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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notion de « barbare » au Siècle des Lumières
계몽주의 시대의 《 야만 》 의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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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LEE Young-Mock
Issue Date
2001
Publisher
서울대학교 불어문화권연구소
Citation
불어문화권연구, Vol.11, pp. 76-89
Abstract
계몽주의 시대에 관해 다루면서 “야만”의 개념을 논한다는 것은 역설적인 일로 보일 수도 있다. "계몽주의”란 명칭 자체가 이미 “야만”에 대한 “문명”과 “문화”의 승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개념은 18세기 프랑스의 주요 작가 및 사상들에게서 매우 “긍정적인” 의미들을 부여받는다. 이 글에서 우리가 다루려는 것은 바로 긍정적인 의미들이다. “여기서는 내가 야만인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루소가 사상가로서 첫 저작인 [학문과 예술론]의 모두(冒頭)로 내세운 오비디우스의 한 구절이다. “제네바 시민”이라고 이 논문에 서명한, 문화인이자 문필가인 루소가 스스로 “야만인”을 자처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우선 단어의 어원적 의미를 비롯한 여러 사전적 어의들을 살펴 보았다. “야만인”이란 고대 그리스인들이 보기에 제대로 말을 할 줄 모르고 단지 “어버버버” 소리 밖에 내지 못하는 이방인들을 가리킨다. 이 “야만인”이란 단어는 따라서 문화적 관점에서 핵심적인 질문들을 제기한다. 왜냐하면,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문명이라는 것의 범주를 구성하는 일련의 기준들과 다른 문명에 대한 진정으로 문화적인 태도를 규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어서 우리는 “야만인”의 가장 뛰어난 문학적 형상화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스위프트의 걸리버를 비롯하여, 몽테스키외, 디드로, 볼테르 등 프랑스 계몽주의 작가들의 작품 속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야만인”의 이미지들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검토를 통하여 우리는 “야만인”이라는 테마는 독자에게 자신의 문화에 대한 비판적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기능을 가지며, 그 비판적 성찰은 타문화의 상상적 체험에서 생겨나는 자기문화와의 거리두기에서 가능해짐을 알았다. 끝으로 우리는 “야만” 개념의 정치적 의미를 검토했다. 디드로의 몇몇 생각들을 추적함으로써, 우리는 원래 문화적 개념인 이 개념이 계몽주의 시대에 어떻게 정치적 개념으로 변화하며 또한 어떻게 실제 정치의 흐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는지 알아보았다. 결론적으로,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기존의 “야만” 개념의 주위에 새로 축조한 “긍정적” 의미들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첫째로, 스스로가 “야만인”일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은 문화 - 타인의 문화, 자신의 문화, 그리고 문화와 문명 그 자체를 -를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첫걸음이다. 둘째로 “야만” 개념은 사회의 혁신에 원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는데, 이는 타락하고 노예화된 정신의 기만적 외양으로 전락한 고정된 지배적 문화의 틀을 깸으로서 가능하리라는 것이다.
ISSN
1975-3284
Language
French
URI
http://hdl.handle.net/10371/88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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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Centre de recherches sur la francophonie (불어문화권연구소)불어문화권연구 (Revue d`Etudes Francophones)불어문화권연구 (Revue d`Etudes Francophones) Volume 11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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