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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70년대 국가건축사업과 전통의 재구축
Reconstruction of Tradition in National Monument Projects during the 1960s and 70s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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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김지홍
Advisor
전봉희
Major
공과대학 건축학과
Issue Date
2014-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전통전통건축근대화국가상징민족주의박정희 시대
Description
학위논문 (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건축학과, 2014. 2. 전봉희.
Abstract
국민국가에서 전통을 이용하는 것은 이전시대의 상징을 동원하여 현 정권의 권 위를 확보하고, 사람들에게 같은 민족,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심어주기 위한 것 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전통의 이용은 혁명 이후의 국민국가 형성기나 근대 화 과정 등 사회적 변화가 심한 상황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한국에서는 민족정체성의 고민이 4.19혁명 이후 본격화되기 시작하여, 경제개 발과 한일문제, 안보문제가 공존하였던 1960년대 후반에 절정이 이르게 된다. 1960년대의 사회상황을 살펴보면, 여러 분야에서 ‘한국적인 것’에 대한 요구가 등 장하고 있으며, 이러한 구호는 단순히 특정 정권의 이데올로기뿐만이 아닌, 해방 후 서구화, 근대화의 과정 속에서 문화적 정체성(正體性)의 문제가 표출된 것이었 다. 민족의 자주는 서구 수준의 근대화를 통한 국력을 통해 때 이루어지는 것이었 으나, 그 과정에서 민족정체성의 바탕이 되는 문화적 정체성이 사라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제3공화국은 이러한 사회적 요구를 적극적으로 포섭하여 대중의 지지를 획득했 으며, 민족이라는 명분을 통해 국가체제를 강화하였다. 건축은 정부가 원하는 민 족주의와 근대화를 효율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도구였다. 경제개발 과정에서 고속도로 개발이나 고층 빌딩 등이 건설되면서 도시는 근대화의 상징적인 경관을 형성 해나갔다. 한편, 이러한 상황에서 민족문화와 관련된 건축사업 역시 정부의 주도 로 추진되었다.
이 시기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국가주도의 기념사업은 애국선열, 호국선현 등 으로 대표되는 위인에 대한 기념사업이다. 이는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대중적 인 기를 끌었던 영웅 위주의 민족주의 역사서술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이러한 위 인들은 주로 역사적인 전쟁과 연결되어 있었으며, 다양한 국민상을 보여줄 수 있 는 인물로 확대되었다. 동상의 건립으로 이루어지던 위인의 기념은 현충사 사업을 기점으로 기념관과 기념공원을 건립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게 된다. 현충사 사업의 설계과정에서는 국가적인 사당을 만드는 것과 관련하여 어떤 전통적 모델을 가져 올 것인지가 고민된다. 즉, 현충사는 죽은 자에 대한 국가적 의례와 국가의 민족 적 이미지를 어떻게 전통을 통해 구현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건축물의 외관으로 드러나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현충사에서 사당의 기본 배치와 기본 형식은 문묘 대성전을 선택하였고, 국가적 이미지는 궁궐정전의 세부를 차용하면서 구현되었다. 다포와 팔작에 대한 선택은 고식을 더 우수한 것으로 보고 다포를 번잡하고 섬약한 후대의 양식으로 평가하였던 식민사관을 뒤엎는 선택이었다. 현충사의 근대성 은 두 가지 방식으로 표출되었는데, 하나는 철근 콘크리트조의 사용이다. 또 하나 는 역사적 인물과 관련된 유교제사의 전통을 국민이 참여할 수 있는 행사로 변형 하고, 사당을 국민의 정신적 장소로 재구축한 것이다. 현충사의 외관은 이후 국립 묘지에 적용됨으로써, 국가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한편, 1960년대에는 민속문화에 대한 주목도 활발하였다. 민속문화는 국민의 일상과 관련된 전통이라는 점에서 국민의 정체성과 동질성 확보에 이용될 수 있 다. 각 지방의 향토문화제는 역사와 문화재, 전통예술, 민속놀이 등을 조명하고, 대중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전국적인 민속조사와 문화재지정이 이루어지고, 민속학 분야의 연구가 활발하였지만, 전통주택은 현재의 주택이나 기념비를 조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문화재 지정이나 민속촌의 조성 등 유물이나 관광대 상의 수준에서 이용되었다. 민속촌 조성사업에서 나타나는 전통주택에 대한 태도 는 현재나 혹은 미래에 계승해야 할 대상이라기보다는 근대화 과정에서 추억할 수 있는 과거로서 보존과 기록이 필요한 대상에 가까웠다. 개별 가옥은 주거문화를 전시하려는 의도가 아닌, 특산물 판매나 민속전시 등의 관광부속 시설로서 계획되 었다. 그러나 전체적인 구성에서는 각 가옥의 개별적인 문화적 특성보다는, 전국 각 지역의 주택을 한 곳에 전시한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국가적인 정체성으로서 의 민속문화가 강조되었다. 민중적 전통을 식민사관이나 유교적 권위체제를 극복 할 대안적 전통으로 하였던 당시 젊은 지식인들의 시도와는 달리,민속문화에 대한 민중의 친화성은 적극적으로 이용하면서도, 관광이나 향수와 관련된 소비적 대상 으로 취급하려는 태도가 나타나고 있다.
마지막으로 국가적인 시설을 건립하는데 어떤 식으로 전통을 이용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국가적 상징성이 드러날 수 있는 국회의사당의 설계과정에서는 전 통건축의 원리를 추출하여 현대건축에 추상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처음의 준비단계 부터 논의되었다. 국회의사당의 건립과정에서는 전통건축의 요소를 차용하려는 의 도와 서구식 외관을 추구하고자하는 의도가 혼합적으로 드러난다. 국회의사당의 건립장소에 대해서는 사직단, 종묘와 같은 왕조를 극복한 근대국가라는 의미를 나 타낼 수 있는 상징적인 장소가 논의되기도 하였으나, 결국 팽창하고 있던 서울의 도시적 상황에서 새로운 계획도시인 여의도가 의사당의 부지로 선정되었다. 부지 가 결정되기 전 설계 준비과정에서 전통건축 기법의 활용방안이 중요하게 취급되 었으며, 문화재 중 우수한 사례를 통해 현대건축에 적용할 수 있는 원리를 찾고자 하는 작업이 ‘한국건축양식조사’라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 작업은 실측과 연대추정을 위주로 한 기존의 문화재 조사와는 달리 현대건축에의 응용을 전제로 한 역사적 건축물의 목록화와 기법의 재해석을 시도한 첫 결과물이었다는 데에 의의 가 있다. 그러나 설계안의 수정 과정에서 전통의 응용보다는 서양과 같은 혹은 중 앙청에 비견할만한 ‘돔’이 있는 국회의사당에 대한 파편적인 요구가 주요 쟁점이 되면서 전통의 적용은 경회루에서 차용하였다는 거대한 열주와 세부와 실내장식에 서의 전통문양 정도로 축소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계획된 국립종합박물관과 비교 해볼 때, 이러한 전통문화, 민족성 표현의 정도는 결국 그 건물이 표방하는 기능 과 장소와도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박물관은 전통문화를 보존하는 시설이 기 때문에 전통건축의 외관을 차용하거나 역사적 장소에 지어질 수 있으며, 그에 반해 서양식 민주주의 시설인 국회에 대해서는 외관 역시 서구의 모델을 따르고자 하는 경향은 건축물의 외관이 그 건물의 기능과 연결되어 있다는 논리를 읽을 수 있다.
Language
Korean
URI
http://hdl.handle.net/10371/118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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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Engineering/Engineering Practice School (공과대학/대학원)Dept. of Architecture and Architectural Engineering (건축학과)Theses (Ph.D. / Sc.D._건축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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