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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당 문학의 사상적 배경과 그 미의식에 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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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서진희
Advisor
박낙규
Major
인문대학 미학과
Issue Date
2014-08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중당개인주관통속일상근대성
Description
학위논문 (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미학과, 2014. 8. 박낙규.
Abstract
역사의 어떤 시점에 이르게 되면 종래의 가치관과 충돌하는 현상들이 빈번하게 출현하고, 그러한 상태가 고착화되면 기존의 가치관은 붕괴되고 새로운 가치관이 성립된다. 진‧한대에 성립된 우주자연과 인간사회 전체를 하나의 틀로 아우르는 중국 고대의 가치관은 안사의 난 이후가 되면 그것으로 해결할 수 없는 현상과 문제가 일상화되고 더 이상 과거와 같은 권위나 효력을 지니지 못하게 되었다. 물론 이와 같은 가치관의 붕괴는 비교적 긴 기간 동안에 진행된 것이다. 당대에 들어와서 전기에는 당대 지배계층의 변화와 과거제도의 변화, 도시와 경제의 발달이 변화를 이끌었다. 그리고 안사의 난 이후에는 번진의 할거, 환관의 전횡, 당쟁의 격화 등이 그 원인이 되었다.
중국 문화의 주체라 할 사대부계층이 중당시기에 직면했던 여러 가지 시대적 문제는 좌절을 안겨주었고, 이상과 포부를 버리고 자신의 삶을 다시 조정하게 했다. 이러한 조정의 결과는 한편으로는 개인적인 것으로 관심의 방향을 전환시키고 주관적인 시각으로 주변 세계를 바라보게 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본래부터 통속 문화로부터 받았던 영향이 그들의 변화와 함께 작용하여 예술에 있어서 그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드러낸다.
중당시기와 관련된 기존의 연구에서 아쉬운 부분은, 당송변혁설을 둘러싼 논쟁에서도 볼 수 있듯이, 주로 정치와 경제를 중심으로 연구가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중당시기의 예술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들은 중당시기에 발생한 새로운 변화를 부각시키면서도 변화의 성격에 대한 검토는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논문은 중당에서 시작되어 남송에 이르러 정형화되는 변화 가운데 그 단초가 되는 중당시기의 사상과 문학에 나타난 미의식의 변화를 중심으로 고찰해 보려 한다.
중당시기에 시행된 양세법은 토지관계를 변화시켰고, 그것은 서족庶族 출신의 문인이 통치계급으로 오를 수 있는 통로가 확대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과거제도도 사서의 경계를 허물었고 당대의 과거제도는 중당시기에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게 되었다. 조정의 조세정책과 관리 선발 방식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중당시기에 맞물리면서 문인계층의 구성을 철저하게 변화시켰고, 지식과 문학적 재능이 혈통을 대체하게 되었다. 지위의 변동과 지식에 있어서의 취향은 중당 문인의 자아의식을 강화시켜서 전통적으로 관료 지향적이었던 심리는 희석되고 군주에 대한 의존 심리도 줄어들었다. 시인은 시대와 사회의 대변자 역할에서 벗어나서 작품 속에 외적인 것보다는 내면을, 국가보다는 자아를 지향하는 개인적인 요소를 더 많이 반영했다. 그리고 이 시기에는 불교의 세속화가 더 진행되었고 사대부의 관심을 받던 선종이 확립되어 자아에 대한 자각에 영향을 주었다.
신구 사회의 교체기를 살았던 중당 문인들은 국가의 이상을 실현하고 유교를 부흥하고자하는 포부를 품었던 반면, 폄적당하고 좌절당한 데서 오는 분노도 함께 지니고 있었다. “겸제兼濟”나 “독선獨善”, 주색에 탐닉하거나 한적하고 안락함을 즐기는 양면성을 띠었고, 그 결과 자기정체성을 탐색하게 했다.
백거이와 원진은 관직에 올라 정치적인 성격이 강한 신악부운동을 제창했다. 그들은 시가가 마음에 느껴지는 감흥을 읊어야 하고 당시의 일을 표현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시가의 풍자 기능을 중시했다. 백거이와 원진의 신악부의 제재는 광범위해서 국가의 중대한 사건뿐만 아니라 교화와 관련하여 다양한 현실생활까지도 포함했다. 유가적인 교화의 주요 내용은 예악을 진작시키고 풍속을 고무시키는 것으로서 신악부는 예의, 음악, 풍속, 세태를 평론하는 작품을 많이 썼다. 백거이와 원진의 신악부운동은 문학혁신 운동이었을 뿐만 아니라 문학을 근거로 한 정치개혁 운동이기도 했다. 그들의 정치적 이상은 실현되지 못했고 문학 운동도 바라던 효과를 얻지 못했지만 후대에 큰 영향을 주었고 문학사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미학적으로 신악부운동은 중당 시기에 점차 발전해가던 민간문학을 반영하여 통속적인 사조를 진흥시키는 데 기여했다. 문학 형식에 있어서는 변문이나 속강의 형식을 운용하여 자유로운 시풍을 형성했다. 서술 방식에 있어서는 전기소설의 자세한 묘사, 번쇄한 나열 방식을 수용하고 독백과 대화체로 이야기함으로써 더 친근한 느낌을 가지도록 했다. 언어적인 특징으로는 민가의 통속적이고 분명한 백화를 사용하여 신악부가 민간 가요처럼 알아듣기 쉽게 했다. 또 신속한 전달을 위해서 산문체를 사용하여 시비선악의 도를 논술해서 정감의 도야 이외에 도덕적으로 도움을 주려고 했다. 신악부의 감상자는 일반 대중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것은 중국시가 발전의 과정에서 우아[雅]로부터 통속[俗]으로의 전환의 시초라 할 수 있다.
한‧맹시파는 기험한 미의식과 표현으로 전통적인 시가와 다른 서정 방식을 보여주었다. 한‧맹시파의 시인들은 불우한 한문 출신 사인들로서 ‘불평즉명不平則鳴’의 창작 심리를 지녔다. 그들은 마음속의 고민과 우수를 묘사하는 데 중점을 두었고 자유로운 상상으로 경물을 그려내는 데 뛰어났다. 하지만 그들의 작품에는 세속적인 경향도 있어서 세속사와 관련된 제재들도 많이 다루었다. 한유, 맹교, 노동, 가도, 이하 등은 모두 자신의 노쇠한 외모, 빈궁한 생활 등을 묘사했고, 인생 경험, 일상의 감정을 토로했다. 한‧맹시파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황탄하고 기궤하며 유랭幽冷한 시상의 표현이며, 대부분의 시에서 상궤를 벗어난 구상을 통하여 신기하고 특이한 예술경계를 조성해 내었다. 언어의 운용은 차가움[冷], 생경함[硬], 험함[險], 편벽됨[僻]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다만 주의해야 할 것은 언제나 평담함과 신기함을 융합시켰다는 점인데, 평이하고 자연스러운 언어로 어둡고 기이한 심정을 표현했다. 이외에도 한‧맹시파는 시에 산문 형식과 의론議論을 접목시켰다는 특색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형식은 시가의 구조와 운율을 깨트렸고, 나아가 추상적인 의론을 더하여 시가와 언어의 관계를 느슨하게 하고 시의 형상성을 저하시켰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유종원과 유우석은 일찍이 정치개혁집단에 참가하여 평생을 폄적당하는 시련을 겪었다. 두 사람은 실의를 표현하는 한편으로 친숙한 생활이나 세속적인 취향을 표현하는 시를 짓기도 했다. 유우석은 강남 지방으로 폄적당했을 때 그 지역의 민가를 접했고 민간의 풍취가 농후한 시와 사곡을 지었다. 유우석은 만년에 백거이와 가깝게 지내면서 백거이의 시와 유사한 한적하고 자족하는 시를 짓기도 했다. 유종원은 영주와 유주에서 평생을 보냈고 어둡고 고독한 시풍을 지녔지만 이따금씩 한적한 감정, 노쇠함에 대한 개탄을 읊기도 했다.
이상의 논의에서 중당시기 문인이 현실적으로는 정치적 이상의 실현을 위한 노력과 그에 따른 좌절로부터 영향을 받았고, 사상적으로는 평상심과 일상의 현실(선종), 개인의 심성과 그것의 권위 그리고 실질에 대한 추구(유학)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미의식의 특징이 근대성의 논의에 관건이 되는 주관화와 통속화임도 알 수 있다.
Language
Korean
URI
http://hdl.handle.net/10371/12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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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인문대학)Aesthetics (미학과)Theses (Ph.D. / Sc.D._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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