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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태종의 권위 확충
The Reinforcement of Regal Authority by King Taij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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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남지대
Issue Date
2014-12
Publisher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Citation
규장각, Vol.45, pp. 39-67
Keywords
Taijongcommotion focusing upon the abdication of the throneappeal to Heavenruler who received a mandate from Heaventhe Crown Prince's audience with the Chinese emperor태종권위 확충전위 소동고천천명 군주세자 朝見
Abstract
왕권 확립의 기반을 굳힌, 태종은 전위소동으로 1차 왕자의 난으로 인한 짐을 덜고 즉위과정의 묵은 허물을 하늘에 고함으로써 해소하였으며, 세자의 조현으로 왕으로서 권위를 확충하였다. 1406년(태종 6) 8월 전위 소동은 태종이 1차 왕자의 난의 짐을 덜기 위해 벌인 것이었다. 그 8월이 왕자의 난 이후 한양에서 처음 맞는 8월이었다. 태종은 세자에게 전위하겠다고 하여, 왕자의 난으로 얻은 모든 것을 내려놓으려는 자세를 취하였다. 종치니 공신 대간 백관의 반대에, 모후 신의왕후의 신령함을 드러내며 1차 왕자의 난을 일으킨 바로 그 날 전위의 뜻을 접었다. 그 와중에서 서모 신덕왕후의 제사를 왕으로서 처음 지냈고, 전위의 뜻을 접은 다음 날에 방석 방번의 제사를 지냈다. 8월 말 재위에 대한 태조의 지지를 확인하였다. 전위 소동을 벌여 온 신료와 인민이 주목하는 가운데, 왕으로서 처음으로 서모 신덕왕후와 죽인 이복동생들을 忌日에 제사지냈으며, 재위에 대한 태조의 지지를 얻어냄으로써 태종은 1차 왕자의 난으로 빚은 짐을 조금은 덜 수 있었을 것이다. 1407년 다시 심한 가뭄이 닥쳤다. 이에 태종은 하늘이 자신의 지난 잘못에도 천명을 내렸으니, 이미 왕이 된 지 여러 해 된 지금까지 재이와 가뭄으로 백성을 굶주리고 병들게 하지 말라고 하늘에 죄와 허물을 고하여 용서를 빌었다. 천명받은 군주로서 심한 가뭄을 당하여 백성의 굶주림을 걱정하고 아파함으로써, 태종은 백성을 위하는 군주로서 권위를 확충하였다. 세자의 조현은 황제가 인정한 세자임을 온 천하에 밝게 드러내었다. 세자의 위상이 더욱 굳어지고 역할이 커짐에 따라, 태종의 왕으로서 위상은 그만큼 더 안정되고 권위는 확충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태종의 왕위는 재확인되고 왕으로서 권위는 확충되었다. 그 한 증거가 1408년 정월 초에 서무를 모두 육조로 돌리어 왕 중심의 육조체제가 내용을 갖춘 것이다.
Having secured his regal authority, Taijong went on to cause a heated commotion in the court by declaring that he would soon abdicate the throne in favor of the Crown Prince. The ulterior motive for that declaration was to mitigate the damage done to his moral integrity by the role he played as a royal prince in the first violent power struggle with his step-brothers. He further tried to clear himself of the sins he had committed during the process leading up to his accession to the throne, by confessing the sins to Heaven. The commotion of August 1406 revolving around the avowed abdication of the throne was deliberately given rise to by Taijong in order to ease the moral damage he suffered on account of his involvement in the above power struggle among royal princes. It had been less than a year since the political conflict that the commotion transpired.
ISSN
1975-6283
Language
Korean
URI
http://hdl.handle.net/10371/98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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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Kyujanggak Institute for Korean Studies (규장각한국학연구원)규장각규장각 (奎章閣) vol.44/45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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