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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과 자유주의 평화기획
The Korean War and Liberal Peace Pro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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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김학재
Advisor
정근식
Major
사회과학대학 사회학과
Issue Date
2013-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한국전쟁자유주의 평화 기획통치성의 계보학안보전지구적 사법 주권이중적 예외상태자유주의적 차별화 전략자유주의 인구 정치권력 균형대안적 평화기획
Description
학위논문 (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사회학과, 2013. 2. 정근식.
Abstract
한국전쟁은 3년만에 종식되었지만, 정전협상 타결 이후 60년간 전쟁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한국에는 힘에 의해 강요된 평화만 존재했고, 아직 권위에 의한 평화가 도래하지 않았다. 무엇이 이 60년간의 유예된 평화를 초래했는가? 냉전이 끝나고도 지속되고 있는 한국전쟁 정전체제의 기원과 성격 쟁점들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절실하다.
이 논문은 한국전쟁의 발발과 전개 종식 과정을 기존의 냉전연구의 틀이 아니라, 전지구적 자유주의 질서·분업구조와 한국사회가 조우하고 포섭된 과정으로 바라보고자 했다. 이 연구는 한국전쟁에서 작동한 20세기 자유주의 기획의 성격과 결과를 분석하여 한국전쟁을 둘러싼 논쟁과 결정, 협상들을 재해석 하고자 했다.
2차대전 전후 전세계로 확대된 20세기 자유주의 질서는, 한국전쟁에서 지금까지도 뚜렷한 해법을 찾지 못한 여러 딜레마들을 대면해야 했다. 한국전쟁은 자유주의 질서의 전지구적 상승기에 마주친 역사상 최대의 난제중 하나였다.
이런 난제들에 직면해 UN과 미국, 서구국가들과 동아시아 국가들은 어떤 논쟁 끝에 어떠한 결정을 내렸는가? 한국전쟁은 20세기 자유주의 국제질서, 자유주의 기획의 전지구적 전개에서 어디에 위치하며 어떤 역사적 함의를 갖고 있는가? 한국전쟁에서는 어떠한 자유주의 평화기획이 적용되었으며, 어떤 변형을 겪고 굴절되었는가?
이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이 연구는 자유주의적 통치성에 대한 푸코의 통찰과 통치성계보학이라는 방법론적 문제의식을 활용해 냉전시기 제 3세계라는 역사적 맥락과 사례에서 자유주의 질서가 어떻게 수립되었고, 그 과정에서 어떤 '자유주의 기획들Liberal Projects'이 작동했는지를 살펴보았다.
특히 논문은 미국의 봉쇄 전략을 단지 냉전의 대외 정책이 아니라 하나의 특정한 자유주의적 기획의 정치적 형태로 재해석하였다. 봉쇄 전략은 각각의 현실의 사례와 조건에서 특정한 자유주의 질서의 생산과 유지에 드는 사례별 위기(Risk, Crisis)에 대한 비용 계산을 통해, 이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안전/안보National Security을 구성해 대응하는 제도와 절차, 분석과 성찰, 계산과 전술의 앙상블이다. 냉전시기 자유세계의 유동적인 경계들은 자유의 성격과 그것의 위기, 그에 대한 안전 장치의 대응의 산물로 형성되고 유지되고 변화했다.
이렇게 특정한 자유주의 기획이 적용된 과정으로 한국전쟁의 발발과 전개, 결과를 재해석한 결론과 주장들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한국전쟁기 자유주의 평화기획은 초국가적인 보편 원칙을 무리하게 군사적으로 관철하려하다 수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한국전쟁에는 2차대전 전후 전지구적 자유주의 평화기획에 의해 형성된 전쟁과 평화를 관리하는 분업구조가 적용되었다. 그런데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상승기에 발생한 한국전쟁에는 과도한 정치적 의미가 부여되며 유례없는 상황이 전개 되었다. 유엔과 미국은 유엔헌장에 의해 금지된 침략을 처벌한다며 군사적 개입을 감행하여 전지구적 사법기획을 추진했다. 또한 미국이 단순한 방어전쟁이 아닌 무력 통일 전쟁으로 전쟁을 무리하게 확대하면서 UN의 권력 구조를 바꾸고 미국내 헌법질서도 침해하는 이중적 예외상태를 초래했다.
즉 미국이 주도한 UN의 한국전쟁 초기 결정들은 자유주의 기획이 전지구적 사법주권 질서의 적용을 시도한 것으로, 19세기적 주권국가들의 권위를 보호한 실증주의 원칙을 부정한 것이다. 미국은 한국에서 UN을 통해 자유주의 평화기획 중 최대치로서 자유주의 평화규범에 대한 위반을 범죄화하는 기획, 무조건 항복을 추구하는 승자의 평화(Victor's Peace)를 무리하게 군사적으로 관철시키려 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기존 질서와 주권원칙을 존중하고, 분쟁 당사자들 스스로에 의한 평화를 유도하여 평화를 평화적으로 창출하는데 실패했다. 이렇게 보편적 기획과 군사주의가 결합되는 역설, 군사적 성공과 정치적 실패의 역설이 바로 한국전쟁 초기결정이 가진 역사적 특이성이었다.
둘째, 중국의 개입은 자유주의 기획을 좌절시키고 권력 균형상태로 되돌아가게 했고 상호간 현실주의적인 현존유지적 균형을 지향하게 하였다. 이에 대응해 미국이 전개한 차별적인 자유주의 전략은 동아시아의 냉전적 분할을 심화시키고 한국의 정치적 성격이 제거된 낮은 수준의 군사적 정전체제를 초래했다.
제 3세계 급진민족주의의 통일 전쟁과 UN-미국 자유주의의 정의로운 전쟁의 대립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은 중국의 개입으로 동아시아 지역 전쟁차원으로 확산 되었다. 중국 개입으로 UN-미국의 국제정치적 함의와 문제해결을 위한 부담의 차원과 무게가 달라졌다. 이런 압력에 직면해 자유주의의 보편적·이상적·군사적 기획이 소진·좌절되고 지역적·현실적·정치적 기획으로 전환되면서 자유주의 기획에 굴절과 변형이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사례별 양 진영의 대응 전선이 형성되었고, 한국전쟁과 관련되어 있던 동아시아의 전후 정치사회 변동에 관한 쟁점들이 각기 분리되어 서로 차별적 형태로 제도화되었다.
즉 중국은 미국의 비인정 정책으로 향후 20년간 UN회원국이 될 수 없었으며, 한국에서는 정치문제가 완전히 제거되고 지역화된 군사적 정전협상을 시작했고, 일본에서는 최단기일 내에 동아시아 전후처리의 정치적 차원이 제거된 자유주의 평화협약과 군사동맹이 맺어졌다. 결국 중국의 한국전쟁 개입이후 미국이 자유주의의 정치적 배제, 지역화/군사화, 정치경제적 포섭이라는 세 국가를 차별화하는 대응 전략을 펼침으로써 동아시아에서 안보-평화 레짐의 분업구조가 형성 되었다.
셋째, 군사적 정전협상이 전개되던 상황에서 미국은 자유주의 국가의 도덕적 우월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또 다시 기존 국제법 원칙을 넘어선 자원송환 정책을 새롭게 제시하고 이를 일방적으로 관철시키려 하면서 수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한국전쟁에서는 포로문제를 둘러싸고 각각 베르사유-UN-제네바 레짐, 즉 전범처벌(베르사유와 뉘렘베르크), 개인 인권과 정치적 망명권(UN과 미국), 인도주의 전시법 계열(제네바)이라는 세 가지 계열의 원칙이 충돌했다. 미국은 기존 국제질서에서 합의된 제네바 협약을 부정하고 새로운 자유주의적 원칙인 개인의 자유와 망명권을 더 보편적 상위가치로 내걸었다.
그런데 미국의 자원송환 원칙이 기존의 국제법적 근거들을 모두 넘어선 새로운 자유주의 문명 원칙으로 부상한 순간 수용소 내부에서는 포로를 향한 적나라한 폭력이 동양반공주의자라는 이중의 예외화를 통해 정당화되었다. 기존의 국제, 지역 질서를 무시한 초월적 보편주의 이상의 일방적 적용이 현실에서는 더 적나라한 예외주의와 폭력을 동반했다는 역설, 혹은 보편적-군사주의의 역설의 또 다른 사례였다. 미국의 자원송환 정책은 지역의 민족주의, 평등한 주권원칙을 압도하고 때로는 민족을 부정 분리하여 반공·자유주의라는 정치적 동질성으로 국가/국민을 구성하는 냉전적 기획을 정당화했다.
미국은 수용소 내부에서 비자유주의 국가의 국민을 대상으로 심사와 망명 정치를 무리하게 추구해 엄청난 폭력 사태와 부작용을 초래했다. 반공포로들은 냉전의 명예시민이 되었지만 공산주의 포로들은 자유주의 문명의 우월성 앞에서 동양공산주의자라는 이중적인 타자화로 인해 비자유주의적 타자(The Other)로 낙인 찍혔다.
이렇게 초국가적 원칙이 미국에 의해 강력히 추진되자 현실에서는 미국보다도 더 반공주의를 향한 전투에 열정적으로 나섰던, 호전적 반공주의를 자산으로 자신의 이해관계를 얻어내고 요구를 관철시켰던 반공주의 시스템의 과잉들이 생겨났다, 미국은 이 전향한 과거의 적들에게 정치적 난민, 망명의 지위를 부여하고 군사, 경제적으로 지원하며 미국의 이념에 복무하는 비밀작전을 수행하게 하였다.
넷째, 자유주의적 기획의 무리한 관철은 한국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위한 열망과 동력을 소진시키고 동아시아 지역에 미국의 주도하에 구축된 배제적인 양자 간 군사동맹 체제를 구축하게 했다. 이 군사동맹 구축에 대한 반발로 동남아시아에서는 한국사례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탈냉전적 평화기획이 등장했다.
미국은 트루먼 시기의 정치적 기획과 달리 경제적 계산에 근거하여 전지구적 냉전 전략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한 아이젠하워의 냉전 전략 하에서 일본과 한국 같은 친자유주의 국가들과의 양자 간 군사동맹을 더 본격적으로 추구했다.
한국전쟁을 종식시키는 평화의 모색은 UN을 벗어나 별도의 국제 회담에서 이루어졌으나, 정치적 타결의 무게를 감당하고 추진하려는 세력이나 이해관계가 충분치 않고 오히려 분할에 입각한 권력 균형, 그리고 각 균형 체제 속에서의 무장과 국력 증강, 외부지원을 바라는 이해관계가 커졌다. 이에 따라 한국문제에 대한 정치회담은 파행으로 치닫고, 한국은 불안한 정전상태에서 미국과의 방위조약을 맺게 되었다.
이후 동북아의 냉전이 동남아시아로 확산되면서 한국전쟁을 치른 미국과 소련, 중국은 각기 이 지역의 영향력과 헤게모니를 얻기 위한 경쟁을 하게 되었고, 베트남에서 진행되던 프랑스와 호치민 간의 전쟁을 종식하기 위한 평화협상이 한국문제와 동시에 제네바에서 다루어지게 된다. 평화공존 정책을 주 외교노선으로 내건 중국의 주도적 노력으로, 베트남에서는 한국의 정전체제와 똑같은 형태의 분할과 임시 정전체제가 수립되게 된다.
이후 미국이 더 강력한 군사동맹을 구축하기 위해 SEATO를 추진하는 등 냉전의 양 강대국이 군사동맹을 체결하고, 아시아에서 중국이 영향력을 확대하며 동남아의 긴장이 심해졌다. 그러자 이런 냉전적 방식의 군사동맹 체제 자체에 반대하는 중립주의 노선이 등장했다. 반둥 회의는 그 상징적 구심점으로서 수년간 전개된 UN의 평화 구축, 미국의 자유주의 기획, 특히 한국에서 구현된 냉전의 극단적 갈등을 극복하고 대안적 평화를 요구하게 되었다.
결국 한국 전쟁의 경험은 자유주의 보편기획을 군사주의적 실천으로 강제로 관철시킨 무리한 성공의 부작용과 역설을 보여주는 실패 사례이다. 한국전쟁에 적용된 자유주의 평화 기획은 동아시아 냉전을 심화시켜 불안한 권력 균형을 지속시켰고, 문명론적인 배제적 이분법을 강화했으며 탈식민이라는 지역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미국과의 양자 군사동맹의 길로만 이끌려 했다. 자유주의 기획은 매우 과도한 정치적 상징을 부여하며 무리하게 이상적 기획을 추구하다가 반발과 부작용을 대면하고, 급속히 매우 현실적인 타협과 묵인된 방치로 전환되었고, 현존질서유지에 대한 강박에 의존해 60년간 유예된 평화를 초래한 모델이었다.
한국전쟁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딜레마와 그 결과들을 보다 일반화해보면, 자유와 안전의 변증법이 위기의 성격과 규모, 역량의 제한에 따라 선택적인 자원의 배치를 하면서 평화와 전쟁에 대한 분업구조가 형성된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가장 보편적이고 이상적인 기획이 군사적 수단에 의해 도입되었고, 중국 개입이후 전쟁이 지역 규모로 확산되자 권력 균형 상태에 기반한 정치적 협상이 시작되었다. 한국전쟁 포로문제에서는 가장 보편적인 인권원칙이 국가 주권원칙을 부정하고 적용되었고, 한국전쟁 이후 동남아로의 냉전 확산에 대해서는 다시 권력 균형과 정치적 협상이 중시되었다. 한국에는 일방적이고 군사적인 기획이, 동아시아 차원에서는 권력균형과 정치적 협상이 선택되었고 여러 협상의 결과들이 한국의 분단과 동아시아의 차별적 분할을 초래했다.
오늘날 자유주의 평화기획은 위계적인 세계적 경제 불평등 구조와 만나 전쟁과 평화의 공간적 분리를 형성하고 이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자유주의 기획에 따른 평화라는 가치가 매우 불평등한 전지구적 혹은 사회 구조와 공존하며 때론 이를 정당화하는 가치가 될 수도 있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런 결과는 기본적으로 자유의 생산과 유지, 보호에만 주목해온 자유주의 기획의 근본적 한계이자 종착점이기도 하다. 자유주의 기획이 국내/외, 지역수준에서 불평등한 국가/사회관계에 대한 아무런 문제제기 없이 평화와 안정만을 최우선의 가치로 내거는 한 이런 결과는 불가피하다.
자유주의 질서에 의해 형성된 고도로 발전된 갈등의 분업관계와 공간적 분할에서 한반도에 현존하는 60여 년간의 전쟁상태는 정확히 이 분업구조와 공간적 분리의 경계지대에 있다. 지금까지 한국사회는 이 전쟁으로부터 폭력과 파괴에 대한 깊이 있고 호소력 있는 성찰을 길어 올리지 못했다. 한국전쟁이 평화에 대한 지혜의 보고가 되지 못하고, 영원한 갈등의 박물관이 된 것이 그 역설적 증명이다. 한국전쟁은 자유주의 평화의 실패한 유산이자 버려진 기념비이고, 다수가 외면하는 극단적인 사례로 남아있다.
현재 미국이 주도해온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경제위기와 정치적 위기에 직면해 변형되면서, 군사적 역량과 부담이 재조정됨에 따라 동아시아엔 민족국가 간 권력 균형과 군비경쟁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지금은 냉전 초기에 형성된 질서들에 대한 포괄적인 재협상과 재조정이 시작되는 중요한 질서 변동의 시기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의 기존 평화론들은 중국의 자유화나 북한의 자유화만을 기대하는 보수적인 평화론을 고수하거나, 19세기적 민족국가 건설만을 유일한 답으로 사고하거나, 선진 자유주의 국가들의 연방제 모델을 따라가거나, UN에서 제시된 기획들을 반복하거나 무엇보다 보수적인 안정 욕구에 근거한 우리만의 평화에 안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적대적이고 공격적인 일방주의나 기존 입장의 고수, 무분별한 서구 모델의 도입에는 모두 한계가 있다.
이 연구에서 제기한 의제와 쟁점들에 대한 대면과 고민을 통해 한국의 평화뿐만 아니라 자유주의 평화론에서 더 나아간 대안적인 평화의 모색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현존 자유주의 질서 내에서 최악을 피하고, 대신 차악을 택하거나 차선 속에서 안주하기 보다 20세기적 기획 전체에 대한 극복과 성찰의 태도가 필요하다.
The Korean war(1950-53) ended after 3years fighting, however the state of war is not ended since the armistice negotiation settled 60 years ago. During this 60 years, there was only precarious and temporary peace by force, and the peace by common authority is still not arrived. What created this delayed peace? It is definitely required to analyze closely about the issues, pecularities and origins of the Korean War Armistice system which still exists after the end of the Cold War.
This research tried to explore the outbreak, development procedure and the end of the Korean War, as a process in which Korean Society encountered with Global Liberal Order and its division of labor structure. I attempted to re-interpret the discussions, political negotiations and decisions around the Korean War through analyzing the characters of the 20th century's Liberal Peace Project which operated at the War.
The Liberal International order of 20th Century, which was emerged and expanded during around the Second World War, must confront the huge dilemma which it has never founded clear solutions. The Korean War was one of the most difficult problems in the history which the liberal order encountered during it's ascendancy.
How the United Nation, United States, Western Allies and East Asian countries decided after every debates? Where is the location of the Korean War in the history of Liberal international order of 20th Century. and what is the historical implication of the war in the history of the liberal peace project? What kind of liberal peace projects introduced to the Korean War and how they transformed and changed their strategy?
To answer this questions, this research borrowed the insights of the concept 'liberal Governmentality' of Foucault. And adopted the methodology of the Geneaology of the Govermentality to analyze how the liberal order was established in the context of the Third World during the Cold War and which kind of liberal projects were operated.
Especially, this research re-interpreted the Containment policy of the U.S. not as a cold war foreign policy, but as a 'peculiar political form' of the liberal project. Therefore, I defined the containment policy as an "ensemble of institutions, procedures, analysis, calculations and tactics, with which the liberal order can produce some freedoms and sustain the order by calculating the costs, to confront a certain Risk and Crisis with constructing a special kind of National security strategy". Flexible Frontiers of the 'Free World' during the Cold War were constructed, sustained and changed by these responses of the Security apparatus which confronted the Crisis of a certain Freedom.
The results and my argues after re-interpretation of the outbreak, development and effects of the Korean War, as a procedure in which a certain liberal project was introduced, can be summarized as following.

First, the liberal peace project during the Korean War produced many side effects, because it tried to accomplish the supra-national universal principle and value by unilateral militaristic approach. The complex structure, which emerged by global liberal peace projects, to manage a war and peace were applied to the Korean War. However, as the War occurred when the liberal order ascendancy, the unique situation evolved due to the Korean War was symbolized too politically. The United Nation and the U.S. pursued to punish the North Korea by global Juridical frame and military intervention. Even more, as U.S. expanded its operation from defensive war to the aggressive war to unite whole Korea by force, it created the 'Double State of Exception' which transformed not only the power structure of the UN and but also violated the U.S. constitution by empowering the UN assembly and deploying U.S. army only by the U.N. resolution without congress approval.
The early decisions of the U.N. which initiated by U.S. was negation of the 19th century's international positivist principle which protected the state sovereignty by applying new global legal order in the U.N. charter. U.S. tried to achieve this maximum goal to criminalize the 'aggressor' by liberal legal authority and pursued the 'Victor's Peace' to seek unconditional surrender. However, this approach failed to create peace by peaceful means such as mediating negotiations between both belligerents themselves, and failed to respect the sovereignty principle and pre-existing local context. The 'paradox of universal project' combined with militarism, and the 'paradox of military success' and political failure, was the historical pecularity of the early decision of the Korean War.

Second, Chinese intervention discouraged the liberal project and created the balance of power state. After then, both bloc pursued more realistic status quo approach. To respond this changes, U.S. adopted differentiated approach to the each problems they should solve with Communist China, the Korean War itself, and the early Peace treaty with Japan. This deepened the division of the East Asia and also the issues of the Korean Armistice negotiations systemically excluded any kinds of political matters. From this point, a militaristic-technical form of peace was installed.
Chinese intervention was a 'Regional political action' which changed the character of the War from the radical nationalistic unification war of the third world and UN-US's 'Just war' to more broad 'East Asian war'. With her intervention, the burden to solve the problems of the Korean war and international meaning was dramatically changed. With this pressure, the driving force of the original "universal-ideal-militaristic" projects was exhausted and another "regional-realistic-political" project was emerged. As liberal project transformed, every issues were dealt with different approaches, and multi dimensional frontiers were created. This procedure founded the basis of the "East Asian cold war division system".
That is,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could not become the member of the UN during next 20 years, militaristic armistice negotiation started without any political agenda in Korea, and Japan concluded a liberal Peace Treaty with U.S., which has no reparation clauses and no political solution for the problems of the Second World war of East asia including post-colonial agenda and territorial issues after the war and regime changes. Therefore, U.S. responded the chinese intervention by differentiating three nations with political exclusion(non-recognition), localizing and limiting the Korean War peace negotiation to a militaristic affair, and a rapid political-economical inclusion for each cases. This three projects constituted a specific East Asian Security-Peace division structure.

Third, when the armistice negotiation started, the U.S. introduced new principle of "Voluntary repatriation" for the Prisoners of War at the Korean War to emphasize moral superiority of liberal countries. It was a project to negate pre-exist international legal principle, such as Geneva Convention of 1949, therefore it created many unexpected and brutal conflicts in various level, including UN and in the Prisoner camps.
At the Korean War, three different international regimes regarding POWs were applied. It was War Crime regime(Versailles and Nuremberg), individual rights and right of political asylum(UN and U.S.) regime, and humanitarian law of war(Geneva) regime. U.S. attempted to establish a new international principle of voluntary repatriation as a more superior than other nationalistic principle which guaranteed state sovereignty.
When U.S. legitimized the new principle as a standard of new civilization which transcend all pre-existing international value, brutal violence toward so called communist POWs was legitimized by double exclusion by 'oriental communists' image. This was an another case which shows universal principle which attempted to negate pre-existing legal principle by force, accompanied by naked-violence and exceptionalism in reality. This was also an another case of the paradox of Universal-militarism we observed at the early phase of the War. This liberal project can be described as a "liberal nation-making" or "liberal subject-creating" project with illiberal nation beyond previous "national nation-building" tradition.
To apply this liberal project, big screening operations were introduced to inside the POW camps. And It created serious tensions and violences between POWs who has different political beliefs and different origins, who came from two divided countries by two civil war(Korea and China). As UN Camp authority encouraged political asylum to liberal state, some anti-communists could become an 'honorary citizen of cold war', the other illiberal communist POWs stigmatized as illiberal "The Other" through double exclusion by fanatic 'Oriental Communist' image which was compared with "Liberal civilization".
As this transcendental principle introduced by force, many subjects who were more aggressive than U.N. army themselves were emerged. With their aggressive anti-communism and active participation in screening operations, they have got small awards and powers at the local scale. They were the excesses of the liberal system who converted their belief to get a status as a political refugee or a right of asylum. And U.S. mobilized these 'defectors' into the covert operations.

Fourth, conflicts around armistice negotiation made the ideal for the final political solution of Korean problem exhausted, thus it resulted to bilateral defense treaty relationship with U.S. in East Asia. As a reaction to this exclusive military alliance building, south east asian countries developed alternative post cold war peace project with which to prevent same results of Korean case in their region and to overcome UN-U.S. liberal peace approach.
When Eisenhower administration was launched, they stressed economic consideration rather than political significance as previous Truman administration did. After rearranging strategic priorities, they started to establish more cheap, symbolic, non-multilateral security pact with pro-liberal East Asian countries.
International conference was held outside the UN to seek political solution of Korean Problem as the Armistice agreement provided such a plan. However, no parties were eager to solve this extreme conflict by politics, rather, all player chose to maintain balance of power status. And within this balance state, cold war blocs resumed to build their army and aid to their allies. Therefore, Geneva conference regarding Korean problem produced no positive result, but the negotiation regarding indochina problem was settled by partition and armistice as exactly the Korean armistice have done. Meanwhile, South Korean government was eager to get a signature of U.S. on a military defence treaty with U.S..
As Cold war expanded into the South East Asia, PRC initiated to disseminate their "five principle for peaceful coexistence" owing to the experiences of negotiation with U.S. and UN during the Korean War. When U.S. push forward to establish SEATO in south east asia, and PRC's showed their will to expand their influences in to same area, it created serious tension. Therefore, new alternative post cold war peace project emerged at 'Bandung conference'. Bandung conference criticized powerless liberal peace project of UN and unilateral way of U.S., and PRC's intention and aid to neighboring allies. However, two Korean governments were not even invited.

Finally, the Korean War experiences was a failure of liberal peace project which shows us the 'paradox of success' by unilateral force to pursue universal liberal plan. Liberal project deepened the tension of cold war in East Asia, have maintained the precarious balance of power system, also strengthened civilizational dichotomy, and did not considered regional context as postcolonial problem well. It only attempted to lead them to the bilateral military alliance. This was a model in which the maximum ideal rapidly turned to realistic compromise and neglect after confronting strong resistance and only could be sustained by 'obsession with balance of status quo', which caused delayed peace for 60 years in Korea.
I want to generalize this pattern more. The dialectics of freedom and security arranges different resources and approach by calculating the specific costs and analyzing the character and scale of a specific crisis. As the results of this selective approach has been accumulated, the division of labor structure regarding War and Peace has been constructed. We can see at the Korean War that an ideal project with military mean created another crisis, and when balance of power system emerged, political-economical differentiation strategy was introduced. These serial processes finally created East asian division system.
In these days, liberal peace project are maintaining spatial separation between the 'zone of war' and the 'zone of peace' with unequal and hierarchial economic structure. This create worries that the value of peace in liberal peace project can perhaps legitimize unequal structure. On the one hand, this is a natural result of liberal project which has critical limitation that it only has interested in producing freedom, maintaining someone's privilege, protecting existing power. If liberal project only emphasizes a stable order and separated peace without having any concern to the unequal structure of global and social economic system, and to the sensitive local context, this result is inescapable.
The 60 years delayed peace and prolonged state of war in Korea, lies exactly in the border between the 'zone of war' and the 'zone of peace', and in the middle of the hierarchial division of labor system. However, unfortunately, Korean society have never suggested a deep and appealing reflexivity about war and peace by themselves. The Korean war has been a just "Museum of the Cold War" and extreme conflict not a resources of wisdom for peace.
It is critical time now that the liberal international order which was leaded by U.S. is transforming. Military and territorial tension and disputes are increasing between East Asian countries. Now re-negotiations are just started.
However, previous peace theories and designs were only suggested the 20th century's liberal project for the North Korea, or 19th century's national project to build an united Korea, or following federal state model as western states did, or repeating past ideas which suggested by UN, even worse, have only interest to the stable 'our peace'. All these options have limitations.
I hope alternative peace projects will emerge after considering agendas of the historical experiences of liberal peace project in the Korean War. Not only for the our peace, but also for the more peace with equality. More fundamental critique is required not to select between 'lesser evil' and 'lesser good' in this Liberal Cosmos.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2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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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Social Sciences (사회과학대학)Dept. of Sociology (사회학과)Theses (Ph.D. / Sc.D._사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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