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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탈정치화, 다니엘 바렌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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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신예슬
Issue Date
2013-06
Publisher
서울대학교 라틴아메리카연구소(SNUILAS)
Citation
Translatin, Vol.24, pp. 96-103
Abstract
음악과 정치, 이 둘은 다소 무관한 것처럼 보인다. 음악은 ‘유희성’만 보장된다면 음악가가 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 없어도 사랑받는다. 19세기 말, 오스트리아의 마지막 황제였던 프란츠 요제프 황제는 “음악이 그토록 진지한 문제인가? 난 항상 음악은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들어주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라고 말하기도 했다. 음악의 추상성은 음악을 듣고 사고하게 만들기보다는 특정한 감정에 빠지게 한다. 일반적으로 음악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거나 좋은 감정을 이끌어 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다. 생각하게 만드는 음악보다는 듣기 좋은 음악을 선호하는 경우에는 음악과 정치를 연결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의 방향을 바꾸면, 음악만큼 정치적인 것도 없다.1) 음악 작품은 실체도 없고, 증거도 없다(악보는 증거가 되지 못한다). 심지어 작품이 연주되는 순간은 귀를 막지 않는 이상 꼼짝없이 들어야 하기에, 시간마저도 작품에게 지배당한다. 그런데 실체도 없고, 말로 완벽히 형용할 수도 없는 음악을 갖가지 이유에서 말로 설명한다. 이런 설명은 도움이 되는 것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많다. 잘못된 꼬리표는 음악을 오해하게 만든다. 이 글에서는 음악을 둘러싼 오해와 편견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에 대해서 얘기하고자한다.
ISSN
2093-1077
Language
Korean
URI
http://hdl.handle.net/10371/83950
Files in This Item:
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Institute of Latin American Studies (라틴아메리카연구소)Webzine TransLatin (웹진 트랜스라틴)Webzine TransLatin (웹진 트랜스라틴) No.24 (20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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