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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만들기와 다듬기: 19세기 페루의 잉카관(觀)의 형성과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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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정한솔
Issue Date
2015-10
Publisher
서울대학교 라틴아메리카연구소(SNUILAS)
Citation
Translatin, Vol.32, pp. 64-76
Abstract
완전히 중립적이고 공평무사한 역사서술은 드물다. 당대의 사회상황에 따라 역사서술은 쉽사리 바뀔 수 있기에, 이제는 진부한 인용구가 되어버렸지만 에드워드 카는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역설했다. 지나간 사실은 과거에 지나지 않지만 현재가 그것을 (헤이든 화이트에 따르면 일정수준의 문학성과 함께) 엮어내면 역사로서 기능한다. 그렇기에 역사서술학(historiography)이라는 분야가 하나의 학문으로서 존립할 수 있다. 본고에서 다룰 페루 역시 지난 5백여 년 간 격변의 역사를 겪어왔고, 그 사회 구조의 변화에 따라 역사서술의 조류 역시 크게 바뀌었다. 우선 1536년의 잉카 정복이 가장 먼저 그 전기를 마련했다. 와만 포마데 아얄라에 따르면 세상이 거구로 뒤집히는(mundo al reves) 사건이었던 잉카의 멸망은 페루 역사의 돌아올 수 없는 강이었다. 잉카는 키푸(quipu)라는 결승문자를 제외하고는 역사를 서술할 수 있는 방법을 지니지 못했기에 식민시대 역사가들은 그나마 남아있는 옛 잉카의 흔적을 상당한 수준의 상상력과 함게 써내려갈 수 있었다. 그들은 페루 역사의 백지를 처음으로 채워나갔다. 본고에서는 이후 두 번째 전회가 일어난 시대, 즉 페루의 독립을 전후하여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후반까지의 시기를 중점적으로 다룰 것이다. 이미 베네딕트 앤더슨이나 데이비드 브래이딩을 비롯하여 여러 잘 알려진 역사가는 이 시기를 다루며 크리오요 민족주의의 탄생에 주목했다. 이들은 크리오요가 주축이 되어 독립을 시도하고 국가를 만들면서 어떻게 국사(國史)를 써 나갔는지에 대해 정교한 연구를 제공한다. 당대 크리오요들이 마주했던 문제는 이미 지적되었듯, 모두가 공통의 운명(권리)을 지니지는 않으나 공통의 기원을 가지는 국가를 상상해 내는 것이었다. 이 모순은 시적으로는 호세 페르난데스의 절규처럼 “[스페인제국의] 그 거대한 탐욕, 관신 그리고 잔학/스페인의 피가 내 핏줄을 타고 흐르네”라는 자괴감이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시몬 볼리바르가 「자메이카 편지」(Carta de Jamaica)에서 표현했듯 크리오요의 특권에 대한 위협이었다.
ISSN
2093-1077
Language
Korean
URI
http://translatin.snu.ac.kr/webzin/user/main/main.php

http://hdl.handle.net/10371/95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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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Institute of Latin American Studies (라틴아메리카연구소)Webzine TransLatin (웹진 트랜스라틴)Webzine TransLatin (웹진 트랜스라틴) No.32 (20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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