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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가려 ‘이름’ 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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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안수길
Issue Date
2011
Publisher
서울대학교 명예교수협의회(Association of Emeritus Professors)
Citation
서울대학교 명예교수회보, Vol.7, pp. 46-61
Abstract
유-럽의 왕권들은 백성들에게 명령을 하달할 때 포고관(布告官)을 썼다. 그 무렵 왕(王)의 포고관(Herald)은 나팔을 불어 마을 사람들을 모이게 한 다음, 왕의 뜻과 명령을 소리 높이 낭독하곤 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 시간, 그 자리에 없었던 사람들은 이웃에게 ‘포고된 왕명 내용’을 전해 듣는 수 밖에 없었다. 말하자면 왕명의 전달방법 자체가 시간적으로 극히 한정되어 우리의 ‘방(榜)’과 같이 일정 장소에 붙여 혹시 세목을 잊어버리면 다시 그 곳에 가서 방을 보면 되는 그러한 문명된 것은 아니었다. 일찍이 농사가 발달한 아시아권은 (안개 가득하고 어두운) 서구와는 달리 일광(日光)이 풍부한 땅이어서, 농작물 빌려준 세부 사황 등을 점토판(粘土板)에 楔形文字(설형문자)로 꾹꾹 찍어 햇빛에 말려 그 기록을 남겼다. 농사가 발달했기 때문에 모헨조다로와 슈메-ㄹ에 남아 있는, 무척 많은 양의 점토판 문서들 대부분은 그러한 토지, 곡식, 그리고 부채(負債)에 관한 제반 기록이었다.
ISSN
2005-0526
Language
Korean
URI
http://hdl.handle.net/10371/80081
Files in This Item:
Appears in Collections:
Seoul National University(서울대학교)서울대학교 명예교수협의회서울대학교 명예교수회보(Annual report of professors emeriti Seoul National University)서울대 명예교수회보(Annual report of professors emeriti Seoul National University) Vol. 07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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