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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의 개항이후에 있어서의 행정근대화과정에 관한 연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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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김운태

Issue Date
1969
Publisher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Citation
행정논총, Vol.7 No.2, pp. 128-223
Abstract
조선왕조에 있어 근대화운동 환언하여 개화운동이 구체적 실천운동으로서 나타난 것은 19세기 후반의 개항과 당시의 사회문화적 배경등 내외의 압력을 계기로 하여 상층계급의 일부 개혁파인사에 의하여 획책되었던 것이며 다만 이들 개혁파가 일본의 침략노력에 의존하여 개혁을 단행한 관계로 일방에 있어 개혁파의 주체적 약체성과 타방에 있어 민중의 개혁에너지에 배리되어 그들 대중의 자각적 지대를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성숙되지 못하고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그러나 이 근대화운동의 문화적 기반으로서의 근대의식은 조선봉건사회가 거듭되는 외적의 침략과 오랫동안 서학의 영향을 받으면서 붕괴하는 과정에서 자각적으로 성장한 것이다. 여기서 개항에 이르기까지의 근대의식의 성장과정에 관하여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겠다. 우선 근대의식의 핵심을 이루는 민족의식의 자각에 관하여 살펴 보기로 하자. 무릇 한민족사에서 신라의 통일(A.D 668, 문무왕 8년)에 의하여 민족형성의 바탕을 마련한 이래 수천년에 걸쳐 민족형성 과정이 진행된 것이며 마침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양대외적의 침략을 계기로 하여 근대적 민족의식의 완전한 자각은 아니라도 민족의식의 큰 성장을 보게 된 것이다. 즉 왜호양난, 특히 임진왜란에 직면하자 전국민의 모든 계급이 한 마음으로 외적에 항거하는 민족의식에 불탔던 것은 특기할 만한 몇가지 사화나 일화만으로도 실증이 되며 또 양난이 남긴 폐해가 극심히 가혹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아 일반민중들 까지도 민족개념을 의식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이리하여 이 왜·호양난은 타민족에 대한 자민족의 역사와 운명에 관한 공동의식의 자각을 촉구했고 그것은 민족의식뿐 아니라 피지배계급의 일반 민중의식의 자각을 동시에 자극하였다고 본다.
ISSN
1229-6694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72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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