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雍正年間 四川의 土地丈量과 그 意義
雍正年間 四川的土地丈量及其意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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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李俊甲
Issue Date
1998
Publisher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동아문화연구소
Citation
동아문화, Vol.36, pp. 19-56
Abstract
丈量은 토지의 면적과 형태는 물론 소유관계, 비옥도 등을 정확하게 파악하는데 필요한 작업이다. 청조는 입관 이후. 順治-康熙초에 걸쳐 전국적인 규모의 丈量을 단행하려 하였지만, 그 의도는 신사와 지주층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무산 되었다. 번번이 좌절당하면서도 청조가 세번이나 전국적인 규모로 丈量하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은, 역설적으로 丈童이 국가운영에 얼마나 중요한 기초작업인가를 잘 보여준다. 丈量에 대한 기존연구는 丈量의 목적을 국가재정을 확보하기 위한 작업으로 파악하고 있다. 기왕의 연구성과에서 대상으로 삼고 있는 장량들은 국가재정에 심각한 위기가 발생하였을 때 시도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명대 만력장량은 가정연간 이래의 재정파탄 위기하에서, 또 청대 순치-강희 초의 장량은 입관이후 계속된 정복전쟁에서 비롯된 재정궁핍으로 시도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들 장량은 재정위기를 타개하려고 시도된만큼 재정 확보책으로서의 성격이 두드러질 수밖에 없었다.



本稿通過分析雍正年間四川實行土地丈量的背景、經過及其意義, 闡明當時清朝政府控制地方社會的政勸結構情況. 隨着明末清初動亂的平息, 四川原住民大量返回四川, 來自全國各地的客民也大學流入, 清朝在招撫流民的同時允許無主荒田的所有權歸最先開墾的人昕有. 隨着開墾的進行, 隱田大量增加. 爲了掌握土地所有權的紛爭也日趨激化. 一些表面上沒有主人的荒田, 一旦有原住人出示士地所有權的憑據就要歸還其士地. 另外, 豪强們也趁機挑起事端, 憑借實力强占土地 雖然有紛爭發生時都由地方官進行判決, 但由于豪强的干涉, 使得地方官不斷反復對田土紛爭的判決, 以致于這種情況司空見慣, 屢見不鮮, 地方官已無信賴可言, 受到紛紛的指責.
ISSN
1598-0200
Language
Korean
URI
http://hdl.handle.net/10371/87727
Files in This Item:
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Center for East Asian Studies (동아문화연구소)Journal of S.N.U. Institute for Asian Studies (동아문화)동아문화 Volume 36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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