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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부채경제의 정치경제적 영향에 관한 연구: 국가, 금융, 기업 관계를 중심으로
The Transformation of Debt-Economy in South Korea : Focusing on the State–Industry–Finance Relation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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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박찬종
Advisor
임현진
Major
사회과학대학 사회학과
Issue Date
2014-08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수출주의부채경제국가부채기업부채가계부채은행제2금융권금융화
Description
학위논문 (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사회학과, 2014. 8. 임현진.
Abstract
본 연구는 한국 자본주의의 기본구조를 수출주의 부채경제로 규정하고, 이 개념을 통해 최근 가계부채의 급증현상에 관한 역사적 설명을 시도한다. 한국에서 수출중심적 성장은 기존의 통상적 설명처럼 1960년대 박정희 정부의 결단에 의한 것이 아니라, 1950년대의 원조 경제가 부채경제로 대체되면서 강제된 것이었다. 그런데 수출주의는 이처럼 부채경제의 결과였던 동시에, 역으로 부채경제를 확대재생산했다. 실제로 1960년대 이후 수출주의의 성공은 부채규모의 지속적인 확대를 동반했고, 그에 따른 부채의 누적은 결국 1980년대 초와 1990년대 후반 두 차례의 경제위기로 귀결되었다. 경제위기에 직면한 국가는 한편으로는 구조조정과 금융자유화를 통해 대응했지만, 이러한 대응은 부채경제를 축소시키기 보다는 새로운 형태의 부채경제로의 전환을 낳았다. 1970년대의 고도의 국가부채에서 1980-90년대의 고도의 기업부채, 그리고 2000년대 이후 고도의 가계부채 현상은 이러한 전환의 결과였다.
한국의 수출주의 부채경제는 다음과 같은 세 시기로 구분될 수 있다.
첫 번째는 부채경제의 형성단계로서 1960~70년대의 국가주도 부채경제의 시기이다. 이 시기의 부채는 국가가 직접적으로 조달하거나 보증하는 외채비중이 매우 높았다. 높은 외채 의존도는 외채상환을 위한 수출부문의 집중육성을 낳았고, 동시에 수출부문의 성장은 자본재의 수입을 더욱 확대시켰기 때문에 외채와 수출이 상호강화하는 메커니즘이 형성되었다. 하지만 1970년대에 시작된 중화학공업화는 이러한 부채경제의 메커니즘에 균열을 일으켰다. 뿐만 아니라 주로 재벌이 장악한 수출부문으로의 금융지대의 집중과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비용의 사회화는 자원의 편향적 배분에 대한 사회적 저항을 발생시켰다. 이는 결국 1979-1980년의 경제적 ․ 사회적 위기로 귀결되었다.
두 번째는 전두환 정부에서 김영삼 정부에 이르는 재벌주도 부채경제의 시기이다. 전두환 정부는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서 특혜금리폐지와 여신관리제도를 단행하여 재벌의 금융 지대의 독점을 제어하는 한편, 정책금융의 주요대상을 중소기업으로 전환하여 중간재에 대한 수입의존도를 낮추는 구조조정을 시도했다. 또한 높은 외채의존도에서 탈피하려는 목적으로 금융자유화를 추진하여 대안적인 부채공급원으로서 제2금융권을 육성했다. 그런데 제2금융권은 사채시장 자금을 흡수하여 새로운 부채공급원의 기능을 수행했지만, 동시에 재벌들이 더 이상 국가의 통제를 받지 않고 부채를 조달할 수 있는 통로로서도 작동했다. 이에 따라 부채경제의 주도권은 점차 국가에서 재벌로 이전되었고, 기업부채의 증가와 재벌들의 여신독점현상은 더욱 강화되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의 민주화 이후 다양한 부문들로부터의 부채수요가 증가하면서 국내금리가 상승하게 되자, 그 동안 부채를 독점해왔던 재벌들의 금융비용부담은 빠르게 확대되었다. 김영삼 정부의 금융개방정책은 해외의 저금리부채에 대한 접근을 확대함으로써 재벌들의 비용압박을 완화하기 위한 시도였다. 하지만 그 결과는 1997년의 외환위기였다.
세 번째는 김대중 정부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는 금융주도 부채경제의 시기이다.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를 기업과 금융부문의 구조조정을 강도 높게 추진하는 한편, 외환위기가 단기성부채에서 기인했다는 판단 하에 장기자금을 유인할 자본시장자유화를 추진했다. 특히 채권시장의 발전은 매매가능한 부채의 거래를 가능케 함으로써 부채경제의 주도권은 이제 채권자이자 투자자인 금융자본에게 이전되었다. 그런데 자본시장을 중심으로 진행된 대규모 외국인투자자금의 유입은 환율하락압력을 가중시켰다. 국가는 환율을 방어하여 수출주의를 지속시키려는 목표로 환율관리용 채권을 대규모로 발행하였고, 그 결과 국가부채는 빠르게 증가했다. 그리고 금융부문은 구조조정 이후 기업부채축소에 대응하여 가계대출을 새로운 수익원으로 설정했다. 은행들은 채권시장을 통해 가계대출을 위한 자금을 비교적 저렴하게 조달할 수 있었고, 가계는 임금소득의 정체 및 축소를 자산소득의 증가로 보전하기 위해 대규모 차입을 감행했다. 국가는 환율하락을 통제하는 동시에 국내소비수요를 진작시키기 위해 저금리정책으로 일관하면서, 가계부채의 증가현상은 더욱 강화되었다.
본 논문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최근의 가계부채문제는 1960년대 확립되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더욱 강화된 수출주의의 효과이다. 국가는 수출부문으로의 자원집중을 위해 신용 정책을 포함한 금융정책을 광범위하게 활용하였는데, 이는 국가부채의 증가(1960-70년대), 기업부채의 증가(1980-90년대), 가계부채의 증가(2000년대 이후)를 차례로 발생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특히 2000년대 이후에는 수출주의의 강화에 따라 경상수지흑자규모가 그 어느 때보다도 확대되고 있지만, 그 과실은 소수의 대기업들에게 집중된 채, 그 비용은 가계부채와 국가부채의 형태로 사회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과거 한국의 수출주의 부채경제에서 반복적으로 관찰되듯이, 이러한 현재의 상황은 가까운 미래에 또 다른 위기의 진원지가 될 가능성이 크다.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2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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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Social Sciences (사회과학대학)Dept. of Sociology (사회학과)Theses (Ph.D. / Sc.D._사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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