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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진전 개간과 토지소유권
Wildland cultivation and land-ownership in Cho-sun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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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이세영
Issue Date
2010
Publisher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Citation
한국문화, Vol.52, pp. 189-217
Keywords
Ip-AnWildland Ip-AnNon-Proprietor WildlandCultivatorCultivation-RightLand-Ownership
Abstract
조선시대에 전국의 모든 토지는 원전, 진전, 시기전, 재전, 실전 등으로 나뉘어 파악되고 있었다. 현재 경작지인지의 여부를 기준으로 진전과 시기전으로 구분되었다. 진전은 현재 경작지는 아니지만 간척하거나 개간하면 곧 경작지가 될 수 있는 곳으로서 산림(시장·초장), 천택(어장·어전), 진황처(진황지·한광지·공한지·저습지) 등을 포괄하고 있었지만 주로는 진황처를 일컬었다. 그리고 진황처는 원소 유주의 유무를 기준으로 무주진황처와 유주진황처로 구분되었다. 봉건정부의 토지 개발 정책은 개간한 당사자에게 그 토지의 소유권을 주거나 면세의 혜택을 주어 이들 진전을 간척하거나 개간하게 함으로써 시기전을 최대한으로 늘리는 것이었다.

시기전 혹은 기경전은 현재의 경작지로서 원전에서 진전을 제한 것이었다. 시기전은 지세 수입원의 원천이었기 때문에 양전의 주목표가 되고 있었다. 양전은 면 단위로 토지 자체(지번 범향 등제 형상 지목 면적 결부수 등)와 필지마다의 진기 여부 및 소유자와 경작자를 파악하고 양안을 작성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시기전에서 흉작이 든 재전을 제한 실전을 대상으로 필지별로 깃기를 발부하고 수세하였다. 정부는 법의 규정에 따라 20년마다 한 번씩 양전을 실시하여 최대한의 시기전 결수를 확보하고자 했다. 그러나 지주제가 발달할수록 지주들의 저항과 방해로 ‘도별양전’은커녕 ‘읍별양전’도 정기적으로 실시되지 못하였다. 조선후기의 전정문란은 일차적으로는 이처럼 양전이 제대로 실시되지 못한 데서 비롯되고 있었다. 아무튼 일단 작성된 양안에는 진전과 시기전, 시주·전주와 작인이 조사되어 기재되었다.

In Cho-sun Period the government would like to issue a document(Ip-An) to the farmers who wanted to cultivate the wildland, but only to find that most of them did without getting the document. Both the royal family and the nobilities, however, did not cultivate the wildland by themselves even with the document. Furthermore, they took the cultivating lands from the small farmers under the pretext of the latter"s not having the document, and even collected rents regarding themselves the justified owner of the lands. For this reason, the unending disputes about the ownership of the cultivating lands ensued.

Therefore in 1634 the government issued the 「land surveying regulation」(「量田事目」) which stipulated that the cultivator owns the non-proprietor wildland. However, this could not have a legal force, since it rather was a provision not a rule concerning the application of the law. Thus, the unlawful seizure of the lands and collecting rents on the part of the royal family and the nobilities continued. A drastic countermeasure against it was only to legislate the provision. 『The Supplement to the Manual for Legal Suit』(『決訟類聚補』) issued in 1709 made it clear that the cultivator owns the lands both being discarded for a long time and not being cultivated with the document issued. This, modified many times through the royal instructions, had a final form in "the ownership of all the idling and wild lands belongs to the cultivator" in the 『Supplement to the Great Canon』(『續大典』) issued in 1746.
ISSN
1226-8356
Language
Korean
URI
http://hdl.handle.net/10371/73143
Files in This Item:
Appears in Collections:
Kyujanggak Institute for Korean Studies (규장각한국학연구원)Korean Culture (한국문화) Korean Culture (한국문화) vol.52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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