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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문종 21년 남경 설치에 대한 재검토 -공양왕 2년 한양 천도의 합리화-
Review of the Namgyeong(남경)'s establishment in the 21st year of Go'ryeo dynasty's King Munjong's reign -The people's justification of the Capital transfer to Hanyang(한양) in the 2nd year of King Gongyang's re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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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윤경진
Issue Date
2010
Publisher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Citation
한국문화, Vol.49, pp. 125-149
Keywords
Namgyeong (남경)Gwajeonbeob (과전법)King Munjong's old and sound governance (문종구제)Jwaso Namgyeong (좌소남경)Samgyeong Circulation of the king (삼경순어)
Abstract
고려시대 남경은 현재의 서울 지역에 설치되어 서경, 동경과 함께 계수관의 하나인 삼경을 구성하였다. 고려 중기에 도참설을 배경으로 설치된 후 고려 말에도 여러 차례 순어와 천도론의 대상이 되었고, 종국에는 조선 왕조의 도읍이 되었다. 이런 연혁으로 인해 초기 연구에서는 주로 도참과 천도론의 관점에서 남경에 대해 언급하였다.

근래에는 제도사, 정치사, 경제사 등 다양한 관점에서 남경 문제에 접근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지방제도의 일환으로서 남경의 설치 과정이나 관원 임용 등에 대해 정리하거나 숙종대 정치사와 관련하여 새로운 정치세력의 육성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하기도 하였다. 또한 고려초기 이래 양주 지역의 지속적인 개발이 남경 설치의 바탕이 되었다는 해석도 있었다. 그리고 남경의 설치와 운영, 천도론 등을 종합한 연구서도 출간된 바 있고, 고려말 한양천도론을 중점적으로 다룬 연구들도 있다. 나아가 이러한 연구성과들을 종합 정리하고 과제와 전망을 제시한 논고도 있다.

이러한 다양한 연구를 통해 남경의 역사성이 부각되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하겠으나 연구 방법과 내용에서 중요한 문제점이 발견된다. 무엇보다 남경 연혁을 전하는 지리지 자료에 대한 세밀한 분석과 이해가 수반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곧 현재의 남경 연구는 기본 자료에 대한 해석부터 허점이 보인다는 것이다.



In 『Go"ryeo-sa』"s Geography section, there is a record of the Namgyeong capital"s being established in the 21st year of King Munjong"s reign, yet such record is nowhere to be found in the 『Annals of King Sejong"s reign』"s own Geography section, or anywhere else for that matter. So it seems that Namgyeong was really constructed during King Sukjong"s reign, and the record of Namgyeong of the Munjong"s reign seems to have been actually referring to the Namgyeong establishment which really happened in the 21st year of King Gojong"s reign. And it seems such fabrication of records was to justify the capital transfer to the Hanyang city, which took place in the 2nd year of King Gongyang"s reign.

This capital transfer during King Gongyang"s reign was led by the party of reformists who were also responsible for the reforms of the Gwajeonbeob(科田法) land system. And it was a revival of the capital transfer attempt made during King Wu(禑王)"s reign. Yet those reformists had already defined King Wu"s reign as a dismal failure and an example of misgovernance, so they argued that the transfer of King Gongyang was entirely different from such earlier attempt.
ISSN
1226-8356
Language
Korean
URI
http://hdl.handle.net/10371/73080
Files in This Item:
Appears in Collections:
Kyujanggak Institute for Korean Studies (규장각한국학연구원)Korean Culture (한국문화) Korean Culture (한국문화) vol.49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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