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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前期 遞兒職 硏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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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신유아
Advisor
朴平植
Major
사범대학 사회교육과(역사전공)
Issue Date
2013-08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遞兒職軍職去官都目散官職田法
Description
학위논문 (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사회교육과(역사전공), 2013. 8. 朴平植.
Abstract
遞兒職은 常祿을 보장받지 못하는 관원 또는 군사에게 붙여주어 輪次로 受職‧受祿할 수 있게 하는 職이었다. 따라서 체아직은 그 녹봉의 財源이 확보되어 있는 관직이나 군직 가운데 窠闕이 있으면 어느 직이든 이를 체아직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5衛의 軍職이었으므로 西班遞兒職은 통상 軍職이라고도 불렀다. 5衛의 직함뿐 아니라 祿이 딸린 職으로 그 職窠數가 많은 甲士職 등의 군직 또는 雜職도 체아직으로 활용되었다. 체아직은 적의 수의 관직과 녹봉으로 다수의 관인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하였으므로, 國家財政과 官職窠闕을 모두 절감하는 데 유용하였다.
체아직은 그 受職 대상에 따라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現職遞兒와 去官遞兒가 그것이다. 현직에 있지만 常祿이 없는 내시, 잡직, 군사는 현직체아를 통해 付祿하였고, 거관 후 散官이 된 자와 거관 후에도 前銜으로 仍仕하는 자는 거관체아를 통해 녹을 주었다. 이 가운데 현직체아는 체아에 관한 규정이 곧 科祿規定에 가름하는 것이므로 이에 관한 내용을 『經國大典』 해당 조항에서 詳定하여 두었던 반면, 거관체아는 그 置廢와 職窠數가 유동적이었으므로 이를 확정하여 두지 않았다.
체아직 설치의 계기가 된 것은 錄事 등 하급관리(吏典)에 대한 去官法이었다. 태종 8년(1408)에 色掌去官法이 마련되었고, 이듬해인 태종 9년(1409)에는 吏典去官法이 정비되었다. 그리고 태종 14년(1414)에 錄事와 知印의 官職遷轉法이 마련된 후, 8년 뒤인 세종 4년(1422)에 遞兒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官職遷轉法이 시행되고 10여 년이 흘러 관리들에게 去官仕路를 마련하여 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체아직은 都目에서 높은 성적을 거둔 자가 받도록 되어 있었다. 도목에서 체아수직자를 결정하는 기준은 仕日의 多少, 맡은 職務의 勤苦한 정도, 거관할 후보자의 숫자였다. 즉, 근무일수가 많고, 다른 사람이 기피하는 어려운 직무를 수행한 관원에게 체아수직의 우선권이 있었고, 거관하여야할 관원의 숫자가 많은 관청에 체아의 수를 늘려주어 관직이 침체되는 것을 막고자 하였다.
체아직은 하나의 職祿을 여러 사람이 돌아가며 받도록 하였으므로 官職窠闕의 부족문제를 해결하고 관리의 去官仕路를 넓히는 역할을 하였다. 또한 거관체아가 있는 경우 체아직을 얻기 위해 더욱 충실히 복무하였으므로 직무 수행을 장려하는 역할도 하였다. 그리고, 체아직을 받는 것은 곧 일정한 액수의 녹봉을 보장받는 것이었으므로 공로에 대한 포상의 기능을 하였고, 常祿이 없는 관원 및 군사에게 주어 이들의 생계를 보조하는 역할도 하였다. 특히, 세조 12년(1466)에 직전법이 실시되어 散官에 대한 給田이 중단되면서, 체아직은 사실상 산관에 대한 유일한 물적 보상으로 남게 되어, 그 역할과 비중이 더욱 증대하였다.
체아직은 그 귀속을 기준으로 하여 東班各司 소속 祿官遞兒, 內侍府 遞兒, 雜職 遞兒, 西班 軍士遞兒로 크게 나눌 수 있다. 東班各司에 두었던 체아직은 各品屬衙門에 속한 하급관리(吏典)의 거관체아직이었는데, 그 置廢와 숫자가 정해져 있지 않아 이를 산출할 수 없다. 내시는 종4품~정7품까지 체아직으로 受祿하였는데, 내시의 총원 140명 가운데 대략 절반가량은 내시부에 설치된 체아직 23직으로 돌아가며 受祿하였다. 잡직은 본래 당번으로 돌아가며 근무하였고 常祿을 보장받지 못하였으므로 모두가 체아직을 통하여 受祿하였다. 잡직에게 준 체아의 총수는 군직으로 현직체아를 받은 醫員 등의 체아를 모두 합하여 총 257직이었다. 서반 군사에게 주어진 현직체아직의 총수는 4,492직이었다. 잡직 에게 군직과궐로 체아직을 준 경우를 제외하고, 잡직과궐로 군사에게 체아직을 준 경우를 포함시킨 숫자이다.
체아직은 관리의 去官仕路를 넓히고 직무 수행을 권장하는 역할을 하였으나, 한편으로 여러 가지 관직 운용상의 難點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첫째, 잦은 受職者의 교체로 인해 직무수행의 虛失을 초래하였고, 去官仕路로서 체아직이 보장되어 있는 경우 체아직으로 옮겨갈 날만 기다리며 충실히 仕進하지 않는 자도 있어 職事가 廢하여 지기도 하였다. 둘째, 西班 軍職이 濫設되는 경향도 발생하였다. 군직은 특별히 맡은 바 직임이 없는 단순한 관직의 窠闕이었으므로 職祿이 필요한 곳이면 어느 곳에나 내려주기 용이하였다. 이에 군직을 함부로 늘리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주는 사례가 많아져 국가재정이 쓸모없이 소모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였다. 군직체아의 무리한 증설은 국가재정에 부담이 되었으므로 수시로 이를 혁파해야 한다는 논의가 일어났다. 셋째, 軍職陞降의 猥濫되는 문제가 있었다. 체아직은 본시 관리가 보유하고 있는 散階보다 낮은 품계의 行職을 받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는데, 성종조 이후 당상관을 지낸 자가 散官이 되어 送西되면서 지나치게 낮은 품계의 군직을 受職하는 일이 잦아지자 이에 대한 비판이 일어났다. 賤流 출신으로 높은 품계의 軍職을 수직한 자도 있어 신분질서가 문란해지는 결과를 초래하였기 때문이다.
체아직은 현재 직무를 수행하고 있으나 常祿을 보장받지 못하는 雜職과 軍士에 대한 付祿 방식임과 동시에, 거관 후 仍仕하는 자들과 散官에게 그 爵祿이 끊어지지 않게 하는 방편이었다. 특별한 職事도 없는 자에게 체아직을 제수하여 녹을 받게 하는 것은 國祿을 낭비하는 일이라 하여 이를 감축하거나 혁파하여야 한다는 논의가 끊임없이 제기되었으나,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체아직은 종국에 혁파되지 않았다. 散官體制를 官制의 일부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조선왕조로서는 職田法 시행 이후 유일하게 남은 산관에 대한 대우책을 포기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조선왕조가 체아직을 설치하고 이를 다양한 계층에게 수여함으로써 달성하고자 하였던 목적은 職事에 대한 보상과 官員에 대한 대우였다. 그리고 최대한 많은 수의 관원에게 職祿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관인계층 전반을 官制運營의 범주 속에 포용하고자 하였다.
A Study On The Che-A-Jik in the Early Chosŏn

Shin, You-ah
History Education Major,
Department of Social Studies Education
The Graduate School
Seoul National University

The Che-a-jik(遞兒職) was a kind of position for officials including soldiers who had no regular official stipend (Nok-bong: 祿俸). They could get the official stipend in turn by holding the Che-a-jik. Every official posts could be distributed as the Che-a-jik, if only the post had its own stipend finances. The military position was the typical case. In addition to military officialdom, however, even miscellaneous technical post with its own financial allowance could be used as Che-a-jik.
The Che-a-jik was a convenient office title, through which several public officials could get their official stipend in turn for one vacant position. In so doing, the government could cut down on expenses for official stipend.
The Che-a-jik was categorized according to its recipients. One was the incumbent Che-a for officials holding their posts and the other was the Geogwan Che-a for the officials who were temporarily out of service(San-Guan:散官).
The eunuch, public officials in technical post, and soldiers who have no regular official stipend belonged to the first and those who were waiting for the job appointment(San-Guan) the second. While the regulations for the Incumbent Che-A were specified in Grand Rule of Laws (Kyŏngguktaejŏn:經國大典), the Geogwan Che-a could not be exactly enumerated or ranked because of its diverse distributions and non-occupant positions.
The Che-a-jik, as vacant office post held by several incumbents or standbys simultaneously, was helpful for relieving the problem of public post shortage and reducing government expenditure. Officials, expecting to hold Che-a-jik, were encouraged to do their jobs more sincerely and earnestly. This post could also be conferred as a reward for exemplary or meritorious services. After the law(Jik-Jeon Beob:職田法), restricting the tax collection rights only to the current office holders, was implemented in 1466(Sejo 12: 世祖 12年), the Che-A-Jik remained the only way of compensating San-Guan.

key words : Che-a-jik(遞兒職), military officialdom, official stipend (Nok-bong:祿俸), Incumbent Che-a(Che-a-jik for current officials or soldier), Geogwan che-a(Che-a-jik for public officials who are wating for appointment), San-Guan (散官: officials waiting for appointment), Jik-Jeon Beob(職田法)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2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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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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