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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陵參奉 金斗璧의 관직생활과 王陵守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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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김경숙
Issue Date
2005-12
Publisher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Citation
奎章閣, Vol.28, pp. 109-135
Abstract
조선시대 관직 체계에서 가장 하급 관료에 해당하는 것이 종9품직인 參奉이다. 그 중에

서도 능참봉은 왕릉을 수호하는 상징성으로 인하여 낮은 지위에도 불구하고 관료 후보들에

게 선망의 대상이 되는 자리였다. 그 상징성 때문에 국가에서도 자격을 엄격하게 적용하여

‘年少하지 않고 지식있는 사람’으로 선발하였다.

조선후기 능참봉은 이러한 상징적 성격 외에도 관직에서 발생하는 실제적인 권한과 이점

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일반 사족들도 품계만 있으면 三望을 통하여 능참봉에 임명될 수

있었기 때문에, 과거시험을 거치지 못한 사족들이 관직으로 진출하기 위한 출발점이 되었

다. 나아가 이를 발판으로 근무일수를 채워서 다른 관직으로 진출하였고, 승진을 거듭하면

지방관의 기회까지 얻을 수 있었다. 때문에 능참봉은 과거시험을 거치지 못한 일반 사족들

이 관료로 진출할 수 있는 중요한 발판으로서 역할을 하였으며, 初入仕의 淸職

으로 인식되

고 있었다.

또한 능참봉은 왕릉을 중심으로 일정 구역 내의 산림을 수호하면서 일반인들의 犯境, 耕作, 偸葬, 偸?? 등을 방지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다른 측면에서 볼 때 이러한 임무는 산림에서 생산되는 땔나무, 숯, 馬草, 횃불 등의 산림 생산물을 사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권

한이 내포되어 있었다. 특히 조선후기 온돌의 보급에 따른 땔나무의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

에서 산림 생산물의 중요성 및 효용성이 증대하고 있었는데, 능참봉에게는 이를 자율적으

로 관리하고 처분할 수 있는 권한이 관례적으로 어느 정도 허용되고 있었다. 때문에 능참봉

이 주위의 친지들에게 미치는 영향력과 혜택은 적지 않았을 것이다.

능참봉은 이처럼 상징적 의미뿐만 아니라 현실적 권한과 이점도 누릴 수 있는 요직이었

는데, 이에 대한 연구는 제도사적인 측면에서 부분적으로 언급되었을 뿐2) 그 실체를 파악

하는데 많은 한계가 있었다. 이는 관련자료의 부족으로 말미암은 측면이 큰데, 최근 일기류

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황윤석의『이재난고』를 분석하고 이를 제도적인 측면과 비교한

연구 성과가 나오게 되어 능참봉의 운영 실태에 대한 기본적인 측면들이 밝혀지게 되었

다.

본고에서는 기존의 연구를 토대로 18세기 초반 靖陵

∙英陵

참봉을 지낸 金斗璧

의『咫聞日記』의 사례를 통하여 과거를 거치지 않고 품계만으로 관직에 진출하는 과정과 능참

봉으로서의 관직 생활, 왕릉 수호 임무와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실질적인 권한과 이권, 그

리고 이를 발판으로 다른 관직으로 진출하는 모습 등을 검토하고자 한다. 이를 통하여 조선

후기 능참봉의 실체에 좀 더 근접할 수 있을 것이며, 나아가 일반사족이 과거를 거치지 않

고 관료로 진출하여 성장해가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ISSN
1975-6283
Language
Korean
URI
http://hdl.handle.net/10371/64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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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Kyujanggak Institute for Korean Studies (규장각한국학연구원)규장각규장각 (奎章閣) vol.28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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