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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羲天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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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contributor.author鄭吉秀-
dc.date.accessioned2010-05-06T01:49:22Z-
dc.date.available2010-05-06T01:49:22Z-
dc.date.issued2004-12-
dc.identifier.citation奎章閣, Vol.27, pp. 95-116-
dc.identifier.issn1975-6283-
dc.identifier.urihttps://hdl.handle.net/10371/64100-
dc.description.abstract李議天(1738~1771)은 老論 명문가의 사대부로서, 『明紀轉略』이라는 禁書를 소장하였

다는 죄목으로 불과 34세의 젊은 나이에 처형당하고만 비운의 인물이다. 李義天의 字는 士

春, 號는 萬石子• 石樓이며 本貫은 韓山으로,丹陵 李胤永(1714~1759)의 장남이다. 부친

李胤永이 과거에 응하지 않고 李離祥• 吳瓚을 비롯한 당대의

名家들과 文會를 만들어 교유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이희천 역시 布衣로서 燕巖 朴趾源(1737 ~ 1805)을 비롯한 소수의

벗들과 교유하며 학문을 쌓고 詩文을 지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이희천은 젊은 시절의 연암

과 대등한 입장에서 교유했던 것으로 여겨지지만,그동안 그에 값할 만한 주목은 받지 못해

왔다.1) 다행히 서울대학교 奎章閣에 이희천의 문집인 『石樓遺橋』 2권 2 책이 남아 있어 이

희천의 대체적인 생애와 문학 활동을 파악할 수 있다.

현전 유일본이 아닌가 생각되는 『石樓遺橋』에는 아쉽게도 子跋이 나 刊記가 남아 있지 않

아 문집의 간행자와 간행연대를 전혀 알 수 없고,이희천의 行狀도 달리 전하는 것이 없어

그 생애의 전모를 밝히기 곤란한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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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language.isoko-
dc.publisher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dc.title李羲天論-
dc.typeSNU Journal-
dc.citation.journaltitle奎章閣-
dc.citation.endpage116-
dc.citation.pages95-116-
dc.citation.startpage95-
dc.citation.volume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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