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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전환기 농촌 사회·경제의 지속과 변화: 언양 지역 미시 자료를 이용한 수량경제적 접근
The Persistence and Change of the Rural Society and Economy in Colonial Korea: An Econometric Approach Using Micro-data of Eonyang A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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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김성남
Advisor
이영훈
Major
사회과학대학 경제학부
Issue Date
2017-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호적토지대장토지자산 불평등도근대 교육인구 이동일본 이민창씨개명동성촌락
Description
학위논문 (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경제학부 경제학전공, 2017. 2. 이영훈.
Abstract
본 연구는 울산광역시 서부 권역인 언양읍 일대를 대상 지역으로 하여, 근대전환기 농촌 사회·경제의 지속과 변화라는 관점에서 식민지기 이래 대상 지역 소농 경제의 전개 양상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하였다. 본 연구는 이를 위해 1909년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대상 지역 인구 관련 정보가 수록되어 있는 2개 면의 『호적부』와 1912년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토지 소유 관련 정보가 수록되어 있는 4개 면의 『토지대장』 자료를 발굴하고, 이를 모두 전산화하여 분석하였다.
본 연구는 식민지기 농업 경제에 관하여 흔히 떠올리는 정형화된 이미지에 만족하는 대신에, 근대화라는 외부로부터의 변화에 대해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대응해 왔던 소농의 다양한 모습들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기본적인 문제의식으로 가지고 있다. 식민지기에 농지 소유가 극단적으로 불평등해 지는 이른바 식민지지주제가 발달한 가운데 대다수의 영세한 농민은 지주의 억압 속에 극히 궁핍한 삶을 이어나갈 수밖에 없었고, 그들의 능동적인 모습은 오로지 지주에 대한 집단적 저항의 형태로만 나타났던 것이 일반적으로 그려지고 있는 식민지기 농업 경제에 관한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본 연구는 식민지기의 소농은, 오늘날 그들의 후예들이 역시 그러하듯이, 기본적으로 자신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를 상승시키려는 강한 성취 욕망을 지닌 존재라는 점에 주목하여, 그들이 연출하고 있는 소농 사회의 다양한 모습들을 인구이동, 교육, 친족질서라는 키워드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 시도이다.
1장에서는 식민지기 이래의 농지 소유 불평등도의 장기 추이를 지니계수를 통해 살펴보았다. 조선 후기 양안 자료로부터 확인할 수 있는 언양 지역의 분산적인 농지 소유 구조는 식민지기를 거치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선행 연구의 분석을 보완하기 위해서 본 연구는 토지대장 자료와 함께 호적 자료를 추가로 활용하고, 토지대장 자료의 분석 방법도 일층 개선하였는데, 그러한 결과 역시 선행 연구의 결론을 지지하였다. 나아가 매 연도별로 지니계수를 산출하여 불평등도의 장기 추이를 살펴본 결과, 1920년대 중반 이후 불평등도의 하락이 관찰되고 있었다. 기존에 토지대장을 이용한 상당수 연구들이 1930년대 후반인 전시기(戰時期)에 비로소 식민지지주제가 약화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비해 그보다 훨씬 이른 시기인 1920년대 중반부터 불평등도가 완화되고 있었다는 점은 언양 지역의 독특한 유형적 특질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1910년대 초반 조사에 의하면 언양 지역은 상대적으로 농업의 토지생산성과 노동생산성이 뒤떨어진 농업 후진 지역이었으나, 1930년대에 이르면 오히려 쌀의 생산지로 명성을 얻고 있었다는 점이 여러 자료를 통해 확인된다. 언양 지역에서 식민지기에 지주제가 크게 발달하지 않았던 것은 농업 후진 지역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소농들이 주체가 되어 외부로부터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해 왔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식민지기 인구의 활발한 이동은 언양 지역 소농 경제의 안정을 가져온 또 하나의 요인이 되고 있었다. 2장에서는 인구 이동 현상에 주목하여 언양 지역의 인구 유출 실태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하였다. 분석 결과, 식민지기 전반부에는 주로 경제적으로 열악한 하위 계층의 차남 이하가 혼인 이후에 외지에 정착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인구 이동이 전체 계층으로 확산되어 갔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식민지기 후반부에 이르면 경제적 지위나 출생순위에 따른 차이가 거의 없어졌던 것이다. 나아가 식민지기에 가장 많은 인구가 이동지역으로 선택한 일본으로 이민한 사례도 아울러 분석하였는데, 교통 사정이 좋고, 정보 획득에 유리했던 언양면의 경우에는 부(富)와 이민 확률 간에 음의 관계가 있었던 데 비하여, 상대적으로 교통 사정이 열악했던 삼동면의 경우 부와 이민 확률 간에 역U자형의 관계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식민지기 언양 지역에서 다수의 인구가 자신의 경제적 지위를 상승시키기 위해 일본행을 택하였으나 지역적 조건에 따라 구체적인 양상은 달랐던 것이다.
언양 지역의 소농 경제의 안정은 높은 교육열로 표출되고 있었다. 3장에서는 식민지기 언양 지역의 사실상 유일한 6년제 학교였던 언양공립보통학교(현 언양초등학교)의 졸업생 명부를 입수하여 분석하였는데, 이를 통해 식민지기 근대 교육이 점차 확산되어 가고 있었던 모습을 여실히 확인할 수 있었다. 구체적으로 학령기 아동의 보통학교 졸업률을 구해보면, 주로 식민지기 말기에 졸업하게 되는 출생코호트의 경우, 해당 출생 아동 중 남성은 32-33%, 여성은 12-13% 정도가 보통학교 교육을 이수하는 것으로 나타나, 그다지 높은 수준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언양 지역의 보통학교 입학 경쟁률이 약 3:1 정도였다는 당시의 신문기사를 참작한다면, 낮은 졸업률은 낮은 교육 공급에서 비롯된 문제일 가능성이 크며, 언양 지역의 교육 수요가 높았던 점은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전통적인 출신 계급에 따른 졸업 확률의 차이도 살펴보았는데, 양반과 향리, 그리고 상민 출신들 간에 졸업 확률에 유의미한 차이가 존재하지는 않았다. 교육에 대한 열정은 전통적인 출신 배경과는 무관하게 언양 지역민 모두에게 일반적으로 확산되고 있었던 현상이었다. 근대로의 전환 과정에서 도입된 대중 교육은 비록 빠르지는 않았지만 일반 소농의 성취 욕망을 자극하면서 점차 보급되어 갔으며, 그러한 가운데 근대적인 생활양식과 문화가 일상으로 침투해 들어갔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4장에서는 1940년 창씨 신고 결과를 통해 언양 지역 부계 친족 집단의 응집력에 대해 살펴보고자 하였다. 씨 설정 신고라는 중대한 선택의 문제에 직면하여 각각의 호주는 어느 정도의 친족 범위에서 서로 협의하고 공동의 행동을 취하였는가를 살펴봄으로써 부계 친족 집단의 응집력을 평가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분석 결과, 인구 유동성이 높은 읍내 지역의 경우 동성동본(同姓同本) 집단 내에서 제각기 다른 씨로 설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나, 읍외 지역의 경우 동성동본 집단 내에서 씨의 설정을 통일하고 있는 다수의 사례를 찾아볼 수 있었다. 몇몇 가문에 대해 족보와 호적을 대조해 본 결과, 씨의 설정을 통일하고 있는 동성동본 집단은 8촌 이내의 당내(堂內) 집단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확인되었다. 당내 집단을 단위로 한 부계 친족 집단이 1940년 시점 현재 다수 형성되어 있었던 사실을 알 수 있는 결과이다. 친족 집단의 형성 과정을 동태적, 인과적으로 파악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 해석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으나, 이와 같은 분석 결과는 한편으로는 소농 경제의 안정이 친족 집단이 형성될 수 있는 물적 기반을 제공한 동시에, 역으로 그러한 친족 집단의 형성 자체가 소농 경제 안정의 배경으로 작용했을 가능성도 시사하는 것이다. 향후 추가 연구로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분석하여 보완할 필요가 있다. 창씨 신고 결과와 더불어 개명(改名) 신고 결과도 아울러 살펴보았는데, 근대적인 부분과 접촉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았던 근대 교육을 받은 20-30대 젊은 남성의 경우에 개명 확률이 높았던 것으로 나타나, 소농의 지위 상승 욕구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본 연구는 소농 경제의 다양성이라는 보다 확장된 연구 주제를 염두에 두고, 언양 지역의 사례를 발굴하여 구체적으로 추적하였다는 데 의의가 있다. 소농 경제의 지역적 다양성과 그 구체적인 전개 과정을 다채롭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지역의 호적과 토지대장 자료를 발굴하여 분석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또한 언양 지역의 경우 조선 후기의 인구 관련 정보가 수록되어 있는 전근대(前近代) 호적과 토지 소유와 농업 경영 관련 정보가 수록되어 있는 양안, 깃기 등의 자료가 다수 남아 있어 조선 후기 이래 지역 사회·경제의 장기적인 동태를 분석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한 점에서 본 연구는 횡적으로나 종적으로나 보다 더 큰 기획의 연구의 준비 단계로서, 그러한 보다 더 큰 기획의 연구를 이제 막 시작한 것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겠다.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2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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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Social Sciences (사회과학대학)Dept. of Economics (경제학부)Theses (Ph.D. / Sc.D._경제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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