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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조귀환자의 "후루사토"(故郷)와 기억의 정치학 -패전 후 귀국일본인에 대한 민족지적 연구- : The Representation and Reconstruction of Colonial Korea as the Homeland of the Repatriated Japane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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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차은정

Advisor
강정원
Major
사회과학대학 인류학과
Issue Date
2014-08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재조귀환자후루사토집합적 기억노스탤지어식민지 조선戰後 일본
Description
학위논문 (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인류학과, 2014. 8. 강정원.
Abstract
본 논문은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난 일본인이 1945년 일본 제국의 패망에 의해 본국으로 귀환한 후 조선의 경험세계를 지속적으로 형상화하는 실천을 탐구한다. 그들은 귀환 후 자신의 감각이 본토의 일본인과 다르며 그 차이가 조선에서 사물의 처음을 접한 경험에 있음을 자각하고, 좋았던 옛 시절로 당시를 회고하면서 조선을 후루사토(故郷)로 삼아왔다. 본 논문에서는 재조귀환자의 후루사토의 실천이 제국-식민지의 비대칭적 관계에서 그들이 누렸던 특권적 지위를 재생하려는 회로에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 본토와 이질적인 습속의 경험과 관련되어 있다는 가설을 제기한다. 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본 논문에서는 후루사토의 노스탤지어를 과거의 회복을 갈구하는 감정적 회로에서 더 나아가 현재와 교섭하려는 실천적 기제로 규정한다. 이와 같은 노스탤지어의 관점에서, 그들이 회고하는 조선의 풍물과 습속은 자신의 경험세계를 형상화할 뿐만 아니라 戰後 일본의 풍물과 습속과의 차이를 드러낸다.
그런데 戰後 일본에서 재조귀환자의 식민지 기억은 그들에게 부여된 히키아게샤(引揚者: GHQ/SCAP 연합국최고사령관총사령부에 의해 귀환한 구식민지의 일본인)의 국민적 동일성 속에서 戰後에도 발휘되는 일본인의 제국의식과 동일시되어 히키아게샤로서의 피해자 의식에 은폐되거나 식민지배자로서의 가해의식 혹은 그에 대한 비판의식의 근거로 주시될 뿐, 일본인과 변별되는 경험적 특질의 규명을 요청받지 않았다. 그것은 히키아게(引揚げ)라는 용어가 내지로 철수한 외지의 일본인에게 돌아왔음을 고지하며 내지와 외지로 구획된 제국의 영토가 소멸했다는 탈-제국의 역사를 표명한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재조귀환자의 귀국이 새로운 곳에 정착하는 이주의 과정으로 간주되지 않았던 까닭이다. 戰後 일본에서 내지와 외지는 경험적 특질로 포착되지 않고 국민국가로의 통합의 담론공간에서 각 구성원의 위치로 할당되었다. 이에 따라, 내지와 외지의 제국의 구획된 영토에서 탈-제국의 역사적 과정을 거쳐 戰後 일본의 국민국가로 전화하는 속에서, 재조귀환자는 외지 출신의 일본인으로 구획되었다. 요컨대, 戰後 일본사회에서 히키아게샤의 담론이 가해자에서 피해자로의 국민적 전향에 일조했다면, 내지와 외지는 국민적 동일성을 위한 내적 구획화로 작동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재조귀환자는 외지의 일본인으로 구획되는 대신 외지, 곧 조선의 풍물과 습속을 자신의 경험적 특질로 삼으며 그로부터 현재적 실천을 이어가고자 한 것이다. 그들은 식민지적 훈육의 이데올로기―내선일체―에서 자신과 조선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설정하고 그 관계를 戰後에도 지속하고자 하는 한편으로 조선적인 것의 습득의 경험을 강조해왔다. 여기서 우리는 일본인의 국민적 동일성에서 내적으로 구획되지 않으려 하면서도 자신의 경험적 특질을 잃지 않으려는 후루사토의 실천적 의도를 읽어낼 수 있다. 재조귀환자는 조선의 경험을 戰後 일본의 담론공간에 구축된 히키아게샤의 고난과 극복의 서사와 중첩시키며 후루사토의 구성물로 담아내었다. 그리하여 재조귀환자의 원체험의 조선은 戰後 일본에서의 내지와 외지의 차이에 대응되며 과거에 머물지 않고 현재와 미래에까지 이어진다.
경성 출신의 재조귀환자는 일본인 학교의 동창회를 조직하고 자신의 경험세계를 동창회지와 회합의 장을 통해 회원들과 공유해왔다. 즉 재조귀환자의 조선의 기억은 동창회 활동을 통해 공유된 기억이며, 개인의 기억뿐만 아니라 집단의 기억이다. 그리고 집합적 기억으로서 조선의 풍물과 습속은 히키아게샤의 국민적 동일성에서 배제된 식민지의 기억을 일상의 영역으로 끌어온다. 이렇게 해서 식민지의 기억은 히키아게샤의 담론공간과 다른 차원에서 그들의 경험을 설명하고 해석한다. 히키아게샤의 담론공간에서 그들은 미래를 위해 과거와 현재의 고난을 감내하는 존재로 그려지는 반면, 식민지의 기억은 조선적인 것을 습득한 그들의 과거에서 현재적 실천을 설명하며 미래의 일상의 영역을 조직한다. 재조귀환자는 戰後 일본에서 외지에서 내지로 온 이주자로서 조선을 출신지 삼아 일상의 영역을 구성한 것이다.
1965년의 한일협정의 체결을 기점으로 재조귀환자는 후루사토의 실천으로서 한국방문과 한일교류활동을 활발히 전개해왔다. 그러나 그들이 경험한 조선은 식민지의 조선이며, 1945년 일본 제국의 패망과 함께 일거에 조선을 떠난 그들의 기억에서만 존재하는 조선이다. 그래서 그들의 경험세계에서 조선의 풍물과 습속이 식민지적 맥락과 분리되어 후루사토의 문화요소로 특질화된다 해도, 한국과의 대면의 장에서 식민지적 역사인식을 요청받는다. 즉 한국방문은 식민지적 역사인식과 조선의 기억이 조우하는 인식의 장이다. 그들은 한국방문을 통해 조선시절의 의식과 태도가 식민지의 용법이었음을 깨닫고 시대적 변화를 체감하며 그 변화에 부응하고자 했다. 그들이 이 과정에 충실히 응했던 것은 조선을 집합적 기억으로 구성할 때에 이미 한국의 문화적 위상에 부응하기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후루사토를 구성하는 조선의 풍물과 습속은 노스탤지어의 신체적 기억에 의거한 것이므로 신체에로 의식의 동일시는 필연적이다. 나아가 그들은 조선인과의 관계를 복구하고, 복구된 관계를 후루사토의 지연관계로 의미화했다. 이로써, 재조귀환자의 후루사토의 시공간은 식민지 조선의 잃어버린 세계에서 해방 후의 한국으로 옮겨진다.
재조귀환자의 조선은 한일협정의 1965년까지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의 노스탤지어에 둘러싸여있었고, 시간적 간극에 의해 상호주관성을 상실하고 서사적 관념으로만 존재했다. 그런데 그들은 1965년 이후 한국을 주기적으로 방문하면서, 후루사토를 한국에 구현할 수 있었다. 재조귀환자는 戰後 일본에서 국민적 동일성의 담론공간에서 구획되지 않으면서도 경험적 특질을 보존하고 일상의 영역을 조직하기 위해서 후루사토로서 조선을 드러내야 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을 반겨주는 조선인과의 관계를 후루사토의 지연관계로 의미화하며 지속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후루사토를 한국에 구현하고자 한 재조귀환자의 실천은 국민국가의 경계 앞에 가로막히고 만다. 타국이 되어버린 조선에서 조선에서 태어난 일본인은 국경을 넘어설 수 없었다. 그 결과 재조귀환자의 조선은 마음의 후루사토로 되돌아온다.
본 논문은 재조귀환자의 조선의 노스탤지어를 戰後 일본의 사회문화적 맥락에 위치한 현재적 실천으로 이해하려했다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 이는 식민지의 기억과 식민지 이후의 실천과의 관계를 해명한 것으로, 식민지적 문화습득의 경험의 실천적 차원을 새롭게 발굴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는 戰後 일본사회의 탈-제국의 맥락을 다루지 못하여 재조귀환자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에 다다르지 못했다. 향후 과제로 삼는다.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20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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