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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7세기 族譜의 編制 방식과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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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권기석
Issue Date
2007-06
Publisher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Citation
奎章閣, Vol.30, pp. 53-93
Keywords
족보서발문내외보동성보
Abstract
한 성씨 전체 또는 한 계파의 혈연관계를 기록한 가계기록인 족보는 양반 사족층의 유교적 도덕과 의례를 遵行하고자 하는 노력의 산물로서, 조선시대 유교적 교화의 사회적 확산이라는 역사적 변화를 보여준다. 필자는 한국사에서 족보라는 가계기록이 본격적으로 출현하여 지배계층을 중심으로 급속히 화산되어간 시기인 15-17세기의 족보의 序文과 跋文을 조사하고 분석하여 족보의 간행 추이와 성격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족보의 서문에 나타난 족보의 편집방식과 제작과정의 분석을 통해, 제작자들의 계보관념과 혈연의식을 재구성하고, 조선시대 사족층의 인간관계망의 변화양상을 해명하고자 한다.

조선전기의 족보 편찬자들은 중국의 譜牒文化를 이미 접하고 있었고, 중국의 유명한 족보를 모범으로 삼고 있었다. 그러나 수록 범위는 高祖의 父系 후손만을 수록대상으로 삼는 ‘小宗法’을 채택한 중국의 족보와 달리, 남녀의 계보를 구분하지 않고 추적 가능한 범위까지 무제한 수록하는 방식이 흔히 채택되었다. 이러한 방식은 內外孫을 구분하지 않는 당시의 일상적인 친족관념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17세기 이후 종법 실천의 의무감이 강화되고 同姓이 곧 同族이라는 관념이 확대되면서 족보에서 二姓親

이 배제되기 시작하였다. 이와 짝하여 동성친의 수록범위는 지역적으로나 신분적으로나 널리 확대되었고, 이전까지 동족으로 여기지 않았던, 계보 연결이 확인되지 않거나 본관이 다른 동성까지도 ‘別譜’등의 형식으로 하나의 족보로 포괄하고자 노력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이와같은 족보의 편찬 방식을 통해 사족사회의 인간관계망의 구조가 단순한 中央官人들의 ‘同類意識’수준을 넘어 ‘同姓’을 매개로 하여 지역적인 유대가 확대되고 신분적으로도 다양한 층위를 넘나드는 방향으로 변화하게 되었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ISSN
1975-6283
Language
Korean
URI
http://hdl.handle.net/10371/64296
Files in This Item:
Appears in Collections:
Kyujanggak Institute for Korean Studies (규장각한국학연구원)규장각규장각 (奎章閣) vol.30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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