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段顧論爭과 淸代 校勘理論의 형성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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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김효신
Advisor
이강재
Major
인문대학 중어중문학과
Issue Date
2017-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校勘校勘理論校讎古典文獻원시 텍스트(prototext)필사본목판본十三經注疏校勘記注疏合刻고전문헌의 중층구조段玉裁顧廣圻段顧論爭不校校之求一是
Description
학위논문 (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중어중문학과 문학전공, 2017. 2. 이강재.
Abstract
이 논문의 목적은 淸代 校勘理論의 의의를 새롭게 규명하는 것이다. 특히 嘉
慶 연간(1796~1821)에 진행된 『十三經注疏』의 校勘 작업과 이후 진행된 일련의
논쟁을 자세하게 분석하여, 당시 校勘理論의 형성 과정을 학술사적 관점에서 고
찰하고자 한다. 淸代의 학자들은 통행본에 대한 비판의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자료를 치밀하게
검토하여 개별 古典文獻에 대한 다양한 교감 성과를 생산하였다. 이러한 校勘 성
과물이 풍부하게 축적됨에 따라, 校勘의 목적ㆍ원칙ㆍ대상ㆍ근거ㆍ방법 등에 대한
이론적 논의가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이 논문에서는 校勘과 관련한 이러한 이론적
논의를 ‘校勘理論’이라 지칭한다. 淸代의 校勘理論은 宋代의 校勘守則과 달리 校勘의 본질과 목적에 대한 근본
적인 문제제기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校勘을 일반적으로 ‘올바른 텍스트를 확정
하는 작업’으로 이해하는데, 그 ‘올바른 텍스트’란 무엇이며 또한 ‘올바른 텍스트’ 를 어떻게 복원할 수 있는가. 이러한 문제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淸代의 校勘理
論이었다. 段玉裁와 顧廣圻는 개별 교감성과의 시비에 대한 토론에서 촉발된 문
제의식을 끝까지 밀고 나가 校勘의 본질과 목적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하
였다. 이 논문에서는 古典文獻 校勘에 대한 淸代의 문제의식을 분석하고 校勘理論
이 형성되는 과정을 자세히 고찰하였다. 청대의 학자들은 당시 통행하였던 목판본
형태의 텍스트에만 관심을 국한하지 않고, 목판본 이전의 다양한 필사본과 구두
전승의 원시 텍스트의 원형을 합리적으로 재구성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렇게 宋
代의 교감 원칙보다 확대된 시야에서 고전문헌의 考訂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확
립한 것이 청대 교감이론이다. 이러한 청대 교감이론의 연구를 통해 밝혀낸 구체적인 내용을 정리하면 다
음과 같다. ① 흔히 문헌의 “比勘考訂” 행위를 의미하는 ‘校’는 역사적으로 텍스트의 형태
에 따라 그 구체적인 내용이 상당히 달랐다. ‘校’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
것이 가리키는 실제 행위를 역사의 과정 속에서 고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校’가
본격적으로 문헌과 관련되어 사용된 것은 劉向의 ‘校讎’였다. 그런데 구술ㆍ암송
ㆍ문자기록 등의 고정되지 않은 형태로 전승되던 원시 텍스트가 ‘校讎’의 작업을
통해 체재와 내용이 확립된 문자 텍스트로 정착되었다. 段玉裁의 경우, 원시 텍스
트에서 문자 텍스트로 변화하는 과정을 정확하게 묘사한 鄭玄의 의의를 재발견하
여 교감의 본질과 목적을 원시 텍스트의 형태를 재구성하는 것으로 설정하였다. 필사본의 시대에는 ‘校讎’보다는 ‘校勘’이라는 용어가 더 많이 사용되었는데, 이는
필사의 과정에서 증가하는 문헌의 유동성을 줄이는 작업으로 이해할 수 있다. 목
판본의 시대에 들어서는 한번 인쇄하면 대량으로 유통되는 목판본의 특성으로 인
해 ‘校勘’의 수요가 더욱 증대하게 된다. ② 宋代 이래 천년 가까이 목판인쇄가 지속되어 그 이전의 필사본이나 원
시 텍스트의 전통은 거의 사라지게 된다. 청대에 이르러서 중국의 고전문헌은 목
판본의 형태로만 유통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청대의 학자들은 당시에 통행하던 텍
스트에 의심을 품게 되고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원래의 형태를 복원하는 작업
을 진행하였다. 특히 淸代의 『十三經注疏』는 텍스트의 혼란이 매우 심했기 때문
에 阮元을 중심으로 ‘十三經注疏의 교감’이라는 거대한 학술 사업이 진행되었다. 이때 청대의 교감이론가들은 경전 텍스트의 혼란이 宋代 목판인쇄 과정에
서 유래가 다른 여러 텍스트가 하나의 평면에 표현되면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재
인식하였다. 다시 말해, 『十三經注疏』라는 표면 아래에는 여러 傳本의 經ㆍ注ㆍ 疏가 결합한 심층구조가 존재하며, 그와 같은 심층구조의 상호모순으로 인해 텍스
트의 혼란이 가중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목판 인쇄 과정의 注疏 合刻이 경전의
오류를 야기하는 가장 큰 원인이었다. 결국 『十三經注疏』 의 校勘本을 출간하려
했던 완원의 기획은 자료의 부족과 이론의 결핍으로 인해 실패하였다는 평가를
받지만, 그 과정에서 교감이론에 대한 문제의식이 본격적으로 생성되기 시작했다
는 점이 중요하다. ③ 阮元의『十三經注疏校勘記』 작업 이후 학자들 사이에서는 교감의 본질과
목적에 대한 치열한 토론을 벌이게 된다. 그 가운데 직업적 교감가인 顧廣圻와
언어학적 經學家인 段玉裁의 논쟁은 청대의 교감이론을 형성하는 데에 가장 주요
한 역할을 하였다. 이 둘의 논전을 ‘段顧論爭’이라 부를 수 있다. ‘段顧論爭’은
『禮記』의 몇 가지 구절에 대한 교감 의견의 분기에서 시작하여, 결국 교감의 본질
ㆍ목적ㆍ상한선 등에 대한 문제로 논쟁의 범위를 확대하게 되었다. 顧廣圻는 자신의 실제적인 교감 경험을 통하여, 텍스트의 교정을 위한 교감
행위가 텍스트의 혼란을 더욱 가중한다는 역설을 발견하였다. 당시 통행본의 폐해
를 교감이라는 명목으로 기존의 텍스트를 별다른 원칙 없이 자의적 판단으로 고
쳤다는 데서 찾았다. 顧廣圻는 그러한 妄改의 현상을 “不校校之”의 원칙으로 바
로잡는 것이 교감의 목적이라 주장한다. 이 때문에 顧廣圻의 이론에서는 교감의
상한선을 문자 텍스트로 한정하고 있다. 소리와 언어와 같은 문자화되지 않는 근
거를 활용하여 교감을 진행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추측을 통한 妄改와 다르지 않
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段玉裁가 생각하는 교감의 지향점은 목판본과 필사본 이전에 존
재하였던 원시 텍스트의 회복이다. 段玉裁는 원시 텍스트를 회복하기 위하여 두
가지 이론적 방법을 고안하였다. 하나는 통행하는 목판본에 남아 있는 여러 필사
본의 흔적을 찾아내어 그 원래 형태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이를 底本의 재구성이
라 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문자 텍스트에 남아 있는 음성언어의 흔적에 대한 재
인식이다. 段玉裁의 이론에서 원시 텍스트는 구술ㆍ암송과 같은 음성적 측면이
주된 형식이었고 문자기록은 음성적 형식을 보조하기 위한 수단이었기 때문에, 원
시 텍스트의 음성적 정보를 풍부하게 제공하는 鄭玄의 가치에 더욱 주목하게 된
다. 이와 같이 淸代의 교감이론은 중국의 고전문헌이 원시 텍스트에서 필사본으로, 다시 필사본에서 목판본으로 형태를 변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하여 누적된 다양한
흔적을 텍스트의 표면에서 찾아내었다. 또한 그러한 여러 흔적을 바탕으로 텍스트
의 표면 아래에 잠재해 있던 문헌의 심층구조를 밝혀내었다. 이와 같은 논의를 통
해 校勘이 단지 對校와 같은 단순한 기능적 작업이 아니라 중국의 古典文獻에
대한 비판적 접근이라는 사실을 환기한다.
Language
Korean
URI
http://hdl.handle.net/10371/12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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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Chinese Language and Literature (중어중문학과)Theses (Ph.D. / Sc.D._중어중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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