도 했다. USOM 은 태풍 구호 및 재건과 관련하여 기술협조와 지역사회개발사업 차원의 자조(self-help)를 강조했으며, 태풍피해 재발 방지를 위한 장기적 전망을 구상했다. 그러나 1960년으로 해가 바뀐 이후에도태풍피해 복구는 지지부진했고, 환율 인상과 물가 인상, 태풍피해 복구의 지연과 부정선거라는 악순환 속에서 한국 정치와 사회는 4월 혁명의 소용돌이에휩쓸려 들어갔다.
ISSN
1227-8203
URI
https://hdl.handle.net/10371/195871
DOI
https://doi.org/10.29004/jkmch.2022.12.103.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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